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포탈 플라스틱 서저리(10)

by 모호

7-1.

갤럭틱 스페이스의 우주선은 1억 년가량 우주를 떠돌았다. 프록시마 센타우리, 안드로메다의 항성계들 모두 인간이 거주 가능한 행성은 없었고 결국 우주선에 탑재된 프로그램은 지구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인류력 1억 1,000년, 우주선은 지구상 최후의 인류 위에 착륙을 했다. 그리고 우선적으로 플라이 어웨이의 전임 회장과 마지막 회장, 그리고 지훈을 디스크로부터 부활시켰다. 우주선 밖으로 나온 그들은 혼란스러웠다. 녹음으로 우거진 도시에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문명의 흔적조차 희미했다. 주변을 탐색하던 그들은 검고 끈적이는 진창을 지나 덤불 속에서 회색 빛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플라이 어웨이 본사의 최상층부였다. 오랜 기간 쌓인 퇴적물로 다져진 땅 속에서는 본사 건물의 나머지 부분이 묻혀있을 것이다. 회색 빛의 본사 최상층부는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건물이 유지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기나긴 동면을 하고 있었으리라 예측되었다. 회장 일행은 우주선 밖으로 나오기 전에 지구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지구가 왜 이렇게 변한 것인지 에 대한 사정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플라이 어웨이의 동면을 깨워야 했다.

건물의 복도의 창문을 깨고 들어가 회장실 문을 열고 들어간 회장 일행. 그곳에는 미래전략AI의 본체가 동면모드에 들어가 있었다. 사람들에게 잊힌 뒤 외부로부터의 전원공급이 끊겨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최소한으로만 사용하며 잠들어 있었다. 지훈은 주머니에서 AA배터리 두 개를 꺼내 기계에 삽입했다. 약간의 전력을 얻은 AI는 동면에서 깨어났고 그들은 그 사이 지구에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히 살펴봤다. 정말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인류가 멸망했다니. 결국 인류의 생존 기간은 공룡의 그것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점이 못내 실망스러웠다.


과거는 단절되었으니 이제 새로운 시작이 있을 때다. 회장은 인류의 재건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AI에게 물었다. 하지만 3V의 전력만으로는 복잡한 시나리오를 출력할 수 없었다. 지훈은 한편에 놓인 비상 발전기를 살펴봤지만 이미 등유는 바닥이나 있었다. 회장은 방안 어디선가 석유 냄새가 난다며 코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녔고 바닥에 어지러이 흩뿌려진 발자국에서 그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까 지나온 검고 끈적이는 진창은 바로 석유와 진흙이 섞인 것이었다.

지훈은 간단한 증류기를 만들어 석유를 증류해 등유를 얻었고 이로서 비상 발전기를 돌릴 수 있었다.(한참 지난 뒤에 이 석유의 기원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실은 제3차 세계대전의 최종격전지가 플라이 어웨이 본사 근처였으며 그때 발생한 대량의 시체더미가 퇴적되어 석유화한 것이었다.)


전원 공급이 충분해진 AI에게 회장은 인류의 재건에 대해 다시 물었다. AI는 이전처럼 단순한 답을 주지는 않았고, 시나리오 하나를 보여주었다.


-원하는 결과 : 신인류의 번성

-선택지: 인체 재합성기의 사용: 한다 /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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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자유의지에 맞김


*신인류 시나리오

-우주선에 타고 있던 인체 디스크를 전부 다 프린트한다.

-그 과정에서 영생을 얻은 33명의 사람들은 플라이 어웨이 본사에 머물며 AI를 관리하고 AI와 바깥 세계를 잇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외부로부터의 들어온 질문에 대한 AI의 대답을 추상적인 말로 전달한다.(훗날 이들은 33인의 전달자라고 불리게 된다)

-19명의 생식활동이 불가능하지만 유한한 생명을 가진 사람들은 문명의 재건에 힘을 쓴다.(훗날 이들은 19인의 현인들로 불리게 된다.)

-48명의 생식활동이 가능한 사람들은 신인류의 재생산을 가장 중요한 일로 삼는다.(훗날 이들은 48명의 어머니와 아버지로 불리게 된다.)

-3세대쯤 시간이 지났을 때 19명의 현인들은 모두 사망하지만 그들의 가르침은 여전히 남아서 신인류의 문화 속에 살아 있다.

-48명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사망한 뒤 대규모의 추모 행사가 열리고 그날은 신인류의 가장 큰 기념일이 되어 가족과 친족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33인의 전달자는 건물 밖으로 나가는 법이 없으며 점점 더 신격화되어간다.

-그리고 신인류는 번성한다.


회장 일행은 우주선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들 3인은 원탁에 앉아 아무 말도 없이 한참을 있었다. 그러던 중 침묵을 깨고 회장이 말했다.


“사람에게 자유의지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 걸까요?”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지훈이 대답했다.


“있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전 회장이 답했다.



그들은 인체 합성기의 작동 버튼을 눌렀다. 우주선 안의 기계들이 부산스럽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 날짜가 어떻게 되지?” 전 회장이 물었다.


“1년 1월 1일입니다.”


신인류력 원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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