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사람과 다시 만나게 될거야.

티벳 장례문화를 이해하며

by 유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집 거실에서 고개를 들어 시선이 멈춘 곳은 바로 천장.

집의 내부에서 가장 높은 곳에 벽지를 바른 곳이 바로 천장天障이라고 생각했던 지난 주였지만, 누군가 '천장'이라는 단어를 말하면 나는 아마 다른 생각을 떠올릴 것 같다.



낙엽이 저물고 계절이 쉬어감을 알리는 가을은 절에 가기 참 좋은 계절이다. 이 글 또한 주말을 맞아 보성 대원사로 나들이를 간 어느 날의 이야기.

대원사에는 '티벳박물관'이 있다. 화려한 무늬의 직물과 깃털 장식 모자가 매력적인 원주민들의 생활 모습을 기대하고 방문한 곳에서 티벳 사람들의 생활과 불교 생활, 그리고 그들의 삶을 살펴보며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죽은 사람을 보내주는 방법에 대해서도.

대원사 티벳박물관에서는 불교관에 근거한 죽음과 관련된 전시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출처 : 대원사 홈페이지

천장天葬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티벳은 소중한 이의 죽음도 자연과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늘과 가장 맞닿은 곳에서의 장례로 치뤄지는 천장天葬으로.


생명의 마무리를 자연에서 마주하고, 영혼은 독수리를 타고 생명의 고향으로 향할 수 있게 하는 의식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사진을 통해 독수리가 시신을 먹도록 천장사들이 돕는 과정과 절차를 무방비상태로 접했다. 거대한 자연과 불교이념에 인간이라는 존재는 나에게 한없이 작게 느껴졌고, 새로운 문화가 동화과정을 통해 내재화되기까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천장은 군주가 영원히 남아있길 바랐던 이집트 장례문화, 최소 사흘 정도는 고인의 몸이 변형되지 않는 현대 우리나라의 장례문화와도 확연히 다른 방식이었다.

티벳의 독수리가 데려간 소중한 사람은 진정한 의미로서 '한 줌의 흙'이 된다. 식물의 양분이 될 것이고, 빗물을 타고 바다로 흘러가거나 다른 이를 살리는 소중한 물이 될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을 떠나 사라진 이는 세상 어느 곳에 있는 것이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자연의 어떤 것을 보더라도 고인을 떠올려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소중한 이들을 풀과 나무에 진심으로 건네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고인은 한 줌의 재가 되어 어디론가 날아가기도, 어딘가에 영원히 안식하기도 한다. 살아있는 이들은 고인을 추억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여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를 만든다. 하지만 어딘지모르게 자연으로 가는 느낌은 없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는 보내기 싫은 것은 아닐까? 보내는 '척'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고인의 어떤 한 부분이라도 영원히 간직하거나, 어떠한 형태로든 가시적으로 고인의 모습을 남겨두고자 하는 마음도 들 것이다. 최근에는 유골을 보석으로 만들어 몸에 지니거나 집에 두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문득 고인이 떠오르거나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날이 올테다. 어떤 힘든 날에 떠오르기도 할테고. 그렇게 찾아가는 고인의 안식처에서 우리는 그리움을 쏟아낼 것이다. 결국 살아있는 사람들은 고인도 같은 하늘 아래에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몇번의 장례식을 다녀왔고, 가까운 가족과의 헤어짐도 경험했다. 코로나 시국 이전의 경험들이어서인지, 우리나라 장례식 문화는 마치 "몸을 힘들게 해서 슬픔을 잠시라도 잊게 만들어주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쁘거나 정신 없는 시간들과 슬픔으로 곤두박질치는 시간들이 뒤엉켜있는 날들이었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움직여야 하고, 언젠가는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예전만큼의 웃음을 되찾을 수 있는 날이 늦더라도 올테고, 눈에서 사라진 이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마음 속에 잊혀지지 않을테니 아주 완벽히 사라진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먼 나라로 오랜 여행을 떠난 가족, 혹은 집에 두고 온 반려동물을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 잠시 잊은 것 처럼.


보고 싶을 때에는 무엇을 떠올리더라도 언제든지 볼 수 있다는 마음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당연히 만날 것이라는 확신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인 우리는 항상 슬프지 않게 '사라진' 사람과 살아간다.


같은 천장天障 아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