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많지만, 정확히 뭐가 시작됐고, 왜 중요한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게임 제목으로 익숙하거나, 조금더 자세히 접한 분들은 콜럼버스나 마젤란 같은 인물 이름 정도 떠오를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가 왜 세계사에서 그렇게 큰 전환점이었는지,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막연한 경우가 많다.
대항해시대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를 아주 쉽게, 순서대로, 논리적으로 풀어본다. 그냥 먼 옛날 바다 탐험 이야기가 아니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그리고 현대 세계 질서의 시작이라는 점을 중심으로 이해해보도록 하자.
대항해시대란 15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까지, 유럽 국가들이 바다를 통해 새로운 무역로와 식민지를 찾기 위해 전 세계로 나아간 시기를 말한다. 이들은 배를 타고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까지 나아갔고, 이로 인해 세계 각 지역이 처음으로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었다.
돈 때문이다. 가장 큰 동기는 경제적 이익이었다. 당시 유럽에서 후추, 계피, 육두구 같은 향신료는 금보다 비쌌다. 하지만 육로 무역은 너무 위험하고 비쌌고, 중간 상인들이 많아 마진도 줄었다. 직접 배 타고 가서 사고팔면 큰돈이 되었다.
기독교 때문이다. 유럽은 중세를 지나면서 종교적 열망이 컸다. 새로운 땅을 발견하면, 그곳 사람들을 '개종'시켜야 한다는 종교적 사명이 있었다. 이는 명분이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영향력 확대 수단이기도 했다.
권력 경쟁 때문이다. 당시 유럽은 작은 나라들이 많았고,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등은 서로 세계를 더 많이 차지하려 경쟁했다. 새로운 식민지를 확보하면 그만큼 부와 군사력도 따라왔기 때문에, 탐험은 곧 '국가 프로젝트'였다.
기술이 받쳐줬기 때문이다. 나침반, 항해술, 대포 탑재 선박 같은 기술이 없었다면 아무리 원해도 나아갈 수 없었다. 기술이 가능성을 열었고, 야망이 그 위에 올라탔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포르투갈이다. 이들은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남하하다가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까지 항해에 성공했다. 다음은 스페인이었다. 콜럼버스는 1492년 인도로 가는 길을 찾겠다며 서쪽으로 출발했지만, 실제로는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다.
그 다음은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차례로 뛰어든다. 이들은 후발 주자였지만,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식민지 확보와 무역로 경쟁에 나섰다. 특히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를 세워 동남아시아 향신료 시장을 장악했고, 영국은 인도와 북아메리카, 아프리카에서 식민지를 확대했다.
동인도회사는 현대식 주식회사와 비슷한 개념의 조직이다. 즉, 회사가 망해도 개인은 투자한 만큼만 손해보면 되기에 더욱 공격적인 사업이 가능해졌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 1602년 설립)와 영국 동인도회사(EIC, 1600년 설립)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단순한 무역상단이 아니라, 국가의 허가를 받아 군대도 운영하고 전쟁도 할 수 있는 '반국가적 조직'이었다.
주식을 발행해서 자금을 모았고,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나눠줬으며, 수백 척의 배를 운영했다. 심지어 아시아 각지에 항구를 짓고 세금을 걷고 조약을 맺고 반란을 진압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 '기업이자 군대이자 외교기관'이었다. 단적인 예로 자바 섬의 향신료 독점을 위해 현지 왕국을 무력 진압하고 주민 수만 명을 학살하기도 한다.
이들은 향신료와 차, 면직물, 은 등의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현대식 자본주의 모델의 시초가 되었다. 지금의 다국적 기업, 주식시장, 파생상품 개념이 모두 이 시기 동인도회사를 통해 태동했다.
이 시기, 조선은 세종과 성종, 선조 등의 시대를 지나며 유교 중심의 농본국가 체제를 확립하고 있었다. 외국으로 나가기보다는 나라 안의 질서와 문치를 다지는 데 집중했다. 나침반과 항해술 같은 기술은 있었지만, 바다를 나아갈 의지나 동기는 약했다. 바다는 위험한 공간으로 여겨졌고, 명나라 중심의 중화 질서 안에 머무는 것을 '바른 길'이라 믿었다. 그래서 조선은 대항해가 아닌, '대내정비의 시대'를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의 가장 큰 변화는 세계가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가 하나의 교역망 속에 들어가면서 '글로벌 경제'가 처음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그 과정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은 파괴되었고, 아프리카에서는 수천만 명이 노예로 팔려갔다. 식민지는 강제로 자원을 수탈당했고, 유럽은 이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산업혁명의 기반을 마련했다.
대항해시대는 또한 자본주의의 씨앗이 뿌려진 시기였다.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회사(동인도회사), 주식 발행, 보험, 장거리 무역 금융 등 지금의 경제 시스템이 이때 시작되었다. 동시에, 제국주의의 서막이기도 했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점령하고 자원을 빼앗는 구조가 이때부터 본격화된 것이다.
대항해시대는 단순한 항해와 탐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유럽이 처음으로 세계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시기였고, 자본주의와 식민주의, 세계화가 동시에 태동한 시대였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돈, 무역, 금융 시스템, 세계 지도와 언어, 그리고 국가 간의 경제 격차는 모두 이 시기의 연장선에 있다. 바다를 건넌 건 배였지만, 그 배 안에는 세계를 바꿀 자본, 종교, 기술, 야망, 탐욕이 함께 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세계는 어디서 왔는가?” 에 대한 답은 '바다' 라고 할 수 있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