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포탈 플라스틱 서저리(07)

by 모호

4-9.

뒤 이은 연구에 따르면 텔레포탈 플라스틱 서저리를 받은 사람의 불임 확률은 52%였다. 이 연구 결과가 발표되자 사회는 큰 혼란에 휩싸였다. 낮은 출산율에 대한 정책 실패의 책임을 회피하고 싶었던 정부는 플라이 어웨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비 정기적인 세무조사가 진행되어 창사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회계자료를 다 가지고 갔으며 (사실 언론의 발표와는 다르게 모두 다 가져가진 못했다. 자료가 너무 많았다. 요즘 시대에 누가 회계 자료를 종이더미로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상상이나 했을까. 얇은 팔다리를 지닌 국세청 공무원 직원들은 낑낑대며 종이 뭉치들을 날랐다. 그때 공교롭게도 회사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났고 그들은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말과 함께 돌아갔다) 임원들은 계속해서 검찰에 불려 갔다.(검찰들은 임원의 개개인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매번 같은 사람이 오는 거 같아서 처음에는 화를 냈다고 한다. 이를 알아챈 임원들은 서로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다른 임원을 대신해서 간 적도 있다고 한다. 물론 검찰 조사 과정에서 발각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회장과 미영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 얼마 전부터는 김지훈 박사도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이 정보를 빨리 알아챈 몇몇은 주식에서 숏 포지션을 잡아 떨어지는 주가를 바라보며 샴페인을 터뜨릴 상상을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플라이 어웨이는 유한회사였다. (이 정도 큰 회사가 주식 상장을 하지 않았음에 놀라는 사람이 많았다.)

혼자 남은 미래는 이런 흐름을 뒤집기 위해 나름대로 수를 생각해 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기기로 전송을 한 번하면 52% 확률로 (S)-난자가 된다면 (S)-난자인 사람을 다시 전송하면 52% 확률로 다시 정상상태인 (R)-난자가 되는 것이다. (R)-난자가 될 때까지 전송을 여러 번 하면 언젠가는 해결이 될 문제다. 사람들이 몇 번이고 전송기에 들어가기 위해서 ‘꿰맬’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미봉책으로라도 군중들의 성화를 잠재우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감은 생각보다 더 심했고 플라이 어웨이 메디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의 수는 거의 사라졌다. 회장이 사라진 회사는 곧 넘어갈 것처럼 보였지만 신기하게도 최악의 상황으로 까지 가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당연히 구조조정을 통해 대규모 인원을 해고하고 부서들을 정리하며 회사 규모를 줄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 회사는 남달랐다. 군집을 위해서 모두의 임금을 대폭 낮추는 방향으로 합의를 이끌어내 대량 해고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았고 회사의 규모 역시 줄어들지 않았다. 이는 인류의 기업 역사상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기술의 흐름에 휘청댔다. 플라스틱 키즈의 라이벌 그룹이었던 내추럴 보이즈(패스트 웨이가 후원했다)의 새로운 싱글 ‘7월의 어느 흐린 날 아침에 52%의 여자를 만난다는 것에 대하여’(팬들은 줄여서 ‘52 퍼의 여자’라고 불렀다.)가 발매되었을 시점에는 그동안 미인이라고 여겨졌던 외모의 여성들은 불임일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며 획일화되었던 외모가 다시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52%의 여자들이 다시 48%의 여자로 돌아가기 위해 재 시술을 받을 때(플라이 어웨이 메디컬은 2회까지는 무료로 추가 시술을 해주었다) 그동안 꼭꼭 숨겨두었던 자신의 과거 사진들을 다시 발굴하여 들고 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 청산을 너무나도 확실히 해둔 덕에 과거 사진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경우 많은 사람들이 1920년대의 캔디드 사진을 많이 들고 갔고 세상은 고전적, 현대적, 미래적 미가 공존하는 사회가 되어갔다.


그리고 일 년 뒤 이야기는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4-10.

회장은 이 모든 일들을 뒤집을 수 있는 강력한 카드를 두 개나 들고 왔다. 우선 미래전략부서에 AI를 도입했다. 미영을 필두로 한 소설가들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시나리오가 쏟아져 나왔고 사실상 세상의 모든 일들이 수없이 많은 종류의 시나리오 중 하나에는 어떻게든 담기게 되었다. 그리고 각각의 시나리오는 더욱더 많은 분기점을 가지게 되었고 그 분기점에서 실제로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확률로 표시되기에 이르렀다.


*딥블루와 알파고

1997년 IBM에서 개발한 ‘딥블루’라는 AI가 세계 체스 챔피언인 개리 카스파로프를 상대로 손쉬운 승리를 거두었다. 그 뒤로 AI와 사람의 대결은 바둑으로 전쟁터를 옮겼다. 하지만 바둑은 가로 세로 19줄의 칸을 흑백의 돌이 채우게 되는 경우의 수가 10의 171 제곱으로 추정되는데, 사실상 무한할 만큼 많은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이런 점 때문에 바둑에는 인간의 직관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졌고 실제로도 AI는 약세를 보였다. 하지만 모두들 아는 그 사건이 2016년에 벌어졌다. 구글 딥마인드에서 개발한 AI인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에서 알파고가 4:1로 승리한 것이다. 그 뒤로 바둑 계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AI의 기보를 기준으로 바둑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사람과 사람의 대국에서도 각자 돌을 하나씩 착수할 때마다 AI가 분석을 하여 승률을 실시간으로 보여 주기에 이르렀다.

AI가 바둑을 두는 방식은 쉽게 말하면 문제에 부딪히면(예를 들면 상대방의 착수) 앞으로 예상 가능한 최대한 많은 수를 떠올린 뒤 각각의 승률을 계산하여 가장 확률이 높은 쪽의 수를 실현시키는 것이다.


회장은 충분히 발전한 (이제는 진정으로 예언서라고 불릴만한) 미래전략AI에 현재의 문제를 입력했다. 목표는 회사의 재건이고 현재의 문제는 이성질체 현상에 따른 불임이었다. AI는 수천 가지 시나리오를 토해냈고 회장은 그중 가장 확률이 높은 선택지를 골랐다. 그 시나리오에 따르면 텔레포탈 플라스틱 서저리는 이성질체로 인한 문제가 (S)-난자의 발생 이외에도 또 다른 부작용을 가질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그것이 회장의 두 번째 결정적인 카드였다.



4-11.

미래가 탄 차는 플라이 어웨이 본사 앞에 정차하고 미래는 로비로 들어섰다. 그곳엔 수많은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단상 주변에는 회사 임원들이 미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십 명의 기자들은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순간을 목도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들떠있었다. 임원들은 여전히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래는 20여 년 전 기자회견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때부터 현재까지의 세상의 격랑을 생각해 보건대 오늘의 발표는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이 확실했다.

“우선 저희 회사의 입장문을 발표하겠습니다. 이번에 불거진 불임에 관한 문제는 지난번에 서면으로 전했던 것처럼 이성질체 문제에 의한 부작용입니다. 본사는 완벽하게 저희의 실수임을 인정하고 해결 및 재발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미래의 말이 있은 후 잠시 침묵이 이어진 뒤 한 기자가 입을 뗐다.


“끝입니까?”


미래는 고개를 들어 멀찌감치 떨어져 기자회견을 관망하고 있는 회장의 얼굴을 보았다. 항상 전면에 나서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 있는 회장은 이런 풍경을 관망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마치 스크린 밖에서 영화를 보는 것처럼. 회장의 양 옆엔 태블릿을 들고 있는 미영과 지훈이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번째 부작용이 발견되었습니다.” 미래의 말에 장내가 끓어올랐다. 그때 플라스틱 키즈의 가연이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와 미래의 옆에 섰다. 기자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지훈은 플라스틱 키즈의 팬클럽 구호를 외치려다 미영에게 제지당했다)


“우리 플라스틱 키즈의 가연 양입니다.” 미래가 가연을 가리키자 그녀는 한발 앞으로 나왔다. “가연양 올해로 몇 살이죠?”

“39살입니다.” 가연은 긴장해 미세하게 떨리는 음정으로 말했다. 장내는 또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지훈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입을 쩍 벌렸다)


“하지만 가연 양의 생체 나이는 17살입니다. 작년에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그럴 것입니다. 20여 년 전 가연양은 저희 회사에서 시술을 받았고 그 뒤로..” 미래는 뜸을 들인다.


“더 이상 노화가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저희 텔레포탈 플라스틱 서저리 시술을 받으면 일정 확률로 노화가 억제됩니다. 이것이 두 번째 부작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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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의 가연은 싱어송라이터를 꿈꿨다. 하지만 자신의 외모에 자신이 없던 그녀는 검정건반이라는 가명 뒤에 숨어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음원을 출시했다. 그렇게 출시한 ‘너에게로 텔레포트’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고 대중들은 그녀를 궁금해했다. 하지만 가면을 깨고 밖으로 나아갈 용기가 없었고 원 히트 원더의 얼굴 없는 가수로 점점 잊힐 위기에 처하자 그녀는 그동안 받은 저작권을 모두 털어 플라이 어웨이 메디컬로 향했다.

시술 후 그곳에서 회장의 눈에 띈 가연은 플라이 어웨이 뮤직의 연습생을 시작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자 예쁘고 노래 잘하고 동안으로 유명한 멤버가 플라이 어웨이 뮤직 소속 연습생이 곧 데뷔를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밝힐 수 없는 수많은 이유들로 인해 번번이 계획은 무산되고, 실제 데뷔는 16년이나 지나서야 하게 되었다. 문자 그대로 영원불멸의 아이돌이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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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전략AI의 예측대로 텔레포탈 플라스틱 서저리는 두 번째 부작용이 있었다. 이성질체 문제가 텔로머레이즈 효소에 작용하여 사실상 영생의 길을 연 것이었다.(물론 이로 인해 암의 발병률도 높아졌지만, 사실 이 기술은 암의 치료로부터 발전해 왔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한다면 이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성질체 문제가 발생한 52%의 사람 중에서 65%의 확률로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 이 발표는 윤리적인 문제로 부침이 조금 있었으나 결국 넘어져 있던 플라이 어웨이를 일으켰고 사세는 전례 없을 정도로 커져갔다.

단순히 계산을 해봐도 시술을 받으면 33.8%의 확률로 영생의 몸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술을 여러 번 받기에도 몸에 큰 부담이 없었다. 이것은 생식 활동이라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을 제공했다. 이 흐름은 전 세계로 퍼져갔고 각국에서는 치열한 토론이 펼쳐졌다. 자신은 언젠가는 죽어 사라지지만 출산을 통해 자신의 유전자의 일부를 퍼뜨리는 것과 영원히 자신을 유지하는 것, 어느 것이 승리할 것인가.



* [이기적 유전자의 승리]

지은이 클린턴 리처드, 옮긴이 김지훈

#목차

추천서

- 다윈의 ‘종의 기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뒤를 잇는 문제작, 미래 예언서! 005

옮긴이의 말 009

개정판 서문 0020

초판 서문 033


1장. 사람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진화에 대한 이해의 흐름 035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045


2장. 자기 복제자로서의 유전체

생명의 기원과 자기 복제 055

유전자란 무엇인가 067


3장. 필멸과 생식활동

근연도에 따른 유전자 전달 확률 084

가족과 친적의 성립요건 099


4장. 새로운 시대

텔로미어와 영생 110

가족의 해체 121

자본주의의 위기 133


5장. 미래의 가속화

AI와 기술적 특이점 155

특이점 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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