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정치인을 악당처럼 상상할까?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나는 그랬다. "국회의원들은 정말로 영화처럼 악마같을까?" 영화나 드라마 속 정치인은 치밀하다못해 냉철하다. 겉으론 미소 짓지만 속으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으며 대중의 눈을 속이고, 권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 이미지가 실제 정치인의 현실과 얼마나 닮았는지 묻는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정치 불신을 진단하는 중요한 창이다.
우리가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사실은 한 가지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 '정치란 기본적으로 음모와 술수의 세계일 것이다.' 이 전제는 정치에 대한 냉소로 이어지고, 냉소는 무관심과 혐오를 낳는다.
정말 그럴까? 국회의원들은 실제로도 영화 속 캐릭터처럼 전략적이고, 악의적이며, 치밀하게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그들이 하는 일은 우리가 오해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결과일 뿐일까?
이 글에서는 영화적 상상과 정치적 현실 사이의 간극을 논리적으로 탐색하고자 한다. 우리는 먼저 왜 그런 상상이 반복되는지, 그런 이미지가 정치 현실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하나씩 따져볼 것이다.
첫째, 정치인은 권력을 다루는 직업이다. 권력은 보이지 않지만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힘이다. 그리고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의심하게 된다. 특히 한국처럼 권위주의 정권의 기억이 아직 사회 구조 속에 스며 있는 경우, 정치 권력에 대한 불신은 문화적 감정으로 자리잡는다.
둘째, 미디어가 제공하는 드라마적 서사가 이 상상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이야기는 선과 악이 명확해야 재미있고 몰입도가 높다. 실제 정치의 복잡성과 애매함은 이야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는 종종 흑백 논리로 단순화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캐릭터는 극단적으로 냉정하고 이기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이러한 이미지가 반복되면서, 대중은 실제 정치인도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고 믿는다.
셋째, 정치 시스템에 대한 정보 부족과 비대칭이 상상을 더 부추긴다. 정치는 복잡하고 법률과 절차로 구성되어 있다. 대다수 시민은 그것을 전부 이해하기 어렵고, 언론 역시 단편적인 갈등 위주로 보도한다. 결과적으로 시민은 정치인의 의도를 의심하는 데 익숙해지고, 영화적 상상에 기대어 해석하게 된다.
실제 국회의원들은 사악하고 치밀하게 행동할 만큼 전략적인가? 현실은 다소 다르다. 정치인의 일상은 오히려 '생존'에 가깝다. 아니, 적어도 내가 만나본 몇 안되는 정치인들은 그랬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민원과 언론 대응, 당내 정치, 지역구 관리, 법안 발의, 각종 회의가 쉴 틈 없이 돌아간다. 이 모든 업무는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눈치를 봐야 하는 다층적인 과정이며, 개인의 사악함보다는 구조적인 한계 속에서의 '반응적 행동'에 가깝다.
더구나 대부분의 정치인은 전문 정치인이 아니다. 의료인, 법조인, 교수, 시민운동가 출신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이들이 갑자기 정치에 들어오면서, 오히려 전략적 계산보다는 우왕좌왕하거나 관성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대중이 상상하는 냉정한 '정치 공작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장기 집권을 노리는 고도의 전략가, 지역 기득권 세력과 유착한 권력자도 존재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 예외가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갑질, 금품수수, 이해충돌, 특혜 의혹 등으로 대서특필되는 정치인의 사례는 시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이들은 단순히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로 부적절한 행동을 저지른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런 사례가 소수 존재한다고 해서 전체 정치인을 동일한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 이들은 전체 정치인의 극소수이며, 반복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소수의 얼굴이 뉴스에 등장함으로써 전체 집단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마치 범죄 보도를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사회 전체가 위험하다고 느끼는 착시와 비슷하다. 즉, 일부 정치인의 일탈은 반드시 비판받아야 하며 제도적 개선으로 이어져야 하지만, 그로 인해 정치 전반을 악의적으로 보는 관점은 또 다른 왜곡을 낳는다.
이제 마지막으로 묻자. 이런 이미지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첫째, 정치 혐오와 냉소는 참여를 위축시킨다. 사람들은 '어차피 다 똑같다'며 투표를 포기하고, 좋은 정치인을 알아볼 노력도 하지 않는다. 이는 곧, 더 나쁜 정치인의 당선을 막지 못하는 악순환을 만든다.
둘째, 정치인의 자기 검열과 대중 영합주의를 부추긴다. 즉, 끊임없는 의심과 공격 속에서 정치인은 실질적 정책보다 이미지 관리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정작 중요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문제 해결은 뒤로 밀리고 자기 자신을 꾸미는 데에만 집중한다.
셋째, 정치에 대한 서사 자체가 왜곡된다. 우리는 정치가 곧 '타락'이라는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정치적 선택 역시 선악 구도로 오해하게 된다. 이는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을 왜곡하고, 성숙한 시민사회를 가로막는다.
국회의원들이 실제로 영화 속 악당처럼 행동하는가? 대답은 '일부는 그럴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니다'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악당이 아니라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생존자들이다.
정치는 도덕의 싸움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조율이다. 정치를 이해하고 감시할 수 있는 시민의 힘이 없다면, 시스템은 자연히 왜곡된다. 하지만 정치인을 악당으로만 보는 시선은 오히려 그 감시 기능을 무디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회의원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첫째, 정치인을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 환원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정치인 이전에 시민이며, 다양한 배경과 동기를 가진 개인들이다. 그중에는 헌신적이고 성실한 사람도 있고, 반대로 무능하거나 부패한 인물도 있다. 정치인을 구분 짓는 것은 그들이 속한 제도와 환경, 그리고 유권자의 선택이다.
둘째, 개인의 도덕성보다 제도의 작동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부패는 개인의 악의라기보다 제도의 허점에서 비롯된다. 이해충돌을 제어하는 장치, 공천의 투명성, 시민의 피드백 구조가 잘 작동할수록 정치는 건강해진다. 좋은 정치인은 우연히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시스템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셋째, 정치를 소비하듯 평가하는 데서 벗어나, 생산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불만을 품고 정치 뉴스를 비난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을 바꾸지 않는다. 우리가 정치인의 삶과 선택을 이해하려 하고, 감시하고, 참여하고, 대화할 때 비로소 정치의 질은 바뀐다. 정치란, 정치인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결론은, 우리는 당이 아닌 사람을 보고 투표해야 한다. 정당은 정체성과 방향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틀일 수 있으나, 그 틀 안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당의 이름을 빌려 부정한 의도를 숨기기도 하고, 누군가는 소신과 비전을 가지고 당을 넘어서는 정치를 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각 정치인의 평판, 살아온 이력, 위기 속 선택, 권력 앞에서의 태도 등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정치와 일상은 영화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 만들어가는 불완전하지만 필수적인 공적 영역이다. 그리고 그 공적 영역의 질은, 결국 우리 모두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것 하나만 기억하자. 좋은 정치는 좋은 유권자에게서 나온다. 투표가 그저 한 표를 던지는 행위가 아니라 공공을 위한 책임 있는 선택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