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때문이었을까,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다. 늘 그렇듯 역시나 고즈넉했다. 내가 탄 객차에는 10명 남짓의 승객이 있을 뿐이었다. 한 정거장이 지난 뒤 말끔한 폴리 슈트를 입은 중년 남성이 캐리어를 끌고 탔다. 상의 하의 모두 검은색으로 통일을 한 덕에 그가 메고 있는 은색 넥타이가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머리를 말끔하게 밀은 그는, 오늘 아침에도 열심히 면도를 하고 나온 듯 달걀 같은 맨들한 머리를 뽐내고 있었고, 유행을 타지 않는 검은 뿔테 안경과 파르라 한 수염 자국이 묘한 감상을 자아냈다. 확실히 눈에 띄는 인상이었다. 아마 만원 객차였어도 그를 한눈에 알아보았을 것 같다.
지하철의 문이 닫히고, 그는 열차의 가운데로 캐리어를 천천히 끌고 왔다. 그리고 캐리어를 바닥에 펼친 뒤 물건 꺼내 팔기 시작했다. 아니, 요즘에도 지하철 잡상인 있나? 신기한 일이다. 그가 꺼내 든 것은 아이폰 19프로였다. 요즘 레트로가 유행이라더니 저런 물건을 파는구나. 그래, 내가 어릴 때 어머니께 저거 사달라고 그렇게나 졸라댔었지. 아니, 요즘 뉴럴링크를 통해 이미지를 그대도 받아들이고, 생각을 그대로 전송하는 시대인데 누가 귀찮게 손가락을 써서 기기를 다룰까? 하지만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반응을 보인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더 들어 보이는, 희끗희끗한 머리를 곱게 빗어 넘 할머니는 추억에 젖은 듯 아이폰 19 프로를 바라본다. 젊은 시절에 그 기기를 통해서 지금의 할아버지를 만나신 걸까? 하지만 할머니 옆에 계신 할아버지는 심드렁한 표정이다. 상인은 이를 눈치채고 할머니에게 다다가 적극적으로 영업을 한다.
나의 맞은편에 앉은 10대로 보이는 아이들 셋도 그 기기에 관심을 보인다. 상인에게서 샘플 하나를 받아 들고 그들끼리 이리저리 돌려가며 만져본다. 신기한 듯 아이폰을 만져보는 아이들. 제대로 작동을 시킬 줄 모른다. 당연한 일이다. 손가락을 통해 무언가를 지시해 본 적이 없을 테니. 이제 막 할머니에게 추억의 물건을 성공적으로 판매한 상인은(할아버지는 끝까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돌아와 아이폰의 작동 방법을 가르쳐준다. 아이들은 '오오오!!' 하며 신기해한다. 이에 상인은 재빨리 가방에서 다른 모델도 꺼내서 보여줄 준비를 한다.
얼마 전 기사를 봤다. 레트로의 유행에 관한 기사였다. 옛 물건들이 요즘 아이들에겐 신기함을, 이전 세대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킨다는 내용이었다. 물리적으로 물체를 만지고 그것을 통해 정보를 전송한다는 것은 인간적인 일이다. 아무리 생각 그 자체를 물리적 매체 없이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첨단 사회가 되었다 해도, 우리는 결국 인간의 근본 그 자체를 잊지 못하는 것 같다. 가끔 떠올려본다, 스마트폰이라는 것을 항상 손에 쥐고 있던 시절을. 무언가 물리적인 실체를 손으로 만지고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중요한 감각이 아닐까. 요즘의 레트로 유행을 보며 이를 다시 상기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