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수많은 얼굴과 마음을 가진 우리의 모습

by 유유

배려[care]

: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쓴다.


보육교사 10년 차. 배려는 마음이 응해서 베푸는 것이 아닌 업무를 위한 자질이며, 나의 월급은 배려의 값이다.


10년 차 교사이다 보니, 매일 똑같은 일들이 지겨워질 때에는 경험의 서랍을 뒤져서 선생님, 아이들과 새로운 사건사고를 기획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의 신체 발달과 정서적인 부분을 배려하고, 그들의 부모를 배려하며, 동료 교사들을 배려해주어야 하는 나는 배려 10년 차다.


사람들은 배려는 보상을 바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보상을 바랐다면 그것은 배려의 순수함을 상실한 일종의 거래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매일매일 배려를 당연히 하다 보면 어느새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도 내어주기 마련이고, 정신을 차려보면 내 가족이나 나에게 주어야 할 에너지와 시간들마저 사라져 버린 것을 발견한다.


"미안해, 오늘 조금 늦을 것 같아."

"갑자기 일이 생겨서.. 처리하고 갈게. 먼저 저녁 먹을래?"


내가 배려를 필요로 하는 때는, 이 순간이다.


인류애 vs 관계 번아웃


<아직까지 세상은 살 만한 곳이구나> 혹은 <내가 잘못 살진 않았구나>라고 느끼며 삶의 활력을 느끼는 순간은 타인의 배려를 받는 순간이다. 혹자는 자신이 받는 배려를 너무나 당연히 여겨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 소위 말하는 <호의를 권리로> 아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신청서를 제가 깜박할 수도 있죠. 선생님이 먼저 미리 전화해주실 순 없으셨어요?"

'... 그건 다른 부모님에 대한 차별인데...'


어린이집이라는 곳은, 대중의 시각처럼 동화적인 곳만은 아니다.

끊임없는 민원들을 원만하게 처리하고, 시선의 사각지대가 없어야 한다. 요즘 같은 코로나19 시국에는 교사들도 백신 후유증이나 선제 검사 같은 요인들이 많아 교사의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지만, 굳이 이런 사실들을 외부에 시끄럽게 알릴 필요도 없다(물론 나의 직장은 충분한 대체인력이 있으므로). 왜냐하면 아이들이 가정에서 부모와 편안한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는 부모의 편안한 마음가짐이 중요하고, 속 시끄러운 어린이집은 부모가 마음 편안하게 자녀를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물처럼 잔잔하고, 숲처럼 고요한 전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구성원의 상호보완적인 태도가 무척이나 중요하다.


이처럼 배려가 기본적으로 미덕이 되는 직장에서는 자신의 권리만 지나치게 주장하는 상황이 구성원들에게 매우 불편해진다. 하루 일정이 융통성 있게 유동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곳에서 분, 초 단위의 정확성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교육은 시대의 흐름이나 트렌드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는 분야이게 마련인데, 절대적인 이론의 잣대만을 갖다 대며 행위의 당위성이나 타당성을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시대착오적이다. 궁극의 도덕성은 무척이나 중요하지만, 타인에게 절대적인 잣대를 갖다 대는 자들이야말로 자신들에게 얼마나 관대하단 말인가.


모든 일들이 잔잔하고 은은하게 흘러가는 시간이야말로 좋은 하루다.

비록 나는, 발로(입으로) 뛰느라 나올 먼지도 안 나오게 털렸지만.


퇴근이다.

붕어빵을 사 오라는 아들의 말에 기진맥진한 몸을 끌고 붕어빵 가게에 들어갔다.


"붕어빵 이천 원어치 주세요."

"아이고, 많이 기다려야 해요. 앞 손님이 만원 어치를 주문해서..."

"괜찮아요."


십분, 이십 분...


'아니, 자기 때문에 이렇게 기다리는 사람도 있는데 먼저 가져가란 말도 못 하나?'라는 생각도 잠깐 해봤다. 하지만 내가 무슨 권리로 앞 손님에게 그 짓을 요구한단 말인가..


이십오 분이 되자 붕어빵 만원 어치가 드디어 완성됐다.


붕어빵 봉지를 다섯 개 든 총각이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진 붕어빵을 나에게 건넨다.


"저 때문에 많이 기다려서 추우시죠? 이거라도 드세요."

"아, 괜찮은데... 감사합니다."


붕어빵이 뜨거워서일까, 총각의 마음에 감동해서일까.

눈시울이 촉촉해진다. 작은 마음에도 큰 감동을 받는 요즘의 내 배려 주머니는 정말 텅텅 비었나 보다.


"엄마, 붕어빵 정말 맛있어요!"

"여보, 무리해서 일하지 말고 다른 일을 재밌게 해 보는 건 어때?"

가족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차오르는 배려 주머니다.

따뜻하게 데워진 집과 내 몫으로 차려준 식사. 그리고 따뜻한 가족들의 말 한마디에 몸과 마음이 녹고, 여유가 생겨난다.


'가족들과 따뜻하고 맛있게 살려고 회사 다니지, 별거 있나...... 참, 차 할부.'


내일 그대들에게 줄 배려는 100% 충전했다.

비록 다시 탈탈 털려 방전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