[경제story] IMF 30년: 외환위기는 끝났을까?

우리가 잊고 사는 위기의 흔적들

by 매드본

2025년, IMF 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정확히 28년이 되었다. 우리나라가 구제 금융 요청을 했다는 조간신문 헤드라이트가 난 날, 아침 등굣길 친구와 심각하게 나눴던 대화가 기억난다. 지금 돌이켜보면 중학생이 뭘 안다고 그렇게 심각했을까. 그러나 1997년의 그 겨울을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은 점점 줄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 사건을 단순한 "경제적 사고"나 일시적인 "국가적 불운"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외환위기는 단순한 재난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경제 구조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결정적 사건이었다. 문제는 그 변화가 지금까지도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외환위기는 끝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고용구조, 자산시장, 기업 운영 방식, 그리고 심지어 가계의 재무 습관에 이르기까지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이 글은 외환위기 이후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 구조 속에 살고 있는지, 그 위기의 유산은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는지를 탐색한다.


위기의 기원과 그 후속 작동 원리

IMF, 즉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은 회원국의 경제가 외환 부족 등으로 인해 심각한 금융위기에 처했을 때, 긴급 자금을 지원하는 국제기구다. 하지만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은행이 아니라, 경제 구조조정을 조건으로 내세우는 강력한 개입자이다. 자금 지원의 대가로 '구조개혁 프로그램'을 수용해야 하며, 이 프로그램은 대개 시장 개방, 규제 완화, 공공부문 축소,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포함한다. 이는 단기 유동성 위기를 넘기는 대가로 장기적인 구조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며, 수용국 입장에서는 경제 주권의 일부를 넘기는 셈이기도 하다.


1997년, 한국은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에서 국제 신용등급 하락과 외국인 자본의 급격한 유출을 겪었다. 하루 단위로 외환이 빠져나가며 외채 상환이 어려워졌고, 급기야 국가 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고, IMF는 약 58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하되, 고강도 구조조정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당시 한국 경제는 외견상 고도성장을 구가하며 '한강의 기적'을 지속하는 듯 보였지만, 실상은 구조적 취약성에 시달리고 있었다. 대기업들은 은행에서 손쉽게 돈을 빌려 무리하게 투자했고, 부실한 사업 확장으로 자산은 팽창했지만 수익성은 낮았다. 금융기관은 기업의 채무 상태나 사업성 분석 없이 담보 위주의 대출을 남발했고, 정부는 이에 대한 감시 기능이 거의 없었다. 여기에 단기 외채에 의존하는 구조는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에 치명적이었다.


그렇다고 문제는 기업과 정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민의 금융 이해도는 매우 낮았고, 사회 전반의 경제 문해력은 초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대중은 주식이나 채권 같은 금융자산에 대해 무지했고, 대부분의 자산은 부동산과 은행 예금에만 집중됐다. 금융이라는 것은 '위험한 것',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리스크 관리, 분산 투자, 신용 등급과 같은 개념은 생소했다. 정부의 발표는 무비판적으로 신뢰되었고, 언론도 깊이 있는 경제 분석보다는 성장률에만 집중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자마자 국내 자산시장과 환율 시장은 순식간에 붕괴됐다. 기업은 연쇄 도산했고, 대량 해고가 이어졌으며, 수많은 가정이 파산했다. 실업률은 치솟았고, 자살률도 급격히 증가했다. 많은 국민이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른 채, '나라가 망했다'는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구제금융과 함께 한국 사회에 도입된 것은 IMF가 요구한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혁이다.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정리해고제가 합법화됐고, 비정규직이 대거 확산되었으며, 금융시장과 자본시장이 전면적으로 개방됐다. 공기업 민영화가 추진되었고, 복지보다는 재정 건전성이 우선순위가 되었다. 기업은 주주가치를 최우선으로 삼기 시작했고, 고용은 비용으로 간주되었다.


이후 20여 년 간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깊숙이 적응했다. 경제는 다시 성장했지만, 그 성장은 더 이상 모두의 것이 아니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고착됐고, 자산의 양극화는 심화됐다. 무엇보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가계는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학습하면서 과잉저축과 과잉투자, 부동산 집착과 사교육 열풍에 시달렸다. 이 모든 것은 생존 불안이 구조화된 결과였다.


지금은 그때보다 금융 상품도 다양해졌고, 많은 이들이 주식, ETF, 코인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곧 경제 구조에 대한 깊은 이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기 수익률에 매몰되거나 정보 비대칭 속에서 취약한 판단을 내리는 사례도 여전하다. 당시와 마찬가지로 '전체 시스템의 구조'에 대한 감각은 부족하다. 시장의 방향, 세계 경제 흐름, 구조적 변화에 대한 판단력 없이 특정 자산이나 종목에만 매달린다면, 또다시 비슷한 위험이 반복될 수 있다.


외환위기는 끝났는가?

표면적으로는 외환위기는 종료되었다. 외환보유고는 안정적이며, 한국은 주요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보면, 그 위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당시 도입된 신자유주의 질서와 금융화된 경제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불평등과 고용 불안, 가계 부채와 자산 집중 등은 그 후속 결과로 남아 있다.

위기의 본질은 단순한 유동성 부족이나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경제 구조와 사회 인식, 국가 전략의 총합적인 실패였고, 여전히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IMF를 단지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할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어떤 시스템 속에 살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열쇠로 삼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돈을 버는 기술이 아니라, 구조를 읽고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이다. 그것이 다음 위기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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