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포탈 플라스틱 서저리(09)

by 모호

6-1.

AI는 전 세계로 퍼졌고 세계 각국에서는 이에 대한 검증절차가 들어갔다. 그사이 AI는 더욱 발전해 99%의 예측 성공률을 보였고 각국의 정부에서 AI를 중대 사안 결정에 사용하기까지는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러다이트 운동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불씨가 다시금 지펴졌지만 이를 간단히 예상해 버린 AI덕분에 큰 반향 없이 폭동과 혁명은 진압되었다.

그즈음의 플라이 어웨이는 이미 회사의 형태가 아니었다. 하나의 거대한 초유기체 같은 회사는 자신의 경계를 물리적으로 두려 하지 않았다. 국가를 초월해 범 인류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었고 더 이상 회장을 두지 않고 회사 그 자체의 연결성으로만 일을 진행시켜 갔다. 그 결과 텔레포탈 플라스틱 서저리의 특허는 전 세계로 공유되었다.


미래의 집이 부서지고 묘비가 세워졌다. 묘비에는 미래의 요청대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의 전문이 이 새겨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지구 위에는 나이가 들지 않으며 선택을 하지 않는 인류만이 남게 되었다.



6-2.

지구상의 마지막 필멸자가 죽은 뒤 지구는 불멸의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늙지 않는 것뿐이지 자살과 살해는 여전히 일어났다. 더 이상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세상에서의 죽음은 인류 종말의 시나리오로 한 발씩 착실하고도 확실하게 내딛는 것임을 알아챈 인류는 전쟁을 멈추었다. AI는 인류 종말을 막기 위한 방법을 명확하게 제공했고 많은 사람들은 그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 무렵 AI는 더 광범위하게 퍼져 모든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AI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고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인류는 AI에 대한 의존도가 특이점을 넘기 시작했다. 오늘 점심메뉴 같은 사소한 것 하나도 AI에 물어보기 시작했고 어느샌가 모든 결정을 AI에 물어보기에 이르렀다.

AI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는 항상 긍정적인 결론을 만들어냈고 사람들은 점점 결정하는 법을 잊어갔다. 모든 선택을 AI에게 맞기며 그저 현실을 살아내기만 하면 되는 사람들은, 영생으로 무한한 미래를 얻었지만 오로지 현재 속에서만 살아가게 되 는 모순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 하지만 이에 의심을 품는 사람들은 없었다. AI가 그렇게 살아가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현재만 존재한다면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도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렇게 삶이 고착된 상태로 시간은 흘러갔다.


인류력(Holocene Calendar) 32,024년에 이르러 텔레포탈 플라스틱 서저리를 원래 목적이었던 순간 이동으로 사용하는 기술이 완성되어 전 세계는 하나의 문화권으로 통일되었다.(그리고 원래 목표대로 드디어 집값이 내려갔다) 인구는 줄었고 식량은 풍부했으며 갈등도 일어나지 않았다. 과도한 평화와 풍요의 시기가 지속되었고 결핍이 없어진 사람들은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인류는 이제 더 이상 AI에게 질문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사람들의 사고는 점차 단순해져 갔다.


인류력 40,000년쯤에 이르러서는 지구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간빙기가 끝이 나고 빙하기의 초입에 접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간 누려왔던 풍요는 사라지고 점차 갈등이 다시 발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AI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이미 잊어버린 뒤였으므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구했지만 최악의 결정만 할 뿐이었다. 갈등은 점차 커져갔고 인구수는 다시 줄어들기 시작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식량 문제가 점점 대두되자 세계는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조짐이 보였다. 그나마 지적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이를 막기 위해 대중들 앞에 나서서 그들을 설득하려 했지만, 이들마저 테러에 의해 하나 둘 제거되었고 이들의 사망으로 인해 인류의 평균 지능은 떨어져 갔다. 그리고 결국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말았다.


*제3차 세계대전

머나먼 옛날 아인슈타인이라는 똑똑한 과학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은 어느 날 세계 3차 대전에서 어떤 무기가 쓰일지에 관해 물어보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대답은 ‘3차 세계 대선에서 어떤 무기가 쓰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다음 제4차 세계대전에서는 아마 돌멩이와 나무 막대기가 쓰일 것이다’ 였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돌멩이와 나무 막대기는 제3차 세계대전에서 애용되었다. 평화의 시대가 너무 오래 지속된 나머지 냉병기의 시대로 퇴화한 전쟁기술 때문에 투석기와 투창, 칼과 방패가 주요하게 사용되었다.

인류는 두 집단으로 나뉘어 싸웠다. 사람들은 그동안 죽음과는 너무 동떨어진 삶을 장시간 살아온 탓에 오히려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또한 상대방의 죽음에도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므로 한쪽 집단이 완벽하게 승리할 때까지 끝없는 싸움을 계속했고 최후의 격전지에서는 수백만 구의 시체의 산이 쌓였다. 그렇게 인류의 숫자는 급격하게 줄어갔다.



6-3.

세계 대전 이후로 살아남은 인류는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호모 사피엔스의 경우엔 집단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 지구를 장악할 수 있는 큰 힘이었는데 집단이 줄어들수록 자연에서의 입지가 점점 좁아져갔다. 커다란 맹금류의 공격에 아주 적게나마 사람들이 죽기 시작했고, 아주 작은 세균들의 공격으로는 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인구 전체에 비하면 미미한 수였지만 출산 없이는 회복할 수 없는 비가역적인 인구의 감소이기 때문에 충격은 착실하게 쌓여 갔다.


인류력 1억 년이 되었을 때 인구는 열 명 미만으로 줄어있었다.



6-4.

인류력 1억 1,000년, 최후의 인류는 들판에 누워있었다. 이제는 어떠한 의지도 남아있지 않았고 그저 생존을 위해서만 행동할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대화를 했던 동료는 100년 전에 사망했고 그 뒤로 언어능력이 점점 사라졌다. 언어가 사라지니 생각의 정교함도 사라졌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요즘은 참 날씨가 좋다. 항상 청명한 하늘이다. 관리가 되지 않은 건물들에는 넝쿨들이 무성했고 도시는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저 멀리서 검은 점이 보인다. 그 점은 점점 가까워 오고 엄청난 열풍이 느껴졌다. 검은 점은 전날 밤에 보았던 보름달만큼 커졌고 열기는 한여름 낮의 태양보다도 뜨거워졌다. 검은 점은 마지막 남은 인류에게로 돌진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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