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본 연재 글은 얼마 전 고인이 되신 백세희 작가님을
추모하기 위한 글 입니다.)
'떡볶이'너머의 질문, 혹은 살아간다는 것
얼마 전, 믿기 힘든 부고를 접했다.
백세희 작가가 3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그녀는 뇌사 판정을 받은 뒤 장기 기증을 통해 다섯 명의 생명을 살리고 떠났다.
그녀의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만성 우울증을 겪는 수많은 이들에게 "당신만 그런것이 아니다."라는 연대감과 위로를 안겨주었다. 그런 그녀였기에,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녀가 느꼈을 감정의 무게는 감히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녀의 책 제목은 역설적이다.
'죽고 싶지만'이라는 절망과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삶의 욕구가 충돌한다. 이 간극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매일 마주하는 실존적 딜레마가 아닐까.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워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를 죽음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아두는 동력일지도 모른다.
나 또한, 죽음의 문턱까지 걸어갔던 경험이 있다.
갑작스런 부모님의 죽음, 개인적인 실패와 좌절 속에서
삶의 의미를 잃고 헤메던 날들. 그때 나를 구원한 것도
백작가가 이야기한 '떡볶이'와 다르지 않은, 아주 사소한 일상의 조각들이었다. 햇살이 부서지는 창가에서 느끼는 안도감, 길을 걷다 우연히 듣게 된 음악, 따뜻한 커피 한 잔, 그런 작은 온기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백세희 작가는 기분부전장애 진단을 받고, 정신과에서
상담받은 내용을 책에 솔직하게 담아냈다,
그 용기 있는 고백은 자신의 우울증을 인정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많은 이들에게,
"내 마음이야"라는 공명을 일으켰다. 그녀는 자신의 약점을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타인의 강인함을 일깨워주었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그녀가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던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녀의 글 뿐 아니라, 삶의 태도 자체가 타인에게 온기를 나누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떠난 지금, 우리는 다시금 '떡볶이' 너머의 질문을 마주하게 한다. 그토록 삶의 작은 온기들을 이야기하던 그녀조차 끝내 감당하지 못한 삶의 무게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 온기를 찾아 헤매는 여정 자체가 그녀에게는
너무나 고단하고 외로운 싸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부재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정신적 고통에 취약하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그녀의 죽음을 통해 나는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긴다. 삶은 정답이 없는 질문들의 연속이며, 우리는 각자 그 질문들을 끌어안고 나선형 계단을 오르듯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 때로는 외롭고, 고통스러우며,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지만, 백 작가가 남긴 온기의 파동을 기억하며, 다시 일어서야 한다. 그녀는 비록 이 세상에 없지만, 그녀의 글과 장기 기증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은 이들을 통해 그녀의
온기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그녀를 추모하며, 오늘 나는 다시 일어난다.
이 홀로 걷는 날들 속에서, 나는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떡볶이' 너머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리고 삶의 온기를 잃지 않기 위해 다시 일어선다. 부디 그녀가 떠난 그곳에서는 모든 고통과 우울에서 벗어나 영원한 평안을 얻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