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의 분위기와 달리 사실 내 삶에는 꽤 좋았던 순간들도 많았다. 특히, 내가 가장 뿌듯했던 점은 하나, 하나의 성취에 내 땀과 노력이 모두 베어있다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원고의 분위기가 무거웠던 이유는 글쎄, 내 스스로가 느낀 모종의 답답함을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한다. 원고에서도 나와 있듯, 나는 내 감정을 누군가 ‘귀찮게’(또는 알아봐주지 않는) 여기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특히 ‘외로운’ 감정은 사람에 따라 참 다양하게 ‘연민’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에, 털어놓는 내 자신에게도 매우 조심스러운 감정이었다.
여기에 더해 자유의지로 꿈을 실현해가며 삶을 살아보려고 했으니 내가 느낀 감정을 누군가에게 온전히 위로받기에는 많은 제약이 붙었다. “네가 원했던 삶이잖아”. 이 말에 나는 삶에서 느낀 모든 답답함(이라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말이라고 여겨지는 단어)을 차곡 차곡, 꾸역 꾸역, 밀어넣었고 이제야 겨우 일부분을 덜어낼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원고의 단 한 편의 에피소드라도 읽어봐준 ‘X’들에게 나는 위로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느꼈던 감정을 사람들에게 조금 더 퍼뜨릴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번 프로젝트는 만족한다.
4년전, 마트에서 일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크고 작은 이야깃거리는 있겠지만 이제 내 인생을 강타할 만큼의 사건은 아직 많지 않은 것 같다. 다르게 표현하면 혼돈의 대격변기를 이미 치룬 상태나 다름이 없는 거다. 지금 살고 있는 내 삶이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사실 그럴 만도 하다. 나는 이제 20대가 아니고, 엄청나게 방황했던 30대 초반도 아니다. 지금은 어떻게 보면 자동차에 이미 시동이 걸린 상태라 강력한 힘을 주지 않아도 알아서 삶이 굴러가는 단계이기도 하다.
지금보다 좀 더 나이를 먹고, (미래의) 나에게 30대 중반의 삶이 어땠냐고 물어보면 그냥 돈만 열심히 벌었던 시기라고 말할 것 같다. 딱 그런 상태다. 겁나게 열심히 일하고, 노동을 해서 착실히 돈을 모았던 단계다. 덕분에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잔고는 점점 채워지고 있고 20대에 그토록 원했던 자산배분이 가능해졌다.
물론 과거와 같은 일생을 흔드는 사건이 없다는 거지, 지금의 삶도 치열하기는 매 한가지다. 현재는 피아노 작곡을 배우고 있다. 내 취미의 마지막 종착역인 작곡에 도전하는 중이다. 아직은 너무나도 모르는 게 많지만 그래도 점점 꿈의 색이 선명해지는 것 같아 조금 뿌듯하다. 과거에 피아노를 배울 때 언젠가 작곡을 해보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꿈 꾼게 엊그제 같았는데.. 지금은 정말 닿을 듯 말 듯 하고 있다. 내가 이것 때문에 피아노를 잘 못쳐도 스스로를 용서했다. 내 꿈은 피아니스트가 아니고 내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돼보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과거에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초조함을 느꼈다. 조기 졸업과 이른 취업, 빠른 방황과 또 빠른 삶의 안정. 이것들에 쫓겨 다니는 삶을 산 적이 있다. 특히 내 인생의 성과물에 대해서는 ‘빠름’에 집착한 면이 많았다. 이런 면이 내가 치열한 삶을 사는 데 원동력이 되어준 것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이번 원고를 마지막으로 나는 더 이상 빠름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결정적인 이유는 지금부터 내가 추구하는 삶이 어쩌면 ‘빠르다’고 해서 결과물로 나올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음악도 그렇고 글쓰기도 그렇다. 이전까지의 삶은 현재의 감정에 충실한 내용을 조금이라도 빨리 기록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면, 지금부터는 그 감정, 내 글에 어울리는 작업을 ‘농밀하게’ 만들어 보고 싶다. 어쩌면 그것 역시 내 나이대가 주는 느낌이겠지. 그런데, 또 어떻게 보면 그것마저 현재의 내가 느낀 생각과 충실한 부분일수도 있겠다(현재의 감정에 충실한 삶을 기록하는 것이... 어쩌면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정말 속이 시원하다. 이렇게 비하인드 이야깃까지 해서 못다한 이야기를 했으니 말이다. 정말 원 없이 내 이야기를 해봤다.
앞으로의 삶은.. 그게 솔직히 어떤 삶일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그냥 응원한다. 대익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