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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말 많다 May 25. 2023

하루 더 살기 힘들 거 같은 날

5월 25일 하루 일기

그런 날이 있다. 말 그대로 설상가상

안 좋은 일은 항상 파도에 파도가 밀려오듯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오늘이 그랬다. 매일 일기를 쓸까 말까 고민만 하다가 왜 내가 글을 안 쓰고 실행에는 옮기지 않고 있을까 생각만 하던 찰나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오늘은 어제 야간 근무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채로 피곤에 절어 아침을 맞았다. 출근까지는 3시간이 남았기에 잠을 더 청하기로 했다. 잠은 달콤할 듯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계속해서 눈이 떠졌기 때문이다. 더 이상 누워있는 것은 내 성격에도 그리고 내 몸에도 맞지 않았다. 그래서 일어났다.

대충 옷을 주워 입고는 늘 가던 체육관으로 갔다. 오늘은 가슴운동 해야지 마음먹고 일어났는데 피곤함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 내 원래 무게가 더 힘들게 느껴졌다. 언제나 해오던 운동이기에 얼른 씻고 군배급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왔다. 그리고 늘 그렇듯 가기 싫은 내 직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어야 했다.

그렇게 통제소에 출근을 하고 집중도 안 되는 브리핑을 듣고 상변을 했다. 모든 게 참 마음에 안 들었다. 땅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그 느낌에 기압과 중력 모든 게 영향을 받는 거 같았다. 상번하고 콘솔 앞에 앉으니 그래도  3년간 해오던 일이기에 눈은 뜨고 있었다. 옆에는 일도 못하고 사회생활도 잘 안 되는 어리숙한 소위 한 명이 앉아있었다.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져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해서 사람들이 싫어한다. 어쩌면 모든 사람이 싫어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람 옆에 앉아 불안에 떠는 소위의 모습을 묵묵히 쳐다보았다.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


"이 소위님, 너무 불안해하지 마세요. 천천히 하면 할 수 있어요. 뭐라 하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천천히 차분하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어딘가 자존감이 높아지는 기분, 나는 이 사람의 기분도 생각하면서 조언까지 해주는 속 깊은 통제기사다라는 나 자신만의 만족감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리고 하중사님이 새치 많은 머리를 긁적이며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오늘 저기 누리호 발사한대서 따로 매닝한대. 거기 네가 앉으면 돼."


 나는 속으로 두 번째 쾌재를 내질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를 앉는다니..! 오늘은 쉬는 날이구나. 그렇게 누리호 전담콘솔을 앉아있었다. 사실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주하사님과 교대를 돌았는데, 이 분은 누군가 말하기를 호불호가 확실한 사람이라고 했다. 겉으로 보기에도 그렇고 말을 해보면 이 말에 더욱 확신하게 된다. 안 보일 것 같지만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작은 눈, 강단 있어 보이는 앙 다문 입술까지 남자였으면 장군이었을 것 같은 상여자 이미지였다. 이 분에 대한 호감도가 다른 사람들은 낮아도 나는 호다. 이런 강단도 좋고 자기 주관이 확실한 사람이기에 시원시원하게 까지 느껴졌다. 주하사님과 교대를 하고 쉬러 갔다. 밥 먹은 지 3시간도 안되었지만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매점으로 향했다. 거기서 샌드위치랑 초콜릿우유로 대충 배고픔을 달래고 다시 작전실 안으로 들어갔다.

주하사님의 분위기가 어딘가 달랐다.


"너 NOTAM매닝은 처음이야?"


내게 대뜸 이렇게 물었다. 나는 무슨 뜻인지는 대충 눈치챘지만 모른 척했다.


"아니요?"


그렇게 주하사님은 자리를 떠났고, 쉬는 시간은 다시 돌아왔다. 다시 쉬고 돌아왔을 때는 주하사님은 내게 자리 옆을 내주며 앉아라고 했다. 내게 이 자리에 앉으면 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 조목조목 물어보았다. 나는 내가 하지 않았던 일들을 들으며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잘못한 게 맞았기 때문이다. 이곳에 일 년 이상 근무했다는 놈이 이런 기본적인 것도 안되어있으면 대체 어쩌잔 거니?라는 질문이 내 머릿속을 끊임없이 맴돌았다. 그렇게 모든 청문회가 끝나고 주하사님은 자리를 떠났다. 얼이 나간 채로 앉아있었다. 사실 매점에서도 내가 어제 임무명령서를 잘못 짰다는 사실을 내 선배가 알려주어서 더 정신이 나간 상태였는데, 지금 기분은 설상가상이었다. 모든 게 안 들렸다. 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걸 지금까지 파악도 안 하고 있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싶어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당장 쥐구멍이라도 숨어 들어가고 싶었다. 그렇게 머리가 하얘진 채로 가만히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누가 내게 말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갑자기 급여 관리 전시 가족수령자 등록을 하라고 했다. SWAO1 자리 컴퓨터에 전시 가족 수령자 등록을 하러 갔다. 다 서있길래 거기서 해야 하는 줄 알고 있었다. 옆에 김상사 님은 매서운 눈초리로 지켜보다 물었다.


"이거 어떻게 하는지 몰라?"

"예.."

"휴게실 게시판 좀 봐라! 좀"


한숨이 나오는 것을 숨을 들이마 쉬며 겨우 참았다. 아니 누가 말해줘야 알지. 그걸 거기에 쳐 붙여놓는다고 알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라는 생각에 온갖 잡생각, 쌍욕들이 내 머리를 어지럽혔다. 참 불손한 생각이지만 모니터를 떼서 괴성과 함께 던져버리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생겨났다.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퇴근할 준비를 했다. 내 동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 손목을 붙잡더니 나를 이끌고 임무 명령서 짜는 자리로 향했다. 이 공역은 왜 안 넣었냐, 왜 이건 빼먹었냐 참 듣기 힘들었다. 평소 같으면 웃으면서 받아넘겼겠지만 오늘은 좀 다른 하루이기 때문이다. 동기에게 어떤 리액션도 하지 못하고 짐을 싸 작전실을 나와버렸다. 더 있다간 내가 정말로 괴성을 지르며 다 부숴버렸을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꾸만 잡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임무명령서 짜는 것도 내 선임이 일부러 잘못되게 정보를 알려준 것만 같고, 부족하게 알려준 것만 같다는 생각 말이다. 그리고 이 잡생각들은 거짓인 걸로 이성은 알고 있지만 사실 이건 사실이다. 정말로 부족하게 알려줬고 잘못된 정보를 알려줬다. 일부러 그랬는지는 사실 모른다. 그래 뭐.. 들은 사람이 잘못 들은 거겠지 했지만 아니었다. 분명히 기억했고, 그게 잘못된 것인지는 오늘에서야 알았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하지만 퇴근길에 그 선임과 정다운 척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기분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더 밝은 척했고, 나는 더 망가지고 있다.

집에 가는 길에 왜 그랬냐며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니 내가 죽을 것 같았다. 무력함과 우울감이 나를 죽일 것 같았다. 그래서 달리기를 했고, 이렇게 글을 쓴다.


나는 어쩌면 오늘 근무장에서 만났던 소위였을지도 모른다. 어리숙하고 사회생활도 안 되는 폐급 말이다. 그래도 살고 있다. 하루하루 버티면서 어쩌면 하루를 그만 져버리고 싶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래도 내일을 기다리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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