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포탈 플라스틱 서저리(08)

by 모호

5-1.

거울 속에 비친 미래는 70년의 세월이 그대로 얼굴에 묻어있다.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은 저항의 상징과도 같았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출산을 포기하고 영생을 택했지만 미래는 그대로 늙어가기를 택했다. 거울 옆에 있는 20,000m²크기의 TV에서는 연일 갤럭틱 스페이스의 성간 여행 우주선 발사 소식으로 떠들썩하다. 25층짜리 아파트 한 동 크기의 엄청난 우주선이지만 작은 TV화면 속에 있으니 그 거대함이 실감 나지 않았다. 집안은 여전히 단출했고 물건이 많이 없는 탓인지 20년 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미래는 집 밖을 나와 자신만큼 나이 들어버린 내연기관 자동차에 시동을 건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단층집이 쭉 늘어서 있는 마을에는 다들 미래 나이대로 보이는 노인들이 뿌연 하늘 아래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 마을 곳곳에는 주민들만큼 나이가 든 나무들이 유난히 풍성한 잎을 자랑하며 서있다. 미래의 건너편 집의 노인은 얼마 전 사망한 모양이다. 인부들이 집을 부수고 그 자리에 묘비를 설치하고 있다. 이미 미래의 마을에는 집 사이사이 듬성듬성 묘비가 꽤 많이 자리했다. 묘비 모양도 꽤 다양하고 색도 다양해서 미래는 개인적으로 이런 마을 풍경을 마음에 들어 했다. 원래 죽음은 친구처럼 주변에 항상 함께하는 것이니까.

미래가 있는 곳에서 도심까지는 꽤 먼 길이라 미래는 조금 서두르기로 했다.


20년 만에 세상이 완전히 변했다. 미래처럼 영생을 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하며 외곽지에 모여서 기꺼이 늙어가기 시작했고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도심에 모여 영원할 것만 같은 삶을 누리며 살았다. 젊은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고 불임과 영생을 택했고 아이들의 수는 점점 줄기 시작했다. 법적으로 20세가 되면서부터 시술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20년이 지나자 미성년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미 나이가 들어버린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시술을 받고 노화를 멈췄고,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25세에서 30세 초반 사이에서 노화를 멈추는 것을 주로 택했다. 이 결과 청년층이 나날이 증가했다. 당연히 초등, 중등교육기관은 사라졌고 얼마 없는 아이들은 각자 집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고 성년이 되어도 미성숙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기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청년층의 사람들은 겉보기 나이로는 정신연령이나 기초 지식의 수준을 확인할 수 없었고 이를 위해 간단한 시험이 생겨났다. (웹사이트 하나 가입을 하려면 풀어야 하는 수학문제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며 다들 불만이 늘어났다.)


미래가 운전하는 차는 노인들의 마을을 지나 허허벌판을 달린 뒤 각종 종교의 기호들이 섞여 있는 조형물이 있는 마을 어귀를 지나간다. 어떤 여성이 길가에서 미래의 차를 향에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손에는 살짝 기울여 쓴 절 만(卍) 자와 십자가(十)를 합성한 표식이 있었다.(아닌가? 저거 하켄크로이츠 아닌가!? 잘못 봤나?) 여기 이 동네는 조심해야 한다.

사고나 자살이 아닌 이상 죽음에 대해 신경을 쓸 필요 없는 사회가 되면서, 사후 세계를 보장해주거나 윤회 사상을 근간으로 두는 종교들은 점차 세력이 줄어들었다. 소수의 극성 종교인들은 죽음을 회피하려는 자들에게 천벌이 내려질 것임을 강조하며 저마다의 신들에게 기도를 했다. 하지만 신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만큼 세속적인 신이 아니었던 탓인지 몰라도 신은 그다지 적극적으로 세상에 벌을 내리지 않았고,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결국 과격파 들은 직접 천벌을 내리기로 했다. 그들은 텔레포탈 플라스틱 서저리 기기를 폭파하기 위한 수많은 방법을 구상했지만 미래전략AI의 상상력을 뛰어넘지는 못했고 대부분의 계획은 초기 단계에서 제지되었다. 결국 그들은 사회에서의 입지를 잃어갔고 도시 밖 외곽지의 들판에 모여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이루었다.(관점에 따라서는 디스토피아 일지도 모르지만.) 비이성적인 사람들이 모여든 만큼 종교들은 주먹구구식으로 통폐합되어 여러 가지 교리를 통합한 기묘한 형태의 새로운 종교들이 탄생했고 각각의 종파들 마다 다른 군집을 이루어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는 형태로 아슬아슬한 평화의 시기를 맞이한 상태였다.


미래는 회색빛의 도시 초입으로 진입했다. 이곳은 생물학적으로 젊은 사람들 밖에 없는 곳이었다. 사실상 노화가 멈춘다면 사회적 나이는 의미가 없다. 시술을 받은 시점으로 나이가 고정되는 것이다. 이는 영원한 젊음과 활력과 청춘의 푸르름을 보장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상 영원한 노동이라는 함정을 숨겨놓고 있었다. 사회적 나이의 개념이 사라진다는 건 은퇴의 시기가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논의 끝에 정부는 한 개인이 낸 세금이 일정 수준 이상이 쌓이게 되면 연금이 지급되고 그제서야 은퇴가 허용된다는 법안을 발의했다. 사실상 나이나 계급 대신 가진 돈의 크기가 그 사람에게 지위를 부여해 주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점차 노동계급이 줄어들어 그 연금을 지급받기 위한 세금 납부액은 점차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에 대해 생각보다 큰 반향은 없었다. 영원한 삶을 가난을 짊어진 채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당연히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난을 벗어난 이후의 삶도 영원하기 때문에 가치판단을 하기 어려워져 사람들의 분별력이 흐려진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기초교육이 부실하기도 했고. 그리고 세금 납부액은 점차 올라갈 테니까 불평불만을 하는 것보다 하루라도 빨리 연금 수령자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했다.

이 구역은 아직까지 세금을 많이 납부하지 못한 ‘진짜’ 젊은이들이 모여서 생활하는 곳이었다. 거리는 지저분하지만 활기차고 사람들은 젊은 모습이었지만 도시는 낡아가고 있었다. 노동을 위한 최소한의 향락만 제공되는 이곳은 다양한 색채가 소멸된 낮은 채도의 공간일 뿐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어려있었고 그것은 도시 안쪽을 향하고 있었다.


미래는 도시의 중심부를 둘러싼 거대한 벽을 향해갔다. 도심으로 들어가기 위한 검문소에 다다르자 검문소 직원들이 미래의 차를 세우고 신분증을 요구했다. 그래도 아직 치안은 좋은 편이어서 중무장을 한 군인들이 아니라 공무원들이 검문을 맡고 있었다. 미래는 카드형태의 신분증을 제출했다. 검문소 직원은 신분증속의 사진과 미래의 얼굴을 한참이나 대조해 보았다. 그리고는 윗사람을 불러 여러 명이 둘러싸고 신분증과 미래를 번갈아 보았다. 미래는 ‘신분증 사진을 올해 새로 찍을걸..’하고 후회를 했다. 노화에 대한 개념이 희미해진 사람들은 인간의 얼굴이 나이 들어가며 변한 다는 것을 개념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나이가 들어가는 사람을 본 적이 드물다 보니 필멸자의 몇 년 전의 과거사진을 보고 현재의 모습을 유추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기나긴 신분 확인 절차가 끝이 나고 미래는 도심으로 진입했다. 그녀는 어렸을 적 SF영화들을 보면서 미래를 상상하곤 했다. 날아다니는 자동차나 현대의 감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옷들과 이음새 없이 매끈하게 쭉 솟아있는 건물, 도시 곳곳의 홀로그램 광고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이를 떠올리며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가졌었다. 하지만 모든 예측은 빗나갔다. 도심의 모습은 20년 전과 거의 그대로였고 크게 변하지 않은 건물과 사람들을 지나 플라이 어웨이 본사를 향했다.

영원히 산다는 건 사람들의 시간 감각을 느리게 했다. 내일도 모레도 10년 후도 100년 후도 오늘과 같은 상태라는 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제거한다. 불안이 점차 제거된다는 것은 보험 취소율로 증명이 되었다. 10년 전에 마지막으로 남은 보험사가 문을 닫고 나서는 보험이라는 단어 자체가 점차 사어가 되어가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약해지는 불안감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성장 동력도 떨어뜨렸다. 오늘이 내일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은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었고 인간이 주도하는 과학의 발전은 정체되었다. 그 외에도 병원과 각종 인프라가 줄어들었고 저소득 층들은 결국 도심 밖으로 나가서 살게 되었다. 그 뒤로 검문소가 생겨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고 이 ‘주류’ 사회의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를 잊었다.


미래는 플라이 어웨이 본사 앞에 주차를 하고 끝없이 위로 올라갔다. 오랜만에 들어간 회장실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있다. 벽을 장식하던 모든 것이 사라졌고 방 안에는 소파하나, 책상, 의자와 커다란 컴퓨터 같은 기계와 그것과 케이블로 연결된 발전기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회장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회장은 여전히 늙지 않고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회장도 시술을 받은 걸까?

“네, 오랜만이네요. 여전하시군요” 하지만 악수를 할 때 느껴지는 손의 주름과 손을 흔드는 힘은 회장도 나이가 들었음을 시사했다.

“저를 부르신 걸 보니 또 큰일이 있나 보군요.”

“서두를 것 없으니 앉아서 이야기할까요”


미래와 회장은 서로 마주 보고 소파에 앉았다. 방 안에는 발전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가득했다. 기름냄새가 나는 걸로 보아 등유를 사용하는 발전기인 것 같았다.


“저건 뭔가요?” 미래는 컴퓨터를 가리키며 물었다. 사람 크기만 한 컴퓨터였다.

“저건 미래전략AI의 서버예요. 본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미래전략AI가 특이점을 돌파했다고 한다.


*특이점

폰 노이만이 처음 개념을 언급했고 2005년 레이 커즈와일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를 통해 대중적으로 용어가 전파되었다. 이 책에서는 복잡하고 방대한 개념을 담아 이야기하고 있는데, 회장이 설명한 미래전략AI에 한정해서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달하여 언젠가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들이 자신의 설계(소스 코드)에 접근해 변형을 시킬 수 있다면 스스로 자신의 프로그램을 진화시킬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인간의 개입이 없이도 인공지능이 자신을 끝없이 개선할 수 있게 되면 이는 인간의 인식을 넘어서는 폭발적인 성능 향상을 가지고 오며 결국 인류 전체의 지적 능력을 넘게 된다.

때마침 영생을 얻은 인류의 게으름으로 인간의 기술 발전 속도가 느려졌고, 미래전략AI는 스스로 진화하여 특이점을 넘었다고 판단되었다.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검토하고 실제 일어난 결과와 맞춰보고 자신을 재 프로그래밍 하기를 거듭한 결과 미래 예측 성공률이 80%를 넘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거의 99%에 근접할 것이며 이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AI에 물어보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류는 AI에게 의사결정을 맡기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큰 문제점이 있는데, 그 결정의 도출 과정을 인간의 지적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회장의 설명을 들은 미래는 우울한 미래를 떠올렸다. 발전기의 시끄러운 소리와 기름 냄새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그저 AI가 하라는 데로 하면 문제가 해결이 된다면 인간의 자유 의지가 필요할까요?”

“그런 철학적인 이야기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경영자일 뿐이니까요.”


그때 지훈이 문을 열고 들어와 발전기를 껐다. 회장실은 조용해졌다.

“제가 깜빡하고 비상발전기를 안 껐네요”지훈은 정직하게 20년의 세월을 보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키가 조금 줄은 것 같기도 했다. 지훈과 미래는 간단히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같이 늙어가고 있음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지훈과 회장과 미래는 끝없이 내려갔다. 지하 연구실 앞에 당도하자 40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가 떠올랐다. 모든 일의 시작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연구실 안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긴 연구실 인테리어에서 유행이라는 게 있진 않을 테지. 하나 변한 게 있다면 송수신기 사이에 다른 장치가 하나 추가된 점이다. 바로 양자화 디스크 장치였다.


“내일 갤럭틱 스페이스의 우주선이 출발하는 건 알고 계시죠?”

“네”

“양자화 인간 디스크 100개를 싣고 갈 거예요. 지금 까지 97개 실었고 이제 세 개 만 더 만들면 돼요”


미래는 지훈과 회장을 바라봤다.‘이번에 나를 부른 이유가 이거라고?‘


“세 개요? 나는 지구를 떠날 계획이 없는데요?” 미래는 당황한 듯 말했다.

“아, 아닙니다. 저랑 회장님 그리고 전임 회장님이요. 이미 20년 전부터 이곳에 계시죠” 지훈은 책상에 놓인 양자화 인간 디스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디스크 세 장을 갤럭틱 스페이스로 전해달란 말인가요?”

“아닙니다. 디스크는 그쪽에서 직접 가지러 오기로 했어요. 미래님에겐 미래전략AI 관련 부탁이 있습니다. 한 달 정도가 지나면 예측률이 90%를 넘을 것 같은데 저희가 내일 당장 지구를 떠나야 해서 말이죠. 그때 미래전략AI를 세상에 내어놓을지 말지를 좀 정해주세요.”


회장은 가벼운 어투로 지구를 떠난다고 말했다. 이상하게도 긴장이나 기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것 같은 태도였다.


“네.. 알겠습니다. 마지막 업무가 되겠군요” 미래가 말했다.

“네 그동안 참 수고가 많으셨어요.”

“그런데 왜 우주로 가려고 하는 거예요? 이것도 AI에게 물어본 건가요?”

“아뇨, 이건 물어보지 않았어요. 그전부터 계속 준비하던 겁니다.”

“무슨 소행성이 충돌해서 지구가 멸망할 위기에 처한 것도 아니잖아요.”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나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우주와 별들은 까마득하지만 확실히 존재하고 있잖아요. 그곳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천문학이라면 저도 좀 찾아봤습니다만 망원경으로 충분히 둘러볼 수 있지 않나요?”

“우주를 관측하면 우리는 항상 과거밖에 볼 수 없어요. 가장 가까운 은하인 안드로메다 은하도 250만 광년 떨어져 있어요. 안드로메다에서 출발한 빛이 우리의 눈에 들어오기까지 250만 년 걸린다는 소리니까 우리는 현재의 안드로메다의 상황을 볼 수 없죠. 미래씨, 우리는 미래까지는 어렵더라도 적어도 현재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항상 과거밖에 볼 수 없다.. 미래는 막연한 느낌이지만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미래전략AI를 통해 미래를 미리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우주적 스케일에서는 현재 조차 보지 못한다니. 이 회사와 엮인 문제는 항상 모순 덩어리 그 자체였다.


“저희는 이제 준비하겠습니다.” 지훈은 기계를 가동했다.


미래의 머릿속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제 이것으로 이 회사와의 인연이 드디어 끝나는 건가. 지금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언어가 생각을 따라가지 못했고 생각은 감정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러다 엉뚱한 궁금증이 떠올랐다.


“그런데 말이죠 ‘미래전략AI’라니.. 이름을 좀 멋있게 지을 순 없었어요? 세상을 바꿀 기계 이름이 그게 뭐예요 촌스럽게..”


미래의 질문에 지훈은 기계 조작을 잠시 멈추고 이야기했다.


“칠레는 대기가 건조해서 천체망원경을 설치하기 좋아요. 그래서 세계 각국 과학기관에서 공동 출자해서 커다란 망원경을 하나 만들었거든요. 그거 이름이 VLT예요. 무엇의 약자인지 알겠어요?”

“VLT?” 미래는 풀 네임을 추측할 수 있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Very Large Telescope. 엄청 큰 망원경이라는 거죠.” 그런데 그 뒤에 훨씬 더 큰 망원경을 만들었거든요? 그거 이름은 ELT에요” 지훈이 말했지만 미래는 ELT가 무엇의 약자인지 생각해 보려 하지도 않았다.


“Extremely Large Telescope, 그냥 무진장 큰 망원경이라 이거죠. 과학자들에게 뭘 바라십니까” 지훈은 웃으며 기계를 다시 가동했다.


5-2.

우주선은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우선 다른 항성계의 골디락스 존에 있는 행성으로 가서 대기와 온도 등의 환경을 분석한 뒤 적절하면 착륙하여 인간들을 프린트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항성으로 옮겨 가는 식으로 운용될 예정이다. 신인류를 실은 우주선은 수 억년이 걸릴지 모르는 항해를 나섰다. 인류가 범선을 만들어 끝이 보이지 않은 바다를 탐험하려 나섰던 것처럼 말이다. 과연 그 끝에는 신대륙이 있을 것인가.(사실 이 관점은 너무나도 서구 중심적인 생각인 것이, 그들에게나 신대륙이었지 원주민들에게는 구대륙이었고 그들은 침략자일 뿐이었겠지만) 아니면 우리보다 더 고도로 발달한 호전적인 우주의 어떤 문명에게 지구의 위치를 알려주어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인가.


*어둠의 숲 가설(Dark forest theory)

우주는 무한히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나 충분히 크다면 당연히 우리 인간의 문명과 같이 외계의 지적인 생명체가 세운 외계 문명이 당연히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1950년 여름, 엔리코 페르미는 다른 세계적인 과학자들과 점심식사를 하던 중 이런 대화를 나눴고 다들 고등 외계 문명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서 동의를 했다. 그때 페르미가 질문을 던졌다 “그럼 어디에 있지? (Where are they?)” 이 질문은 ‘페르미의 역설’로 불린다. 이후 이 역설에 관해서는 수많은 논쟁이 있었고 많은 가설들이 세워졌는데 그중 하나가 ‘어둠의 숲 가설’이다. 우주 문명 간의 접촉은 필연적으로 어느 한쪽의 멸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서로 다른 문명에게 발견되는 것을 꺼린다는 내용이다.


어두운 숲에서 사냥꾼이 깨어났다. 이는 간밤에 죽지 않고 살아남았음을 뜻한다. 그는 항상 홀로 지냈다. 그간 본 것들이라고는 풀숲과 나무들뿐 자신과 비슷한 생명체는 전혀 만나보지 못했다. 숲은 어둡고 조용했다. 어느 날 사냥꾼은 고독에 못 이겨 소리를 질러 다른 생명체를 찾아보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 저 멀리서 자신보다 먼저 소리를 지르고 있는 생명체의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몰래 다가가 근처 풀숲에서 숨어 그 생명체를 지켜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 생명체가 소리를 지른 이유는 무엇일까? 소통을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소리로 유인해서 나를 죽이려는 것일까? 만약 아니라 해도 나와 말은 통할까? 지금 짓고 있는 표정이 어떤 의미일까? 일단 내가 웃으면서 다가가면 되지 않을까? 웃고 있는 내 표정을 보고 되려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이렇게 그 생명체로 다가가기를 고민하는 사이 건너편 풀 숲에서 또 다른 생명체가 알 수 없는 무기로 그것을 죽여버렸다. 숲은 다시 조용해졌다. 사냥꾼은 역시 내 위치를 알리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3

한 달은 금방 지나갔다. 그 사이 미래는 계속 회장의 방에 머물며 미래전략AI를 테스트했다. 방 한쪽에는 여러 대의 모니터를 설치하고 세상의 모든 뉴스들을 정리해서 틀어놓고 AI가 내놓는 결과와 비교를 해보았다. 그동안 각종 시뮬레이션을 계속해본 결과 AI가 아무리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결국에는 올바른 선택이었다. 미래가 판단했을 때 도덕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전혀 말이 안 되는 결정도 결국 그 길을 따라가다 끝에 서면 그 말도 안 되는 결정이 옳았다고 평가되는 식이었다. 그런데 결국 모든 결정을 AI에게 맡긴다면 사람은 무슨 존재가 되는 것일까? 이것을 세상에 내어 놓아도 되는 것일까? 미래는 혼란스러웠다. 미래는 세상을 바꿀만한 기자회견을 이미 두 차례 경험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은 상황이 달랐다. 회장도, 미영도, 지훈도, 임원들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결정만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이다. 너무 큰 짐을 자신 혼자 지게 되는 것이 버거웠다.

미래는 한참을 고민한 뒤 미래전략AI의 프롬프터에 다음과 같이 입력했다.


-원하는 결과 : 호모 사피엔스의 안녕

-선택지: ‘이미래’가 미래전략AI를 세상에 내보낸다: 한다 / 안 한다

.

.

-결론 : 안 한다


의외의 결과에 미래는 당황했다. AI를 내놓지 않는 것을 고를 줄이야. 사실 미래는 AI가 탐탁지 않았고 근 한 달 사이 부정적인 생각이 강해지던 중이었다. 그래서 내심 AI를 이곳 안에 가둬두고 세상에 풀어놓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AI가 이것까지 예상을 하고 결론을 낸 걸까. AI 데이터에는 미래에 관한 데이터도 충분히 많을 것이 뻔했고, 그로 인해 미래의 마음까지 예측할 수 있었을까. 미래는 AI기계를 쳐다봤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차가운 금속 덩어리일 뿐이다. 게다가 엄밀히 말하면 그 기계는 미래전략AI라는 소프트웨어를 담고 있을 뿐이었다. 복잡한 연결망 그 자체가 미래전략AI였고 사람의 눈으로는 좇을 수도 없는 전기적 신호들의 범람은 미래가 어떠한 결정도 내릴 수 없도록 만들었다.


미래는 고민에 휩싸였다. AI의 결정을 따라갈 것인가. 그리고 심사숙고 끝에 미래는 자유의지를 발현하기로 했다.


미래전략AI는 전 세계로 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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