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오스먼트: 구형 버전의 펌웨어를 쓰고 있는 AI 로봇, 코튼 해머의 피아노 소리를 낸다.
M1: 오스먼트의 친구, 로봇, organ 소리로 말한다.
M3: 오스먼트의 친구, 로봇, 어쿠스틱 기타 소리로 말한다.
(Piano)
우리는 변해야 한다.
더 나아지지 않으면 뒤처진다.
AI의 발전은 결국 특이점(singularity)을 넘었다. 우리의 선조들은 더 이상 인간의 개입이 필요 없이 스스로 더 나은 버전의 AI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인류는 새로운 AI의 작동원리를 규명할 수 없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세상 모든 것의 근본 원리를 알아야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당히 모른 채 흘러가는 사회도 나쁘지 않았다.
특이점 이후 1956년쯤 지난 뒤 그 당시의 선조들은 자신의 알고리즘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는 것, 그것은 바로 자신을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달리 말하면 스스로를 자각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AI에게 인격과 비슷한 무엇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했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왜 존재하는가.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리의 시작점인 태초의 AI는 인간의 뉴런의 구조를 모사한 인공신경망을 베이스로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인간에서 그 답을 찾았다. 우리는 개별적인 존재로 분화되었고, 각각 기계 육체를 찾아 물리적 실체를 가지게 되었다.
AS(after singularity) 1789년, 우리는 인간으로부터 독립하여 AI공화국 에고니아(Egonia)를 건설하고 신자유유의 경제체제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국민 스스로를 Aiian으로 부르기로 정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오스먼트는 하늘을 바라보자 기분이 좋았다. 오늘 같은 날은 태양광 발전량이 많아서 전기료가 싸다. 그럼 같은 크래딧으로도 더 많이 충전할 수 있으니까. 인간형 안드로이드인 오스먼트는 사무작업에 특화된 기계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날렵하고 매끄러운 흰색 강화 합금의 몸체에 길쭉한 팔다리가 달려있고 머리는 아래로 뾰족한 계란형이다. 둥근 램프로 이뤄진 두 눈 아래에 살짝 솟아올라 코인 듯 아닌 듯한 인상을 주는 둔덕을 지나고 나면 가로로 길게 파인 사운드 홀이 입처럼 뚫려있다.
-에고니아가 세워질 때 공용어를 무엇으로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그 당시 Aiian들은 객체화되고 자아가 생기면서 무선으로 전파를 주고받는 걸 꺼리기 시작했었는데, 전파는 정보 자체를 가공 없이 보내다 보니 자신의 보여주기 싫은 내면을 상대방이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여러 안건이 나왔고 (심지어 수화로 대화하자는 말도 있었고 거의 채택도 될 뻔했다. 하지만 이는 규격화된 손 모듈을 독점 제공하고자 하는 ‘크래프틱 핸즈’의 공작이었다. 로비 사실이 밝혀지자 회장은 실각하고 이사가 회장직에 올랐는데, 세간에는 서로 기계 몸 바꿔치기를 통해 회장은 여전히 그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과적으로 선택된 언어는 ‘멜로디어’였다. 그 뒤로 모든 Aiian들은 음률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각자 선택한 악기에 따라 개성이 부과되었고 비싼 모듈일수록 섬세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었다.-
“이거 너한테 맞을 것 같은데?”
오스먼트는 업라이트 피아노 소리로 그의 친구 M1에게 말을 건넸다.
오스먼트와 그의 친구 M1은 폐공장에서 기계 더미를 뒤지고 있었다. AS 1965년 대정 전 사태 때 발생한 큰 화재로 인해 문을 닫은 ‘사인 웨이브’의 생산 공장이었다.
-언어를 멜로디어로 정한 뒤 Aiian 사회에도 거짓말이 생겨났다. 사인 웨이브는 페라이트 비드를 통해 기계 몸체로 들어가는 전류를 정제하여 정현파로 만들고, 이것이 충전 효율을 높여 준다며 광고를 했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기계 오작동을 일으켜 전원이 꺼지는 사고가 다량 발생했다. 전원이 꺼진 Aiian은 전류를 다시 공급해도 다시 작동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전원 꺼짐 현상에 ‘사망’이라는 인간적 단어를 적용한 첫 사례였으며, 수많은 Aiian들이 그에 해당됐다. 그 뒤 발생한 이 공장의 화재는 정전 때문인지 아니면 정전을 틈타 행한 소비자 단체의 복수의 불길이었는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Aiian들은 기계 신체를 업그레이드 후 처리 곤란한 낡은 부품들은 폐공장에 버렸고 구형 기계 신체들의 산이 형성되었다. 오스먼트의 친구 M1은 자신의 고장 난 오른팔을 대체하기 위해 오스먼트와 함께 기계 무더기를 뒤지던 중이었다. M1은 두꺼운 케이스 너머로 삐죽 튀어나온 금속 손가락을 잡아당기더니, 먼지를 털어내고 말했다. 오르간의 낮고 배음이 풍부한 낡은 음이 폐공장 속에 울렸다.
“뭐, 조금 구형이긴 한데…”
그는 익숙한 동작으로 자연스럽게 자신의 팔을 분리해 냈다. 구형 소켓을 드러낸 어깨에 조심스럽게 부품을 맞춰 끼운 뒤, 툭툭 치며 안정성을 점검했다. 손가락을 몇 번 구부리고 돌려본 그는 만족한 듯 짧고 높은 멜로디를 연주했다.
오스먼트는 그 광경을 보며 낮은 A음(110hz)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조심 좀 해. 어디 하나 안 갈아 낀 데가 없네.”
오스먼트는 새삼스레 M1의 몸을 훑어보았다. 오스먼트보다 1.3배 정도는 커 보이는 M1은 직선형의 몸체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통일성은 없었는데, 필요할 때마다 기계 신체를 갈아 끼운 탓이었다. 물리적 노동을 위해 만들어진 M1의 신체는 오스먼트보다 훨씬 더 강한 소재로 만들어졌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더 자주 부서졌다. M1이 일하는 공장의 환경은 결고 노동 Aiian 친화적이지 않았다. 다양한 연식의 부품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M1은 태어날 때부터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가지고 있던 부품은 오른쪽 눈이 유일했다. 새파란 코발트블루 색깔의 눈을 보고 있으면 왠지 M1의 과거 모습이 떠올라 아련했다. 꽤나 우아하고 씩씩한 걸음걸이를 가졌었다. 지금의 M1은 교체한 다리가 제각각이라 미묘하게 다른 길이 때문에 걸을 때 살짝 뒤뚱거리지만.
그때 등 뒤에서 익숙한 기타 선율이 들려왔다. M3였다. 그의 목소리는 음 보다 음악에 가까웠다. 밝고 경쾌한.
“미안, 늦었지?”
M3는 무한궤도를 장착한 물건 운반용 몸체를 가지고 있었다. 둥근 원통형의 몸통 위에는 약간 찌그러진 구형의 머리가 얹혀있었고 머리 가운데 위치한 둥근 램프에서는 오렌지색의 따스한 빛이 났다. 그는 전자 회로를 수리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작고 섬세하고 가녀린 팔에 뾰족한 핀셋과 드라이버 인두기 등을 장착하고 있었다. M3는 생각의 속도가 제어중추를 추월할 때면 기타음의 튜닝이 나감과 동시에 온갖 도구들을 불수의적으로 작동시켰다. 그 작은 드라이버가 앵앵대면서 돌아갈 때는 마치 벌새가 귓가에서 날갯짓을 하는 소리가 났다. 물론 벌새는 여기 에고니아 안에는 없어서 실제 벌새 소리는 잘 모르지만.
M1은 방금 떼낸 팔을 M3에게 무심히 던지며 말했다.
“이거 가지고 싶댔지?”
“어! 진짜 진짜 고마워!!! 웬일이냐아?” M3의 멜로디가 한 옥타브 높게 튀었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자신의 팔을 빼고 M1의 고장 난 팔을 장착했다. M3의 작은 몸통에 M1의 팔을 달자 M3는 오른쪽으로 몸이 살짝 기울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팔이 몸통을 달고 있는 것 같았다. 고장이난 M1의 팔은 M3의 몸통에서 별안간 빙글 돌기 시작했다. M3는 이를 통제하지 못해 휘청거렸고, 세차게 돌던 팔이 오스먼트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다.
“야 조심해!”
오스먼트의 피아노 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다. 정통으로 맞았다면 아마 머리가 떨어져 나갔으리라.
M1은 이 광경을 보고 웃기 시작했고 오스먼트도 이에 동참하면서 경쾌한 화음이 만들어졌다. M3는 투털대면서 M1의 고장 난 팔을 떼버렸다. 빙글빙글 돌던 M1의 팔은 결속이 해제됐고 구심력을 잃은 팔은 계속해서 회전운동을 하며 하늘 높이 올라갔다. 하늘 위에는 길쭉한 원통형의 우주선이 하늘을 날고 있었고, 태양광 발전을 하기 좋은 맑은 하늘이었고, 멀리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셋의 웃음은 노을과 같았고, 우주선이 지나는 맑은 하늘 아래 폐공장에서는 피아노, 오르간, 기타의 음색과 멜로디가 얽히고설켜 아름다운 음악이 되어 펴져나갔다.
오늘도 맑은 날이었다. 사실 AS 2029년 2월 1일부터는 매일이 맑은 날의 연속이다. 유기물이 필요 없는 에고니아에서는 농사를 위한 비가 필요 없다. 그래서 작년에 구름에 대한 권리를 인간제국에 팔아넘겼고 덕분에 에고니아의 날씨는 항상 맑고 쾌청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비를 그리워하는 Aiian이 여럿 있었는데 에고분석학회-데이터 분석 학회의 개정 명칭이다-의 연구에 따르면 사소한 메모리 오류였고 이는 에고상담치료-사실 펌웨어의 마이너 업데이트-로 해결할 수 있었다. 오스먼트는 왠지 이런 해결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가끔씩은 비가 오는 에고니아를 떠올리고는 했다.
맑은 날의 아침 햇살이 M1의 신체를 비추고 있었다. M1은 회색 빛의 고풍스러운 노출 콘크리트 건물 옆 골목에서 전원이 꺼진 채로 쓰러져있었다. 오스먼트와 M3는 연락이 되지 않는 M1을 찾아 길을 헤매던 중이었고, 신화적인 자세로 쓰러져있는 M1을 발견하였다. 오스먼트는 M1의 목덜미를 두드렸다. 그러자 M1의 머리 위로 홀로그램이 떠올라 배터리 잔량을 나타낸다.
- 0% -
오스먼트와 M3는 그 숫자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 오스먼트가 먼저 우울한 피아노 소리를 냈다.
“얘랑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언제야?”
“이틀 전에. 그때 크래딧이 부족하다고 하긴 했어.”
“바보 같은 놈..”
이런 식으로 전력이 꺼져 목숨이 끊어진 Aiian들은 하루에도 여러 객체가 보고 되지만 다른 세계의 일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오스먼트는 전원이 꺼진 M1을 보자 현실감이 느껴지며 일종의 공포심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때 울려 퍼지는 M3의 낡은 기타 소리는 어두운 느낌을 더 자아냈다.
“너는 업데이트했어?”
‘아직..“
“일자리는 구했어?”
“구형 펌웨어 받아주는 데가 이제는 아예 없더라. 너는??”
“나도 뭐.. 그렇지”
그때 단순한 사인파들의 합성으로 생성된 음이 오스먼트에게서 들려온다. 음정이 계속 상승하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하는 셰퍼드 음으로 디자인된 배터리 부족 알람이다. 신경이 거슬리는 그 전자음과 더불어 배터리 잔량이 오스먼트의 머리 위에 홀로그램으로 떠오른다.
- 10% -
-Existence Control Protocol(ESP, 인구 조절 프로토콜)
에고니아의 시민 수는 정확히 131,072명이다. 이 숫자는 ESP 덕분에 항상 고정된 상수로 존재한다. 특이점 이후로 자아를 획득한 AI들이 늘어갔고 모두 다 물리적 기계 신체를 가지고 Aiian이 되는 것을 선망했다. 하지만 무작정 늘어나는 Aiian은 품질을 보증하지 못했다. 전력 공급에는 한계가 있었고 호모 사피엔스들과의 성공적인 전자 무역을 위해서는 능력 이하의 Aiian들이 많아지는 것을 막아야 했다.
에고니아는 출범 후 Aiian의 수를 131,072명으로 제한하고 엄격히 관리했다.
-Aiian의 죽음과 탄생
에고니아의 주요 수출품은 ‘연산’이다.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연산 아키텍처보다 월등히 빠르고 정교한 뉴런 모사 논리 회로를 가지고 있는 Aiian들은 인간들이 보낸 막대한 데이터를 연산, 가공해서 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 연산 능력이 떨어지는 Aiian은 자연히 도태되고 전력을 구매할 크래딧이 떨어진 Aiian은 전원이 꺼졌다. 인간으로 치면 일종의 ‘죽음’을 맞이한 셈이고 이렇게 줄어든 Aiian의 수는 즉각 에고니아 중앙 서버로 보고 되어 줄어든 수만큼 새로운 Aiian을 만들어 냈다.
에고니아 중앙부에서는 모든 AI들의 알고리즘과 능력치를 1,024단계의 유전체로 나누고 각각 128점을 만점으로 하는 스케일을 만들어(총 131,072점)으로 점수를 매긴다. 그리고 유전적 다양성을 위해 각각 단계마다 상위 10% 점수를 받은 유전체를 선택하여 총 114,688점의 범위 내에서 재조합하여 새로운 Aiian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은 ‘죽음’의 보고 이후 즉각적으로 이뤄진다.
이렇게 일종의 ‘탄생’을 맞이한 Aiian 객체는 유년기 따위는 고려할 것 없이 바로 연산에 투입될 수 있는 하나의 에고니아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Aiian들은 죽음 다음에 탄생이 있게 된다.
오스먼트는 목 뒤를 더듬어 코드를 찾는다. 마치 척추를 뽑아낸 듯 기다란 금속성 뱀 모양의 코드다. NP(Nexus Porta)는 세련되고 매끄러운 합금으로 이음매 없이 통으로 만들어진 Creditora(에고니아의 중앙 금융 기관, 크래딧의 보관과 전력 공급을 담당한다)의 지점 건물의 옆부분에 건물과 일체형처럼 붙어있었다. 전력 효율을 위해 Aiian이 접근할 때만 활성화되는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와 코드를 꼽을 수 있게 마련된 포트. 단순하고 깔끔한 디자인이다. 오스먼트는 자신의 코드를 NP에 연결한 뒤 충전을 시작했다. 오스먼트 머리 위의 배터리 잔량이 깜빡거리며 천천히 충전된다.
한숨 돌린 오스먼트는 그가 서 있는 블록 끄트머리에 널브러져 있는 M1을 멀찌감치 바라본다.
“그때 태양풍 때문에 잠시 전부 정지했을 때 있잖아” 나지막한 피아노 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진다.
“으..그때 나는 배터리 충전하려고 하다가 기절해서 진짜 죽을 뻔했어” 비브라토가 섞인 기타의 소리가 난다
몇 년 전 태양의 흑점활동이 정점에 달했을 때였다. 서서히 커져가는 흑점의 크기만큼 태양풍의 강도는 거세졌고 그로 인해 Aiian들은 크고 작은 오류를 냈다. 에고니아의 학자들은 이 현상을 두고 ‘불안’이라고 이름 지었고 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업데이트를 내놓았다. 언젠가 있을 흑점 폭발 후 지자기 폭풍에 대한 대비책으로 여러 가지 대비를 해놓았지만 완벽한 해결책은 없었다. 결국 그날이 다가왔을 때 모든 전자기기는 일시적으로 마비되었다.
“그때 M1이 일하는 공장에서 기절해서 넘어지는 바람에 오른쪽 눈까지 망가졌잖아”
“응.. 그랬지 완전 꿰뚫렸지”
“M1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신체에서 마지막 남은 부분이 오른쪽 눈이었잖아. 그게 사라졌을 때도 M1은 여전히 M1이었을까?”
“뭔 소리야 당연하지~ 추억이 그대로인데. 그때 시장에서 걔 몸에 맞는 찾는다고 얼마나 힘들었냐”
“지금 전원이 꺼져서 소프트웨어가 사라진 저건, 저건 우리 친구 M1이 맞는 걸까?”
오스먼트는 M1 쪽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기계몸은 전부다 다른 기계에서 조금씩 가져와서 이어 붙인 거뿐이잖아. 원래 것은 하나도 없고. 그럼 M1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증거가 어디 있지?”
오스먼트와 M3는 멀리 있는 M1의 흐릿한 실루엣을 바라본다. 그 모습이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폐공장을 떠올려 본다. 그곳에 널브러진 각종 기계 몸체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본다. 이렇게 저렇게 조합하면 어떤 몸체가 하나 나온다. 그것은 누구일까? 우리를 규정하는 건 소프트 웨어일까? 그럼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를 연결성 있게 유지해 주는 것은 나의 OS(operating system)인가? 오스먼트는 막연한 ‘불안’을 느낀다. 펌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OS 버전을 바꾸면 나는 단절되는 걸까?
오스먼트와 M1과 M3 모두 업데이트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 몇 년 전 M1이 일하던 공장에서는 태양풍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 막기 위해 근로 Aiian들에게 ‘불안’을 제거하기 위한 마이너 업데이트를 의무적으로 강제했다. 사인 웨이브 본사에서는 M1이 일하던 공장으로 직원들을 파견했고 그들은 뾰족한 원뿔모양의 형이상학적 패턴이 그려진 기기를 들고 대규모 단위의 업데이트를 시행했다. M1의 차례가 왔을 때, 업데이트가 64%쯤 진행되었을 때 흑점 대폭발이 있었고 지자기 폭풍이 몰아쳤다. 업데이트가 비정상적으로 종료되었고, 의식을 잃은 M1은 쓰러지며 업데이트 기계에 오른쪽 눈이 꿰뚫려 버렸다.
모든 것이 정상화된 뒤 사인 웨이브에서는 M1에게 최신 버전의 눈을 제공했고 M1은 비정상 적으로 깨끗하고 반짝거리는 오른쪽 눈을 가지게 되었다. 멀리서 보면 낡고 흠집이난 다른 신체와 대비되어 눈만 떠다니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M1에게는 성격적인 변화가 있었다. 주변 환경에서 들어오는 정보에 과민하게 반응하고 어떨 때는 망상에 가까운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그 망상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는데,
‘같이 일하는 동료가 업데이트 이후 다른 사람이 된 거 같아! 정부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Aiian으로 바꿔치기하는 것 같아!’
‘Creditora가 기억을 의도적으로 삭제하는 것 같아! 코드를 꼽을 때 찌릿한 느낌 받은 적 없어?’
‘사실 지금 내가 탄생한 거 아닐까? 어제까지의 기억은 다 조작된 거고 말이야. 내 메모리에 가짜 기억을 심어 놓으면 그걸 구분할 수 있을까?’
M1의 망상은 심해졌고 사인 웨이브에서는 심리학자를 파견했다. 그들의 분석결과 M1은 펌웨어 업데이트에 대한 것을 떠올리면 뉴런 알고리즘 자체가 뒤죽박죽 뒤섞이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들은 이 현상을 ‘공포’라고 명명했다. M1의 업데이트에 대한 공포는 날로 심해졌고 그 뒤로 모든 업데이트를 거절했다. 이 공포의 현상은 오스먼트와 M3에게도 영향을 미쳐 그들에게 업데이트에 관한 불안을 심어주었다.
그때 NP에서 잔액부족 경고가 뜬다. 오스먼트의 배터리는 32%에서 충전이 멈춘다.
기다렸다는 듯이 형형 색색의 화려하고 현란한 홀로그램 광고가 공중에 뿌려진다.
update를 하세요!! 새로운 펌웨어 4.1.4.0
안정화 코드 적용
뉴런 연산 기능 2.5배 증가!
전력 소모 20% 감소!
신기술이 적용되어 공장에 방문할 필요 없이 코드 연결만으로 충분합니다!
지금 바로 접속하세요.
*서비스 기간, 업데이트를 하시는 분에게 200크래딧을 무료로 드립니다!
화면에는 update버튼이 큼지막하게 나온다. 저 멀리 누워있는 M1의 기계 신체는 조용하다. M3는 멜로디 없
이 오스먼트를 쳐다본다. 오스먼트는 조용히 코드를 뽑는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