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먹고 꽃이 된다

Road to UFC: 김상욱

by 은하수 물류센터

연인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다 보면 꼭 한 번은 던지게 되는 질문이 있다.


"너는 나 왜 좋아해? 내 어디가 그렇게 좋아?"


사실 나 역시 이 질문을 받으면 꽤나 무심하게 대답하곤 한다.


"글쎄... 그냥 성격도 무난하고, 이쁘고,

딱히 모난 데도 없어서 편하잖아."


이건 나쁜 뜻이 아니라 오히려 곁에 있기 편하고, 좋다는 극찬에 가까운 말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오히려 반대로, 내가 그 질문을 던졌을 때 상대에게서 똑같은 대답이 돌아오면, 마음 한구석이 툭 하고 꺼지는 기분이 든다.


무난하다는 말. 분명 칭찬인데, 왜 나는 이 단어에서 내가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 있는 부품처럼 느껴지는 걸까. 내가 내뱉을 때는 효율적인 칭찬이었던 말이 들을 때는 유독 존재감을 지워버리는 얄궂은 단어가 된다. 왜 그런가 싶었는데 최근 UFC 하바스 소속 김상욱 선수의 결승전 경기를 보면서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우리는 왜 노력의 천재에게 마음이 갈까


김상욱 선수는 흔히 말하는 괴물 같은 천재는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 세상에는 그보다 힘이 세거나 기술이 화려한 선수가 널려 있다. 그런데도 나는 그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스턴건 김동현의 유튜브 채널에서 그가 묵묵히 훈련하고, 친구인 고석현 선수를 진심으로 도와주고, 남들보다 한 번 더 구르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를 노력 1호라고 부른다. 사실 특별함이라는 건 처음부터 타고나는 훈장 같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정성을 들이고 지독하게 시간을 쏟는 그 행위 자체가 그 사람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가 Road to UFC 결승전에서 아쉽게 졌을 때 내가 느낀 아릿한 감정은 그가 UFC에 가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그가 특별해지기 위해 보낸 그 지독한 노력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누군가는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미 나에게 그는 수많은 파이터 중 한 명이 아니라, 내 감정과 시간을 공유한 특별한 선수였다.


여기서 김춘수 시인의 <꽃>이 생각났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시인이 말한 이름 부르기는 단순히 호칭을 부르는 게 아니다. 상대가 특별해질 수 있도록 나의 마음과 시간을 할애하는 구체적인 노력이다.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그는 그저 수많은 무난한 몸짓 중 하나였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그의 노력을 알아봐 주고, 그와 서사를 공유하며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특별함이 된다.


연인의 무난해서 좋아라는 말이 섭섭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그 말은 내가 당신에게 특별해지기 위해 들인 노력과 시간을 생략한 채, 나를 다시 이름 없는 몸짓의 상태로 되돌려놓기 때문이다.


결과를 넘어 과정을 꽃이라 부르는 세상


결과만이 모든 것을 증명하는 세상의 옥타곤은 냉혹하다. 결승전에서 패배한 김상욱 선수에게 세상은 “준우승자” 혹은 “UFC 진출 실패”라는 건조한 팩트를 붙여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노력을 지켜본 팬들에게 그는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대체 불가능한 꽃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어 한다. 그 특별함은 결코 타고난 조건이나 무난한 성격에서 나오지 않는다. 서로 시간의 서사를 읽어주려 애쓰고, 상대가 흘린 노력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그 다정한 배려 끝에 피어나는 것이다.


결승전이라는 큰 무대에서 자신의 특별함을 증명하기 위해 지독하게 싸워준 김상욱 선수에게 "정말 고생 많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결과가 어떠하든 그가 들인 시간과 노력은 이미 수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지지 않는 꽃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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