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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오소년 Jun 23. 2023

대배우(상)

팥빙수를 전문점에서 처음 먹은 건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 여름이었다.     


“너 서울에 올라온 진짜 이유가 뭐야?”     


“저… 오빠 비웃지 말고 들어줘. 나는 아무래도 탤런트나 연극배우 중에 할까 봐.”     


오빠는 이를 한껏 드러내며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덕분에 그의 치아사이로 으스러진 팥알과 겸연쩍게 마주했다.     

 

“동생아. 오빠가 한마디만 할게. 슬프게도 우리 집안 자체가 얼굴이 커.”     


사각거리던 얼음알갱이에서 모래 씹는 기분이 들었다. 저항심이 샘솟았지만 애써 미소 지으며 빙수의 볼륨감이 사라질 때까지 휘저었다.     


사촌오빠의 회유작전을 마지막으로 서울 상경기의 싱거운 막을 내렸다. 파닥거리는 활어회 같았던 스물두 살이었다. 날 것이 좋았고 가슴의 진동을 느끼게 해 줄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엄숙하고 딱딱한 책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밀대잡이부터 시작했다는 어느 배우의 기사를 읽고 무작정 서울로 갈 채비를 했었다.      


‘서울 가면 뭐라도 되겠지.’ 막연했고 용감했다. 주로 해 뜰 무렵에 잠을 청하고 해 질 무렵부터 돈을 벌었다. 수많은 접시를 나르고, 정신없이 테이블을 닦았다. 지금에 고행이 훗날 ‘대배우의 접시닦이’로 조명되길 바라면서. 쉬는 날에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접어 썼다. 나이 든 고모의 말동무가 되어 드리고, 자진 한 건 아니지만 거실에 붙은 화장실 청소를 전담했다. 대가 없는 호의는 없었다. 짤랑짤랑 동전을 챙겨 오락실 노래방을 찾을 때도, 주야장천 소극장에서 연극을 보면서도 항시 주변을 의식했다. 수많은 관계자의 눈에 띄어 캐스팅 제의를 받는 상황을 몇 번이고 그렸다.     


300:1의 공채 탤런트 서류 심사에서 탈락하자 기다렸다는 듯 고모네 가족들은 돌아가며 차례로 밥을 사주었다. 그들은 인생 선배를 운운하며 간섭과 충고를 섞었고, 나는 ‘인생을 허투루 살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고모의 집에서 나와야 했다.  




             





열차가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서류에 넣어 보냈던 프로필 사진을 꺼내 들었다. 연둣빛 아크릴 니트를 입은 어린 여자가 말갛게 웃고 있었다.   

   

‘크긴 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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