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 인물 비교: 이기주의, 공리주의, 이상주의

결말 스포주의

by 은하수 물류센터

진격의 거인이 하도 재밌다길래 봤다. 필자는 애니는 잘 보지 않으나, 뭐가 그리 그렇게 난리일까 싶어서 봤다. 다 보고 나서 느낀 점은 이건 그냥 거인을 해치우는 단순한 액션 애니가 아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넘어 진격의 거인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선택과 책임, 공동체와 타자에 대한 태도를 묻는다. 거인의 맹렬한 포효 속에서 인간은 싸우는 이유와 목숨을 건 결단의 무게를 사유하게 된다. 에렌 예거, 지크 예거, 아르민 알레르트 세 인물이 던지는 물음은 픽션의 틀을 넘어 우리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처럼 다가온다.


이기주의: 벽 안에 갇힌 채 자유를 갈구하던 에렌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말로 실존적 호소를 드러낸다. 사르트르가 말한 ‘피투성이로 내던져진 존재’와 닮은 그 호소는, 동시에 자유를 좇는 길이 언제나 순탄치 않음을 드러낸다. 미래를 보았으나 그 미래를 바꾸지 못한다는 체념은 에렌을 더 옭아맸다. 스스로 선택의 여지를 박탈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그는 거인이 되었고, 동료를 지키려 인류 대다수를 희생시킨 ‘땅울림’을 선택했다. 그 결단은 자유의 이름 아래 윤리의 경계를 넘어설 때 어떤 파괴와 대가가 뒤따르는지 묵직하게 보여준다. 자유는 파괴와 결부되기도 하고, 선택의 무게는 폭력의 형태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공리주의: 지크 예거의 이상은 “태어남 자체가 고통”이라는 반출생주의적 직관에서 출발한다. 엘디아인의 미래 고통을 막기 위해 출생 자체를 차단하려는 그의 계획은 공리주의의 논리를 극단으로 밀어붙였을 때 인간 존엄이 어떻게 위협받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칸트가 요구하는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근본 명제는 지크의 논리 앞에서 무너진다. 전체 고통 총량을 줄이려는 간절함이 어떻게 개인의 삶과 자유를 송두리째 배제하는 폭력으로 전락하는지를 지크는 보여준다.


이상주의: 아르민 알레르트는 폭력 대신 대화를 선택한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한다면 싸울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이상을 품고 동료와 적을 설득하며 소통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현실의 잔혹함 앞에서 이상은 무력해 보이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칸트적 윤리관이 말하는 인간 존엄 보장을 지향하고, 하버마스적 의사소통 이론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태도는 이상이 현실과 부딪쳐도 지속될 때 어떤 가능성이 생기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위기가 닥치면 현실적 제약 앞에 한계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계속 질문하고 시도한다는 점에서 그의 선택은 “다른 길도 가능하다”는 희미한 불씨를 우리에게 남긴다.


이 세 인물의 대립은 현실에서 우리가 반복하는 윤리적 딜레마와 맞닿는다. 가족이나 공동체를 지키려 타인을 희생시킬 때, 전체 이익을 위해 소수를 희생 양으로 삼을 때, 또는 이해와 협력을 통해 문제를 풀려 애쓸 때 우리 역시 매일 보이지 않는 트롤리 딜레마의 레버를 쥐고 서 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결과와 책임을 받아 안아야 하고 “옳음”이 확정적이지 않다는 사실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후회하기도 한다.


진격의 거인이 던지는 가장 큰 선물은 정답을 제시하는 대신 “끊임없이 질문하도록 만드는 힘”이다. 에렌의 자유 갈망이 부른 폭력의 역설, 지크의 공리주의가 몰고 온 인간성 상실, 아르민의 이상이 맞닥뜨린 현실의 벽 모두가 삶 속 선택의 무게를 곱씹게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내가 그 자리에 선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정답 없는 숙제처럼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이 작품이 일깨우는 것은 자유와 책임, 공감과 존엄,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삶이야말로 우리 존재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선택이 완전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길”을 상상하고 작은 목소리라도 이해와 연대를 시도하는 일이 인간다운 행위임을 깨닫게 된다. 진격의 거인의 장대한 서사는 우리 내면의 질문을 깨우고 그 질문 앞에 멈춰 서는 용기를 북돋운다.


일상의 크고 작은 선택에서 누군가를 향한 태도와 책임을 사유할 때 에렌, 지크, 아르민이 던진 질문을 떠올리면 좋겠다. 완전한 답은 없지만 질문을 멈추지 않을 때 우리는 조금씩 더 성찰하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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