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은 맛없는 음식

미문(美文)에 가려진 맛의 빈곤

by Olive


평양냉면은 맛없는 음식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땅히 존재해야 할 맛의 자리가

의도적으로 텅 비어 있는 음식이다.


우리는 대개 미각의 충만한 밀도를 ‘맛’이라 정의한다.

현대의 미식은 혀의 모든 돌기를 단숨에 장악하는 강렬한 감칠맛과 자극의 경합이다.

라면만 해도 면발 그 자체로 뇌의 쾌락 중추를 타격하고,

뜨거운 국밥은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이루는 조화로 우리를 설득한다.

그러나 평양냉면(이하 평냉)은 이 보편적인 공식에서 철저히 비껴서 있다.


image.png 산미가 있고 슴슴한 부산의 '한월관'
절대적인 맛의 부족

수식어를 걷어내고 혀끝에 닿는 물성(物性)에만 집중해 보자.

고기를 삶아낸 물에 메밀 반죽을 말아 놓은 이 요리는,

직관적인 맛의 총량으로 따지면 낙제점에 가깝다.

면은 무미(無味)에 가깝고,

육수는 입안에서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흩어진다.

'제맛'을 느끼려면, 육수를 입에 머금으며 메밀면을 씹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 제맛이라 일컬어지는 지점조차 사실은 찰나에 불과하며,

그 조차도 미미하기 짝이 없다.


20251231_140855.jpg 달달한 동치미 식초와 비교적 염도가 낮은 서울의 '서령'


그들이 망쳐놓은 이미지

본질적으로 '결핍된' 음식이 미식의 정점으로 군림하게 된 배경에는

자칭 미식가들의 기묘한 교조주의였다.

그들은 평냉 주변에 베타적인 성벽을 쌓고

그들만의 기괴한 규칙들을 양산했다.


어느 TV프로그램에서 소개된 평양냉면 먹는 법

그 시초는 나도 잘은 모르겠다.

일단 위 사진의 주장은,

쇠젓가락이 육수의 온도를 미세하게 변화시키고,

금속 특유의 철분 향을 육수에 전이시킨다는

해괴한 논리를 앞세워 반드시 나무젓가락만을

고집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만행이 있었다.

여기에 겨자와 식초를 가미하면

육수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불경한 짓으로 규정했고,

평냉을 일종의 종교적 순수주의 영역으로 몰아넣었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태생적인 모순 앞에 무력하다.

쇠젓가락의 찰나적인 접촉에는 예민하게 반응하면서도,

정작 차가운 육수를 오롯이 받아내는 그릇은

거대한 스테인리스 그릇이다.


육향이 강하고 염도가 높은 서울의 '우레옥'



또한, 평양 옥류관의 조리사들이

직접 면발에 식초를 쳐서 비벼 먹으라고 권장하는 장면은

한국식 ‘평냉 근본주의’가 얼마나 허구적인 선민의식 위에

세워졌는지를 여실히 증명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결국 그들이 수호하려 했던 것은 맛의 본질이 아니라,

타인의 취향 위에 군림하고 싶어 하는 미학적 허영심일 뿐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되어버렸다.


여기에 더해진 불합리한 가격 책정은 대중의 냉소를 정당화 하는데 한 몫 했다.

정성스레 우려낸 육수와 메밀의 함량을 근거로 내세우지만,

한 그릇의 식사가 제공하는 직관적 만족감과 비용 사이의 괴리는 여전히 메워지지 않는다.


image.png 씁쓸한 메밀면과 비교적 염도가 낮은 부산의 '담미옥'


참으로 너저분한 음식이다

내가 담미옥에 갔을 때, 옆자리에 남자 둘이 앉아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마치 전도하듯 말했다.

“평냉은 이해하려고 하면 안 돼. 그냥 먹고 느껴야 해.”

그 말은 그럴듯했지만, 정작 그 조차도 먹는 법을 모르고 있었다.

그 둘은 육수는 놔두고, 면만 건져 올려 몇 번 씹다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육수를 입에 머금고 면을 함께 씹어야 겨우 성립하는 음식 앞에서,

먹는 방법을 통째로 건너뛴 셈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둘 사이의 대화는 아예 끊겼고,

그릇 속 냉면은 반 이상 남은 채,

결국 그들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장면은 평양냉면의 본질을 정확히 드러낸다.

그냥 먹어도 되는 음식이 아닌,

‘먹는 법’을 요구하는 음식이라는 점에서다.

방법을 알지 못하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방법을 알아야만 비로소 미세한 맛이 느껴진다는 사실.


저 맛없는 음식은 그래서 늘 설명을 동반해야 한다.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왜 이것이 특별한지에 대한 장황한 부연 없이는 존립이 어렵다.

나는 그 점이야말로 평양냉면을 더욱 너저분한 음식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image.png 조금 쫄깃한 면발의 비교적 염도가 낮은 울산의 '풍로옥'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맛없는 음식을 끊임없이 찾는다.

역설적이게도 내가 평냉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 정직한 '맹탕' 속에 숨겨진 미세한 진실 때문이다.

직관적인 양념의 막 뒤로 숨지 않은 채,

고기의 은은한 감칠맛과 향, 메밀의 거친 질감이 교차하는

그 찰나의 순간은 분명한 즐거움이다.

다만 이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 나무젓가락이라는 허례허식이나

미식가들의 거창한 교리를 수용할 필요는 없다.


나는 앞접시를 하나 더 달라고 한 뒤,

거기에 식초를 제법 넉넉히 붓는다.

그리고 면발을 육수 대신 그 접시에 살짝 적셔,

마치 샤브샤브처럼 찍어 먹는다.

그러고 육수를 입에 넣어 같이 즐긴다.

그게 나에게는 맛있는 방식이고, 가장 솔직한 방식이다.


평양냉면은 맛없는 음식이다.

그러나 그 맛없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이 요리의 원형에 닿을 수 있다.

맛이 없기에 자꾸만 그 빈 공간을 채우려 애쓰게 되는 기묘한 유희.

나는 그 과정을 즐길 뿐이다.

그러니 맛없다는 누군가의 비판은 지극히 타당하며,

그 비판과 나의 애호는 같은 평면 위에서 공존할 수 있다.


평냉은 그저 그 자리에 그렇게 슴슴하게 놓여 있을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