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불안하세요

괜찮게 살고 있었는데 마음은 괜찮지 않았다

by 유유
“남편과 사이는 어떠세요?”


언제부턴가 남편은 저의 유일한 친구이자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남편과 거의 모든 것을 공유합니다. 회사 점심으로 먹은 반찬 이야기부터, 직장에서 저를 속상하게 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해되지 않는 제 생각들까지.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편입니다.
남편은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서로의 예민한 기질을 이해하고 지지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우리 둘뿐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저는 제 밑바닥까지도 보여줄 수 있을 만큼 남편을 많이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어떤 친구보다, 부모님보다 더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아이 양육이 힘드세요?”


아뇨. 절대요. 힘들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더없이 과분한 아이입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 아이가 자랑스럽지 않았던 적이 없습니다. 물론 아이 때문에 힘든 순간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대부분은 제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에서 아이의 말과 행동을 받아주지 못했던 제 문제에 가까웠습니다.

아이는 몸도 마음도 건강한 아이라고 자신합니다.



“직장 생활에서 어떤 부분이 힘드세요?”


아이들을 돌보며 계속 움직여야 하고, 중간관리자로서 다른 직원들을 지원하다 보니 정신적·감정적 에너지 소모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해 가능한 정도의 스트레스입니다.
그걸 감당하지 못한다면 이 일을 하면 안 되겠죠. 오히려 저라서 해낼 수 있는 일도 많고, 여러 이유를 고려해도 제 현실에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공을 살려 15년째 일하고 있다는 사실도 저에게는 꽤 큰 의미입니다.

매일 녹초가 되어 퇴근하지만, 한두 시간 지나면 다시 충전되는 종류의 피로입니다.




“경제적인 부분은 만족하시나요?”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돈에 큰 욕심이 있는 편도 아니고, 먹고 지낼 만큼은 벌고 있습니다. 저축과 투자에는 재능이 없지만 가진 범위 안에서 소비를 즐기고 있습니다.
재테크는 남편의 전문 분야라 저는 소비를 담당하는 편이고, 씀씀이가 작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줄여야겠다고 막연히 생각은 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걸 보면 소비욕구 자체에 대한 불만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불안하세요?”




무기력증이 찾아다.

매 순간 불안했고, 좋아하던 쇼핑이 귀찮아졌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졌다.
이러다 내가 어떻게 될 것 같았다. 예전의 활기차던 내가 그리웠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이유를 찾으려 끊임없이 생각했지만, 마음이 슬프고 힘든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영원히 이렇게 살아가게 될 것 같은 불안도 느꼈다.

가족들도 힘들어했다.
저는 남편과 아이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못했고, 틈만 나면 이불 속으로 숨어들었다. 남편은 급기야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며 자책하기 시작했다.

무서웠다.
모든 것이 나를 떠날 것 같았다. 아니, 그 전에 내가 모든 것을 놓아버릴 것 같았다.
놓아버리면 오히려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사라지는 상상 자체는 슬프지 않았.
하지만 내가 사라진 뒤 가족들이 감당해야 할 일들과 감정을 떠올리면 견딜 수 없이 슬퍼졌다.
나는 망가져도 가족들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상담센터를 찾았다.
알 수 없는 불안과 우울에 맞서기 위해 심층 면담을 예약했다.

하지만… 도망쳤다.

예약 후 3개월이 흘렀고, 그때의 무기력감은 어느 정도 옅어졌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위태롭다.

지금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일까 봐.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삶으로 끝나버릴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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