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모양이 닮았다

by 모호

공항의 출국장은 설렘으로 가득 찬 곳이다. 밤낮으로 활기찬 기운이 맴돌며, 모두 어디론가 향해 가고 있다. 곧 마주하게 될 낯선 이국땅의 공기와 언어들을 떠올리며, 오늘 묵을 숙소의 생경한 주소 체계를 확인하며 거대한 짐을 끌고 한국 땅을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저 멀리 공항 구석에서 유독 어두운 표정의 한 남녀가 보인다.


20대 후반의 동갑내기 커플인 선영과 인철은 바닥에 펼쳐진 캐리어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 선영은 여권을 찾느라 이미 흐트러진 짐을 괜스레 들었다가 놓았다 하며 괴롭힌다. 바닥에는 옷가지와 여분의 신발이 널브러져 있다. 인철은 여권과 핸드폰을 손에 든 채 팔짱을 끼고 선영의 정수리만 쳐다보고 있었다.


"없어? 잘 좀 찾아봐" 인철이 말했다.
"응.. 분명히 여기에 넣었는데.."
"잘 찾아봐.."


인철은 답답한 마음을 꾹 누르고 말한다. 하지만 마음의 압력이 아슬아슬한 상태였던지라 약간의 툴툴거림은 삐져나왔다. 아마 선영도 느꼈으리라. 답답한 마음에 인철은 집에 다시 갔다 오는 게 어떻겠냐고 한다. 하지만 비행 출발 시간까지는 2시간 남았고, 집까지도 왕복 2시간이 걸린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상황이 반전된다.


"아 맞다, 나 물건 잘 잃어버린다고 네가 챙긴다고 했잖아!"
"응? 내가 언제?"


인철은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지만, 기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아 시치미를 뗀다. 하지만 이미 9번의 계절을 그와 함께 보낸 선영은 남자 친구의 떨리는 눈썹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또다시 말의 공방이 한 번씩 오갔다. 서로의 책임소재를 묻는, 지금 상황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말들이었다. 이에 선영이 먼저 휴전을 제시하며 우선 현재의 일을 해결하는 것을 제안한다. 인철은 입을 삐죽이며 결국 그녀의 말에 응한다. 선영이 내놓은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일단 우리 각자 집에 전화해 보자. 내 여권이 우리 집 아니면 네 집에 있는 거잖아. 그래서 여권 발견되면 가족한테 좀 들고 와달라고 하자. 어때? 어차피 우리가 지금 갔다 오기는 늦었어." 인철은 이것보다 더 뾰족한 수는 없었기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인철과 선영은 각자의 집에 전화했다.


선영의 여권은 인철의 집에 있었다. 인철의 동생이 그 여권을 들고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말없이 앉아 있기만 했다. 사과 한마디 없이 꽁하게 있는 인철을 보고 기분이 좋을 리 없는 선영은 괜히 더 툴툴거린다.


"어이구, 여기 실내인데 나무가 자라네? 어, 여기 그 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가 있네요?"


인철은 짜증을 낸다. 둘은 투탁이며 말싸움을 한다. 그때 인철의 동생이 도착해 여권을 전해주고 심부름 값 5만 원을 받아 갔다.


냉랭해진 둘이었지만, 여행 계획은 진행되어야 했다. 헝클어진 짐을 아무렇게나 다시 구겨 넣은 캐리어를 끌고 이 차가운 커플은 체크인 카운터로 갔다. 인철은 의기소침한 채 여권 두 개를 항공사 건네주었다. 선영은 곧 맞이하게 될 이국땅의 풍경과 그 생경한 언어를 생각했다. 인철은 구글 맵을 실행 해 공항에 내려서 숙소까지 가는 길을 미리 알아보고 있었다. 그때 카운터의 직원이 말했다.


"두 분 다 여권 만료일이 6개월도 안 남았네요? 그럼, 여기 가서 입국 거절되실 수도 있어요"


인철과 선영은 놀라서 서로 바라봤다. 크고 동그랗게 뜬 눈이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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