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의미없는 가사가 세계를 건너는 방식
틱톡을 스크롤하다 보면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에 손가락이 멈춘다. 화면에는 손바닥이 있고, 그 위에 두 가지 색이 나란히 놓여 있다. 누군가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반복한다. “마제따라, 마제따라~” 잠시 뒤 두 색은 섞이고, 변신을 한 후 영상은 끝난다. 자막은 없다. 맥락도 없다. 서사 역시 생략돼 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장면을 끝까지 보았다. 그리고 다음 영상에서 같은 소리가 들리자, 이미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멈춘다. 이 설명하기 어려운 정지야말로, 이른바 ‘마제따라 마제따라’ 밈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전체 가사 (원문 / 한글 표기 / 의미)
일본어 원문 : 赤!青! 混ぜたら混ぜたら 何色になるかな? ……紫!
한글 발음 : 표기 아카! 아오! 마제타라 마제타라 나니이로 나루카나? ……무라사키!
뜻 : 빨강! 파랑! 섞으면 섞으면 무슨 색이 될까? ……보라색!
가사를 알고 나면 약간 허탈해진다. 빨강과 파랑을 섞으면 보라색이 된다는,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배울 법한 내용을 일본어로 리듬감 있게 읽고 보라색에 대한 자신의 의견? 을 피력한다. 반전은 마지막에 있다. 그곳에서 자신만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포맷이 되어 틱톡 안에서 반복 소비된다.
일본 사용자들이 올린 영상에서 이 음성이 자주 사용되었고, 해시태그나 설명 문구에 일본어 문장이 그대로 등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 밈을 ‘일본에서 시작된 유행’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틱톡이라는 플랫폼의 특성상 최초의 원본을 특정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일본어 문장 구조와 귀여운 목소리 자체가 이 밈의 핵심 형식이 되었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가사의 의미를 이해한 이후에 오히려 더 웃기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많은 이용자들은 이 영상을 처음 접할 때, 무언가 중요한 말이나 암호 같은 맥락이 숨어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너무나 당연하다. 빨강과 파랑을 섞으면 보라색이 된다. 이 당연함, 이 허무함이 반복 재생을 부른다. 기대가 배신당하는 순간이 아니라, 기대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순간에서 웃음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밈은 빠르게 변형되기 시작했다. 색 이름만 바꾸면 전혀 다른 영상이 된다. 빨강과 노랑을 섞으면 주황이 되고, 파랑과 노랑을 섞으면 초록이 된다. 일본어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도 문제 되지 않는다. 중간을 생략해도 되고, 마지막에 엉뚱한 단어를 덧붙여도 같은 밈으로 인식된다. 중요한 것은 언어의 정확성이 아니라, ‘아, 그 색 섞는 소리’라는 집단적 인식이다. 의미는 느슨해지고, 형식만 남는다.
이처럼 구조가 극도로 단순한 밈은 틱톡이라는 플랫폼과 매우 잘 맞는다. 영상은 짧고, 결말은 이미 예상 가능하다. 사용자는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보게 되고, 그 짧은 만족감이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르게 만든다. 해석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피로감도 적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콘텐츠가 오히려 오래 살아남는 구조다.
사람들이 왜 이런 ‘의미 없는 소리’에 끌리는지를 생각해보면, 이는 현대 인터넷 환경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처럼 보인다. 우리는 SNS에서 끊임없이 메시지를 읽고, 입장을 정하고, 감정을 소비한다. 공감하거나 분노해야 하고, 의미를 해석해야 한다. 그에 비해 이 밈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공감도 필요 없고, 이해도 필요 없다. 그냥 듣고, 웃고, 따라 하면 된다. 의미 없음이 결핍이 아니라 장점이 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이 밈은 일본 사회에서도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인식되었을까? 확인 가능한 사실은 일본 사용자들 역시 이 음성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회 전반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소비되었는지까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이 밈은 특정 국가의 유행이라기보다, 글로벌 플랫폼 안에서 언어가 해체되고 소리만 남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에 가깝다. 일본어는 출발점이었지만, 밈이 되는 순간 국적은 사라졌다.
의미보다 리듬이 앞서고, 내용보다 형식이 먼저 소비되는 시대. 이 밈은 그 사실을 네 줄짜리 문장으로 증명해 보였다. 이 소리는 언젠가 틱톡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같은 구조의 또 다른 ‘의미 없는 소리’는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지금의 인터넷 문화가 반복해서 선택해온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도 사람들은, 아마 아무 생각 없이 그 소리를 따라 말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