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쇼핑몰을 걷는다
“오늘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어.”
요즘 우리는 밤마다 걷는다.
집 근처 쇼핑몰을 몇 바퀴씩 돈다. 특별히 살 것이 있는 건 아니다. 어디를 가야 할지 몰라서 가는 것도 아니다. 그냥 집에 바로 들어가기에는 하루가 조금 남아 있을 때가 있다.
처음에는 내가 말을 시작한다. 회사 이야기, 사람 이야기, 점심에 나온 김치찌개가 물에 김치를 풀어놓은 맛이었다는 이야기까지. 그러다 보면 괜히 엉뚱한 질문도 던진다.
“우리가 결혼해서 같이 산 이후로 봤던 남자 중에 가장 잘생겼다고 생각한 사람은 누구야?”
쓸데없는 말들이 이어진다. 대답이 중요한 건 아니다. 말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같다.
우리가 걷는 곳은 집 근처 대형 쇼핑몰이다. 낮에는 붐비지만 밤이 되면 적당히 한가하다. 날씨가 춥거나 더운 날에도 실내라 편하고, 무엇보다 계속 걸을 수 있다. 어떤 날은 스타벅스에 들러 음료를 마시기도 하고, 어떤 날은 서브웨이를 포장해 집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가끔은 귀여운 소품을 충동구매하기도 한다. 사실 뭘 사기 위해 가는 건 아니다. 걸을 곳이 필요해서 가는 것이다.
한 시간쯤 지나면 대화가 조금 느려진다. 두 시간이 가까워지면 말이 끊긴다. 이상하게도 그 침묵이 불편하지 않다. 처음에는 계속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같이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해진다.
걷다 보면 저녁에 먹은 음식이 소화되는 것처럼 마음속에 있던 무거운 것들도 조금씩 가벼워진다. 집에 돌아갈 즈음에는 처음 나왔을 때보다 표정이 풀려 있다. 요즘 우리가 걱정이 많았는지 연달아 사흘을 쇼핑몰에 가버린 적도 있었다.
그날도 집 앞까지 왔는데 바로 들어가지 않고 잠깐 더 걸었다. 할 말이 남아서가 아니라,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조용했다.
우리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지만, 괜찮아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