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포탈 플라스틱 서저리(05)

by 모호

4-1.

미래는 노트북을 덮었고 그 너머 창을 통해 도시의 밤 풍경이 보인다. 지하철 역에서 300m 거리에 있는 오피스텔의 20층. 미래의 집이다. 거실은 단출했고 단정했다. 미래는 느긋한 걸음으로 냉장고에서 맥주 한 병을 꺼냈다. 냉장고에는 그 흔한 에펠탑 모양 냉장고 자석 하나 없었고 맥주병따개만 하나 붙어있다. 기다란 모양의 그 병따개를 집어 들고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쉽게 맥주병을 딴다.


생각해 보면 참 다사다난했다. 20년 전 미래는 플라이 어웨이에 입사했다. 그 당시 귀에 닳도록 들었던 집값 상승과 인구과밀화를 막을 거라는 회장의 연설이 무색하게 아직도 집값은 잡히지 않았고, 플라이 어웨이 사는 자회사인 플라이 어웨이 메디컬 덕분에 전 세계적인 거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암치료로 시작된 플라이 어웨이 메디컬은 점점 미용사업으로 일을 키워가며 점점 더 큰 회사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미래는 꽤 괜찮은 성과를 내었고 회사로부터 신임도 얻었다. 반면 개성을 잃고 회사와 동화되어 가는 임원들은 보던 미래는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이 두렵기도 했다.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굳건히 서있기 위해서는 중심을 단단히 잡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미래는 텔레포트가 개발될 즈음부터 고민하던 자신에게서 결여된 것을 찾기로 했다.

입사 10년 차가 되던 해에 회사에서 장기 근속자의 노고를 치하하는 행사와 함께 황금 열쇠를 나눠주었는데 미래는 열쇠를 받는 그 길로 회사를 그만두고 황금열쇠를 팔아 치앙마이로 떠났다.(황금열쇠는 3.75g이었고 가격은 48만 원이었으며 그때 치앙마이로 가는 왕복 비행기 가격이 그 정도였다) 회의실에서 임원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박수를 치는 중에 회장에게서 황금열쇠를 받고 악수를 하고. 그 광경을 수차례 사진을 찍힌 뒤 바로 다음날 사표를 들고 회장 앞에 섰을 때 그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자신만만한 회장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잘 흘러가던 일을 내팽개치고 훌훌 떠나버리는 것은 회장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벌은 돌아올 수 있을 거리만큼만 둥지를 벗어나니까.


미래에게 태국에서의 시간은 다시없을 귀중한 순간이었다. 알람 시계 없이 일어나고 배가 고프면 간단한 음식을 먹고 산책을 하며 밤에는 라이브 클럽에서 밴드 음악을 들으면서 맥주를 한잔 하는 삶. 평소 술을 즐기지 않던 미래였지만 맥주 정도는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었다. 태국의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어떤 특별한 장소에 가면 사람들은 그곳에 맞는 모양을 띤다. 그 특별한 장소는 모두 제각각 다르겠지만 미래에게는 태국이 그런 곳이었다. 마치 피규어 모양에 딱 들어맞게 포장한 블리스터 포장처럼, 꺼냈던 그대로 다시 넣었을 때 안정감 있게 여백 없이 감싸는 그런 장소. 물론 포장을 제거하고 나서야 물건의 본질로서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인생의 아이러니다.

방콕에 있을 때는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미래는 수영을 배우면서 자신이 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았다. 그녀는 숙소 근처에 쭐라롱껀 대학교(จุฬาลงกรณ์มหาวิทยาลัย)의 학생 식당에서 밥을 먹고 학교 수영장을 가는 것을 좋아했다.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는 야외 수영장에는 50m 레인이 10개나 있었고, 학생들은 다 어디에 가있는지 항상 한산했다. 물 위에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었다. 삶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왜 수영장에 가보지 않았을까. 수영장이라고 하면 무릎까지 오는 긴 수영복을 입은 수영 강사의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수영장 물아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것처럼 쉬지 않고 레인의 처음과 끝을 돌아가는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이었을까.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면 컨베이어 벨트는 멈추고 휴식을 취하는 직공들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이미지가 연상이 되기 때문일까. 결국 미래는 수영이 아니라 물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물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면 자연스레 수영을 하게 되는데, 그 반대의 순서는 성립하지 않는 셈이었다.


비가 오던 날이었다. 타국의 생활에 꽤 적응한 그녀는 어지간한 비에는 우산을 들지 않았다. 수영장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머리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수영장에서 자유롭게 헤엄쳤다. 세상에 자기 혼자만 남겨진 기분이었다. 그때 그녀는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꼈다. 단 한 번도 외로움에 사로 잡히지 않았던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왔던 터라 이런 감정에 잠기는 건 혼란스러운 일이었다. 아무도 없는 수영장의 한가운데에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봤다. 꾸물꾸물한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가 평소보다 빠르고 굵게 느껴졌다. 그녀의 양쪽 귀는 물에 잠겨있었음에도 수영장 물에 떨어지는 물방울들의 소리가 평소보다 더 크게 들렸다. 하늘에 가득한 구름들 사이로 번개가 번쩍였다. 미래의 얼굴에 그 빛이 잠시 어렸다가 사라졌다. 잠시 뒤 천둥소리가 들리고 미래는 빗소리에 완전히 잠겨 들었다. 이젠 자신의 손을 잡아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미래의 손을 잡아끌었다.


미래는 자신에게 결여된 것이 연애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이성에게 불같은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던 것 같다. 당연히 이별의 가슴 아픔도 크지 않았다. 오래 손을 대고 있으면 저온화상을 입을 정도의 열감과 한숨을 크게 한 번 쉬면 사라지는 아픔이었다. 감정의 격랑이 몰아치는 삶보다 너울거리는 파도 정도의 진폭이 살아가는 데는 훨씬 편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마냥 편한 것은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미래는 자신의 손을 잡아 끈 사람과 약간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한국에 돌아온 미래는 결혼을 했다. 사업을 하는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남들 다 하는 틀에 박힌 결혼식을 올렸다. 무수히 크고 많은 축의금과 축하 인사에 둘러 싸인 결혼식이었다. 노래방에서 이름깨나 날렸을 것 같은 남편의 친구가 축가를 불렀고, 부모님의 축사 순서에는 성정이 강하기 그지없던 미래의 부모님도 흐르지 않는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식이 끝난 뒤 신랑 신부 행진을 할 때였다. 결혼식 단상에서 뒤를 돌아 결혼식장 문을 바라본 미래는 너무 이상했다. 예식장의 문이 너무 쓸데없이 크고 휘황 찬란해 보였다. 저 문을 빠져나가면 내가 알던 것과는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 같았다. 멍하니 문을 쳐다보고 있던 미래의 손을 남편이 잡아끌었다.

남편은 패스트 웨이의 CEO였다. 그렇다. 미래가 플라이 어웨이의 CSO로 있던 시기에 미래의 회사를 비방해서 법적으로 다툼이 있었던 그 경쟁회사다. 미래의 공격에 무너진 회사는 그 후로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대표가 해임을 하며 회사는 거의 폐업 직전이었다. 하지만 플라이 어웨이가 의료산업으로 뛰어들면서 다시 기회가 생겼다. 갈 곳을 잃은 국토교통부의 예산을 패스트 웨이가 받아가서 기사회생했고 그때 그 회사의 CEO로 미래의 남편이 임명된 것이다. 남편은 새로운 운송 수단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미래도 그 회사에서 일하며 업무를 도와줬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식도 없고 서로의 비전도 맞지 않던 둘은 2년 뒤에 이혼을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던 날 미래는 남편에게 물어봤다. 그때 수영장에서 왜 자신의 손을 잡았냐고 말이다. 남편은 그 당시 수영장 라커 룸에 전날에 놓아두고 간 지갑을 찾으러 수영장에 갔는데 웬 익사체 하나가 물에 떠있는 거 같아 확인해보려 했던 거라고 말했다.


미래는 맥주를 다 마시고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그때 저 멀리서 소파 쿠션 위에 놓인 전화기의 진동 소리가 들린다. ‘붕~~~~’ 마치 벌의 날갯짓 같은 소리다.



4-2.

미래는 플라이 어웨이 본사 건물 앞에 섰다. 우뚝 솟은 건물은 고개를 힘껏 치켜들어야 겨우 꼭대기 층이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마중 나온 회사 임원의 안내를 받아 고층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 회장실이 있는 층으로 도착했다. 바닥에는 빨간 카펫이 깔려있고 벽면에는 깔끔한 기하학적 모양의 패턴이 새겨져 있었다. 그 패턴은 회장실 방향으로 이어져 있었고 갈수록 복잡해지는 모양새였다. 회장실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책등의 방향이며 상패의 방향이며..

“어이구 안녕하세요~” 회장실 의자에 앉아서 인사를 하는 회장의 모습도 예전과 그대로였다. 이 공간은 시간이 멈춰있었던 것 같다. 아, 잠깐. 회장은 왜 그대로지? 주름도 흰머리도 더 늘거나 줄지도 않았네. 오히려 더 어려진 것 같기도 하고. 미래의 머릿속엔 별의별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역사 속에서 권력자들이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행했던, 혹은 행했다고 알려진 처녀, 피, 아이, 현자의 돌, 신비의 묘약 등등이 등장하는 이상한 이야기들 말이다.

“아버님께는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회장은 왼손을 들어 악수를 청했다.

그렇구나. 지금 회장은 선대 회장의 아들이었다. 어쩜 이렇게 자신과 똑같은 자식을 낳았을까. 자가 분열이라도 한 걸까.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다른 점이 있었다. 방안의 모든 배치가 지난번에 봤던 회장실과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벽에 걸린 거울에 비친 회장실의 모습은 과거의 회장실 그대로였다. 필기구의 위지, 전등의 위치를 보건대 현임 회장은 왼손잡이였다. 그것이 전임 회장과 현임 회장을 구분할 수 있는 차이점이었다.

“곤란한 일이 있으면 미래 팀장님을 찾으라 하시더군요. 자세한 이야기는 이동해서 하시죠” 현 회장은 좀 더 공손한 거 같기도 했다.

“왜 저를 찾으라고 하셨을까요?”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하셨어요”

“그 이유가 다예요?”

“또한 우리와 같기도 하다고 하셨고요.

이상한 선문답 같은 대화였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일단 상황을 설명드리면 흥미를 가지실 겁니다. 우선 따라오시죠.”


현 회장은 매끄러운 걸음으로 앞장서서 갔다. 미래는 그 뒤를 따라가면서 또다시 거대한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4-3.

미영은 G시로 돌아와서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토대로 소설들을 써냈다. 비록 가명을 사용했지만 그 내용들만큼은 진짜로 채워져 있는 글이었다. 종종 현실은 상상보다 더 거짓말 같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 소설을 픽션으로 이해했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 뒤로 미영은 현시점의 어떤 소재를 발단으로 하여 미래를 그리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텔레포탈 플라스틱 서저리로 인해 벌어질 이야기들을 연작으로 만들어냈고 상상력은 점차 단련이 되어갔다.

호들갑 떨기 좋아하는 어떤 기자는 조지오웰처럼 미래 사회를 예견하는 식견을 가진 소설가가 나타났다는 기사를 양산해 냈고, 몇 해 지난 뒤 플라이 어웨이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 나를 고소하려는 건가? 작작 좀 할걸 그랬나..’ 미영은 처음에는 플라이 어웨이 메디컬에서 자신을 고소하려 하는 줄 알았다. 하긴 텔레포탈 플라스틱 서저리로 인해 벌어지는 온갖 이야기들 중에 부정적이거나 기괴한 것도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실이 소설을 따라오는 경향이 있었는데, 미영이 소설로 예상했던 일들은 실제로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미영은 플라이 어웨이 본사 건물로 빨려 들어가 끝도 없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회의실이 있는 거의 꼭대기 층에 다다라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녀는 막힘없이 자연스러운 동선으로 회의실로 들어섰다. 입구부터 회의실까지 뭔가 매끄럽게 쭉 미끄러져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온 곳이지만 길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이상하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회의실에는 임원들이 앉아있었다. 몇 명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할 수 없었다는 게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겠다.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플라이 어웨이에서는 미영을 고소하기는커녕 입사할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미영이 들어가게 될 부서는 ‘미래전략부서’였고 직함은 CSO였다. 그녀는 왜 소설가인 자신을 영입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회장이 들어와 이 의문들을 명쾌하게 해결해 주고 갔다.

“기술 혁신에 가장 큰 걸림돌이 뭔지 아시나요? 그건 바로 상상력입니다 상상력. 사람은 상상하지 못한 것은 만들어낼 수 없어요. 어떤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목표로 삼을 순 없죠. 하지만 목표가 없다는 건 나침반 없이 우주를 탐험하는 것과 같죠. 아무렇게나 가다가는 끝없는 공허와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1900년대 초기에 휴대용 전화와 화상 통화의 개념이 SF영화를 통해서 제시되었고 지금은 현실이 되었죠. 1968년에 개봉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우리가 쓰고 있는 스마트 태블릿 패드의 원형이 등장했고, 자아를 가지게 되는 HAL9000이라는 AI 도 등장합니다. 이런 영화에 등장한 상상은 하나둘씩 이루어졌고, 현재는 AI의 발달로 그들이 언젠가는 자아를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고민하는 시점까지 결국은 오고 말았죠. 결국 상상이 현실을 이끄는 것이고 그 상상을 위해서 당신이 필요한 겁니다.”

맞는 말이긴 했다. [백투더 퓨쳐2]에 나오는 호버 보드나 자동으로 묶이는 신발끈 같은 경우 큰 효용 가치가 없지만 결국 개발해서 세상에 나오긴 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매력 있는 상상을 좋아하고 그것을 실제로 현실에서 보길 원한다.

미영은 당연히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혁신, 상상, 미래 이런 것을 다 떠나서 일단 대기업에서 월급을 준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그런데 CSO가 무슨 뜻인가요?” 미영은 계약서에 싸인을 하며 물었다.

“Chief Strategy Officer의 약자입니다.” 임원 중 한 명이 대답했다.


미영은 주 업무는 말 그대로 소설 쓰기였다. 그 소설들은 대부분 대외비로 보안이 철저했는데, 일을 시작한 초반에는 세상에 나가 독자와 만나지 못하는 소설이 과연 소설로써 어떤 가치가 있을까에 대한 회의감이 강하게 들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아르바이트에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되며 오로지 글을 쓰는데만 전념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 강력한 유혹이었다. 미영은 수많은 미래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중 몇몇은 이야기가 현실로 실현되었는데, 이야기가 탄생하여 그것이 현실에 영향을 준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미래를 예측하였는지 구분이 어려웠다. 어쨌든 미영은 자신이 쓴 몇몇 이야기가 실현되는 것을 보고 의욕이 고취되었다. 세상에 나가지 못하는 소설이 아니라 소설 그 자체가 세상이 되는 것이니까.



최근에 쓴 소설로는 텔레포탈 플라스틱 서저리의 업그레이드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최대한 여러 가지 버전으로 작성했는데 그중 몇 개는 실현되었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실현되지 않고 잠들어있는 시나리오가 있었는데,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인간복제: 양자화된 인간 디스크를 가지고 같은 사람을 계속 출력하는 이야기. 당연히 이는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출산율이 0.3인 지구상의 어느 귀퉁이의(구형의 지구에서 귀퉁이가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나라에서는 출산 직전의 태아를 양자와 디스크에 담아 수십만 번 출력함으로써 인구 감소를 해결하는 짓을 벌였다. 그래도 최소한의 생각은 있었던지 동일한 유전자를 지닌 사람이 너무 많아지면 위험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전자 풀을 다양화하기 위한 방책을 고민했는데, 우선 20만 명의 다양한 태아의 데이터를 수집한 뒤 A도시에서 출력했다. 그리고 물리적인 거리가 충분한 B 도시에서 또다시 20만 명의 태아를 출력하고 또 다른 C도시에서 각각 20만 명을 출력한 뒤, 도시 간의 이동을 제한했다. 그 결과 그 나라의 A시와 B시와 C시는 동일한 인구 구성으로 쌍둥이 같은 도시가 되었다.


-이는 비인간 적인 사회계획이지만 후에 연구자료로는 아주 귀중한 사례로 평가된다. 완벽하게 똑같은 구성원이 공간만 다른 곳에서 놓였을 때 문명이 어떤 발전과정을 거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또다시 우생학이 틀렸음을 증명했고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가 또다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A시에서 빈민층으로 전락한 시민 한 명이 도시에서 도망쳐 B시의 경계를 넘게 되었고, 그곳에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상류층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B시의 자신의 유전적 동형을 죽이고 사신이 그 행세를 하게 되는데, 한번 구멍이난 비밀은 계속 커져갔고 시간이 지나 몰래 도시 간 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문제점이 발생하는데..

-> 현실에서 이는 당연하게도 윤리적인 문제로 인해 현실화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를 통해 텔레포탈 플라스틱 서저리로 전송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물질을 재합성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2. 장기의 복제: 돈이 많은 부유층들은 텔레포탈 플라스틱 서저리를 하는 김에 자신의 주요 장기, 심장, 신장, 간 등의 여분을 하나씩 더 출력해 놓았다. 암암리에 진행된 이 장기 복제는 장기 이식술의 수요와 공급을 망가트렸고 돈이 충분치 못한 사람은 장기 이식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장기 이식술을 받아야 하는 연인을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으며 온갖 고난을 겪은 뒤 장기이식의 본거지인 ‘플라이 어웨이 오가닉’에 잠입했다. 거기서 발견한 것은 거대한 공장과도 같은 곳에서 회원들 여분의 심장 수백 개가 줄을 지어 펄떡이고 있는 기괴한 광경이었다..

-> 이 소설을 읽은 회장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아직 인공 혈액 등의 부가적인 기술이 아직 준비되지 않아 실현되지는 못하고 있다. 언젠가 실현될지도 모르겠지만.


3. 시력교정: 기존의 라식 수술을 텔레포탈 플라스틱 서저리로 대체했다. 심지어 보통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기능도 추가를 하는데, 적외선이나 자외선을 볼 수 있다거나 더 나아가 소리도 볼 수 있는 식이다. 이로서 인류는 감각의 영역을 더욱 확장함으로써 특히 예술의 영역에서 획기적인 전복이 이루어졌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나 ‘끈적한 음표들’ 같은 공감각적 표현을 말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몇몇 사람들은 눈을 극단적으로 개조를 하여 X선 장치 없이도 사람의 몸을 투과해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눈이 개조된 사람들은 모든 것이 투과돼 보여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몇몇 어둠의 조직들은 돈이 필요한 사람들을 꼬드겨 수술을 시킨 뒤 병원 CT실에서 하루 종일 환자의 암을 찾도록 종용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며 경찰이 급습한 어느 병원에서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CT기계를 뜯어내니 그 속에는 의자 하나만 덜렁있고 그곳에 눈을 개조당한 사람들이 기계 속에 앉아 있더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전해졌다.

-> 상상이 너무 과했다. 인간이 가시광선을 보는 것은 시신경 세포가 가시광선 파장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영역을 보기 위해서는 신경세포를 추가로 만들어 넣어야 한다.(갯가재는 색깔 수용체가 12개다. 인간이 3개인 것에 비하면 훨씬 더 많은 색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거의 생명을 새로 창조하는 정도의 어려움이 따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람의 눈은 X선을 방출할 수 없으므로 인간 CT는 정말 불가능하다.



이렇듯 미래전략실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수많은 예측과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불평, 불만, 문제점들이 다방면으로 분석해 시나리오화 되어있다. 회장의 논리에 따르면 기술의 발전은 이야기를 따르며, 만약 현실에서 그 문제점을 마주치게 된다면 그에 따른 문제점도 미리 써놓은 이야기의 범주 안에 있을 것이고, 그에 대한 해결책도 이미 나와있을 것이다. 이건 소설이 아니라 예언서의 성격을 띤다. 미영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글을 썼지만 도저히 혼자서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다룰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소설가들을 대거 영입했고 대량의 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래전략부서는 점점 커져만 갔고,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지만 그동안 글 쓰는 것과는 전혀 관련되지 않은 다른 일을 할 수밖에 없던 작가들에게 미영은 구세주였다.





-영생: 힘을 가지면 누구나 다 바라는 것. 영원히 살 것처럼 그 권세를 휘두르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바로 텔레포탈 플라스틱 서저리를 통해서 말이다!


*텔로미어

사람의 체세포는 끊임없이 교체된다. 손톱은 계속 자라고 피부 각질은 떨어져 나가며 위장 상피세포도 계속해서 탈락한다. 결국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사람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세포가 교체된다. 이 과정에서 죽은 세포를 교체할 새로운 세포는 DNA라는 설계도에서 만들어진다. 두 가닥으로 안정되게 엮여 있는 염색체는 세포 분열이 일어나는 동안 한 가닥으로 풀리며 RNA가 이를 전사한 뒤 다시 RNA에서 DNA로 복제된다. 이렇게 되면 세포 하나가 복제되는 것이다. 염색체는 이러한 중요한 DNA정보들을 보호하기 위해 양 끝에는 기능을 하지 않는 더미 데이터를 잔뜩 만들어 둬 완충작용을 한다. 이를 텔로미어라고 하는데, 세포를 복제하는 과정에서 염색체 끝부분이 조금씩 닳게 된다. 다시 말해 세포분열을 할수록 텔로미어가 짧아지는데, 분열 횟수가 늘어나며 어느 한계 이상이 되어 텔로미어가 과도하게 짧아지게 되면 그 뒤로 분열되는 세포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쉽게 말해 노화된 세포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이런 세포가 늘어나게 되면 사람은 사망한다.

하지만 바닷가재는 역전사 효소인 텔로머레이스를 가지고 있어 짧아진 텔로미어를 복구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영원히 살 수 있다.(실제로 바닷가재가 죽는 경우는 탈피를 하다가 너무 힘이 모자라 허물이 완전히 탈락되지 않아서 이거나 사람의 식탁에 오를 때 이다)


텔레포탈 플라스틱 서저리는 이제 분자생물학의 영역으로 넘어가 텔로미어를 복구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게 되었다. 말 그대로 영생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영생을 이룰 수 있는 혁명적인 시대가 오며 인류는 또 다른 대 격변의 시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문제점도 발생… 똑! 똑! 똑!


노크 소리와 함께 글을 타이핑하던 미영의 손이 멈춘다. 곧이어 미영의 사무실 문이 열리고 미래와 회장이 들어온다.


“전 CSO와 현 CSO의 만남이군요 하하” 회장은 실없는 농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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