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지는 바다가 마냥 낭만적인 것은 아닙니다.

by 모호

"컷! NG, 다시 갑시다"


배우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내가 하라는 대로 안 움직이는 거지? 배우는 나를 쳐다봤고, 나의 요구사항을 전해 들은 조감독은 배우를 향해 달려갔다.

나는 목이 타들어 갔고, 모니터 책상에 놓은 커피를 집어 들었다. 딱 한 모금 남았다. 나는 컵에 남은 얼음까지 탈탈 입에 털어 넣었다. 그래도 입술이 바짝 말랐다. 나는 내 마지막 남은 집중력을 끌어모았다. 그래, 할 수 있어! 아니, 해야만 해!

점점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한쪽 눈을 찡그리고 바다 위에 떠있는 태양을 바라본다. 손가락을 들어 수평선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를 재봤다. 아니, 40분도 안 남았겠는데?

배우와 이야기를 끝낸 조감독이 돌아와 다시 촬영 준비를 했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마이크도 자리를 잡았다. 나의 시작 싸인과 함께 연기가 시작됐다.

그때 저 멀리 백사장에서 취객이 소리를 지르며 촬영 앵글 안으로 들어왔다. 촬영은 다시 중단되고 조감독은 취객을 향해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을 뛰어갔다. 나는 두통이 찾아와 머리를 감싸고 인상을 찌푸렸다.

뒤에 서 있는 프로듀서를 바라보았다. 이 영화를 찍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가. 투자받기 위해 그와 함께 전국을 누비며 수없는 거절을 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해서 겨우 마련한 제작비는 참으로 소소했고, 결국 나는 차까지 팔아야 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프로듀서가 말했다.


"오늘 해가 지면 끝이에요. 추가 촬영만은 안 됩니다"


주변 스태프들을 둘러보았다. 촬영 및 조명 팀 네 명, 동시녹음 기사, 미술팀 두 명, 라인 PD, 스크립터, 조감독, 연출부원 세 명, 주연 배우 두 명에, 단역배우까지. 수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있었다. 안된다. 이 사람들을 다시 현장에 부를 돈은 없어! 반드시 오늘 끝내야 한다.


저 멀리서 조감독이 취객과 다투는 소리가 들려온다. 바다에 노을이 지려하고 있다. 스산한 저녁 바람이 불어온다. 주연 배우의 투덜대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나는 디스크가 재발한 건지 갑자기 허리가 아파 의자에 앉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조감독은 취객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고, 촬영은 재개되었다. 나의 표정이 굳은 것을 본 것일까, 아니면 내가 외친 시작 싸인이 날이 서 있어서였을까. 다들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고 촬영장은 자동화된 공장처럼 빠르게 굴러갔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씬의 촬영준비를 했다. 주연과 단역들 모두가 모여 대사를 주고받으며 모든 실마리가 풀리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하필이면 꽤 긴 장면이다. 길이가 5분쯤 되려나? 이럴 때면 세상 모든 것이 우리를 방해한다. 오토바이가 소음을 내면서 지나가고, 갈매기가 갑자기 날아와 배우를 공격하질 않나, 아까 그 취객은 다시 돌아와 우리를 괴롭히고(또 조감독이 출동했다. 고마워요, 조감독님), 어수선한 상황에 집중력을 잃은 배우들은 한 번씩 돌아가며 대사 실수를 했다. 어느덧 하늘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10년 전이었다. 10개월 동안 안 쓰고 겨우겨우 모아 차를 샀다. 1,600cc의 크지 않은 차였지만, 그 차를 타고 로케이션도 확인하러 다니고 촬영 장비도 열심히 실어 날랐다. 수많은 사람과 물건뿐 아니라 나의 희망 또한 싣고 달리던 차였다. 제작비를 위해 그 차를 중고로 팔 때를 생각했다. 그렇게 내 차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도와주었다. 아니, 그런데 그 돈밖에 안 쳐주다니. 야속한 딜러. 그리고 제작비가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을 때 몰래 탕수육도 추가하던 얄미운 촬영감독이 떠올랐다. 최저 시급 인상으로 인해 올라간 스태프들의 인건비를 생각했고, 이름이 있는 주연 배우의 출연료를 깎기 위해 협상 테이블에서 불쌍한 척을 했던 나의 모습을 되새겼다. (불쌍한 척이 아니라 실제로 불쌍했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바다에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나는 컵을 집어 입에 처박듯이 기울였다. 컵 바닥에 남은 몇 방울 되지 않는 물이 마른 혓바닥에 떨어졌다. 그동안 촬영했던 장면들이 머릿속에 영사되듯이 지나갔다. 그래! 수없이 고쳐 쓴 나의 시나리오다. 내가 제일 잘 아는 이야기란 말이야.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떠올렸던 장면들이야! 나는 스토리보드를 꺼내 들고 재빨리 수정했다. 그리고 스크립터와 촬영감독과 불러 머리를 맞대고 장면 정리를 시작했다. (스토리보드 크기가 작아서 말 그대로 셋이서 머리를 거의 맞댈 수밖에 없었다)


"이 장면은 꼭 필요하고…. 이건 다른 컷에서 쓸 수 있으니까 이 컷을 좀 길게 찍으면 되겠네요. 그리고 마스터 컷을 다 찍을 필요 없이 여기부터 여기 대사까지만 풀샷 찍고, 나머지는 OTS샷으로 커버합시다. 커버리지 찍을 시간 없어요. 한 번이라도 대사녹음 잘된 거 있으면 다른 앵글로 찍을 때는 오디오 NG 나도 그냥 진행합시다. 그리고 또..(이하 생략)"


나는 흐르는 시간과 경쟁하듯이 말을 쏟아냈다. 촬영은 다시 시작됐고, 나는 모니터 앞을 떠나 현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더 이상 목이 마르지 않았다. 두통은 씻은 듯 사라졌고, 허리 통증은 더 이상 나를 의자에 잡아두지 못했다. 그리고 모두 함께 지구의 자전과 싸우며 우리들의 영화를 완성해 갔다. 그리고 해가 막 넘어갈 즈금 나는 외쳤다.


"컷! OK!! 좋습니다!!"


노을 진 바다가 그제서야 예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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