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게임을 하는 것까지는 큰 맘먹고 봐준다 쳐도, 현질까지 하고 싶다고 하면 부모님 마음이 복잡해지는 게 사실입니다. 현질에 빠져 얼마를 날렸다는 뉴스의 기사가 떠오르면서 우리 아이가 게임에 돈을 다 써버리는 무절제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지요. 현질.. 이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요?
무료게임은 없다
예전에는 게임을 패키지로 사서 이용했습니다. 3~4만 원을 주고 산 플라스틱 케이스 속에는 시리얼 넘버와 함께 영롱한 빛을 반짝이는 게임 시디가 들어있었습니다. 게임은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었고 엔딩이 존재했죠. 소장하는 맛도 있었고 중고로 팔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럿이 즐기는 온라인 게임이 유행하면서부터 게임의 결재 방식은 다양해졌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즐기는 온라인 게임들은 대체로 시작할 때는 돈을 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다 보면 돈을 쓰고 싶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무료로 적당히 즐기면 좋으련만 아이들은 왜 꼭 게임에 돈을 쓰려고 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원래 게임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게임회사가 처음에 무료로 게임을 제공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게임을 시작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게임의 재미의 빠져들 때 즈음 유료 콘텐츠를 적절히 섞어 넣는 것입니다. 마트의 시식코너와 비슷합니다. 얼마나 재미있는지 맛을 본 뒤에 결재를 하라는 뜻입니다. 너무 비싸면 유저가 달아나고 너무 싸면 남는 것이 없기에 기획자들은 적절하게 과금을 할 수 있도록 늘 밸런스를 고민합니다.
사실 무료게임은 존재하기 힘듭니다. 무료게임처럼 보여도 어떻게든 개발비용을 충당해야만 유저에게 지속적으로 게임을 서비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부분유료화 게임은 어느 정도 과금을 해야 쾌적하게 게임의 재미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이에게 무조건 현질은 안된다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한 규칙일 수 있습니다. 마트에서 시식만 하라고 하면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돈에 대한 신념은 어린 시절에 형성된다.
저는 어렸을 때 용돈을 제 날짜에 받지 못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정해진 날이 되어서 용돈을 달라고 하면 아직 용돈이 남았으면서 달라고 한다고 혼이 났습니다. 그래서 늘 돈을 다 써야먄 새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돈을 모은 다는 것은 욕심을 부리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돈을 모을 생각을 못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돈을 모으는 재미도 성취감도 배울 수 없었지요.
그래서 돈을 빨리 써버리면 또 빨리 쓴다고 혼이 났습니다. 원래 받기로 되어있는 용돈을 정당하게 받는 것인데도 기분 좋게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용돈을 받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한숨과 꾸중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용돈 받는 순간은 매번 곤욕스러운 시간이었지요.
이렇게 돈에 대해 어릴 때부터 안 좋은 기억이 쌓이면 돈이란 감당하기 어려운 것, 모아도 소용없는 것, 나에게 모욕감을 주는 것으로 무의식 깊이 자리 잡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게 '돈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이 박히는 것이죠. 이런 생각은 어른이 되어서 가정경제를 꾸려가야 할 때도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실제로 저는 제 통장에 돈이 모이는 것을 보면 '돈이 이렇게나 모였네'라고 생각하기보다 '이 돈을 어떻게 쓰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 돈을 모으는 것이 늘 힘들었습니다. 차라리 통장을 들여다보지 않아야 그나마 돈을 모을 수 있었어요. 내 행복을 위해 돈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신념을 만들지 못한 거지요. 이런 마음이 있으면 사회생활을 시작해도 재테크나 저축에 대해 알아볼 마음이 생기지 않고 월급이 모이면 어떻게 불릴까? 보다는 어디에 쓸까? 를 생각하게 됩니다. 돈과 친하지 않았던 무의식이 자신도 모르게 삶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자신의 부에 대한 신념을 한번 점검해 보세요. 어린 시절 결정적으로 당신에게 영향을 준 사건은 무엇인가요? 그 신념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 아이들에게는 좀 더 나은 경제관념을 만들어 주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질을 이용하자.
우리 아이들에게 이왕 현질을 허락했다면 이것을 통해 아이가 경제개념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면 어떨까요?
집집마다 경제사정이 다르기에 정해진 액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게임에 돈을 얼마 정도 쓰는 것이 좋을지 아이와 함께 이야기해보세요. 아이가 모든 것을 결정하도록 두라는 뜻은 아닙니다. 가정 경제를 운영하는 사람은 당연히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운전대는 부모가 쥐고 있되 아이의 의견을 참고해 주세요. 아이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들어주고 부모가 어떤 경제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도 아이에게 공유해 주세요. 막연히 아이에게 돈 쓰는 것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더 큰 목표를 위해 계획적으로 지출하는 것임을 알려주면 좋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그렇게 독하게 돈을 아낀 덕분에 저희는 전세살이를 벗어나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치안이 별로 좋지 않던 동네에서 신도시로 이사를 갈 수 있어던거지요. 새 아파트에는 제 방도 있었고 바로 앞에 학교도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절약을 택했고 또 멋지게 목표를 이루신 겁니다.
하지만 용돈을 줄 때마다 엄마가 무작정 짜증을 내지 않고 이런 이유들을 설명해 주었다면 저도 같은 목표를 가지고 부모님을 돕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가족의 성공에 내가 보탬이 되었다는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겠지요. 그리고 돈을 계획적으로 모으면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좋은 신념을 어린 나이에 배울 수 있었을 겁니다.
충전해 준 게임머니를 아이가 쓰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걱정이 올라올 때도 있을 거예요. 겨우 일주일밖에 착용하지 못하는 스킨에 모든 돈을 써버리는 것을 보면서 돈이 아까울 수도 있어요. 게임 머니를 모으면 훨씬 더 좋은 아이템을 살 수 있는데도 자잘한 것들을 사느라 게임머니를 축내는 모습을 보며 한심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럴 때도 가볍게 조언은 해줄 수 있겠지만 너무 많이 간섭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누구나 시행착오를 하며 배워 나갑니다. 우리도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하며 배워왔는지 떠올려 보세요. 저는 경제관념을 배우는데 40년 동안 시행착오를 해왔어요. 아이는 이제 막 걸음을 뗀 상태이니 많은 것을 배우려면 그만큼 많은 경험이 필요할 거예요. 실수 없이 배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직접 넘어지고 구르면서 배운 것들은 몸에 남아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아이도 자기 돈이니 직접 써보며 배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가치가 낮은 아이템에 게임머니를 낭비하고 있다면 아이는 지금 가치판단에 대해 배우는 시기입니다. 저도 길거리에서 싸구려 물건을 숱하게 사본뒤에야 좋은 물건을 사서 오래 쓰는 것이 가장 남는 것이라는 것을 몸으로 배웠어요. 아이에게 이 배움의 기회를 뺏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겨우 몇백 원 몇 천 원 하는 게임머니로 어린 나이에 이런 지혜를 배울 수 있다면 이보다 가성비 좋은 배움이 어디 있을까요?
아이가 게임머니를 모으지 못해서 정말 원하는 아이템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 "자잘한 템을 사는 것을 참고 게임머니를 모아보면 어떨까?" 정도로만 조언해 주시고 아이가 하는 데로 지켜봐 주세요. 아이는 지금 인내를 배우는 중입니다. "다 써버리니까 돈이 없지!!"라고 화를 내고는 결국 비싼 아이템은 엄마가 추가로 현질 해줘서 사준다면 아이는 '나는 돈을 모으지 못하는 바보구나' 하면서 무능함은 무능함대로 가져가고 인내도 배우지 못하게 됩니다. 아이가 게임머니를 다 써버려 속상해할 때는 그 마음을 공감해 주고 스스로 돈을 모아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에는 함께 기뻐해주세요.
"와~ 참기 힘들었을 텐데 돈을 모아서 원하는 것을 얻었구나! 멋진걸!!"
저도 그랬지만, 믿음보다 걱정이 앞서는 어른들은 아이가 삶에서 직접 배워야 하는 것들을 미리 설계하고 결정하고는 합니다. '돈 아까운 줄 모르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돈을 쓰는 법을 배워야 할 때 아끼는 것을 가르치려고 하고 '못 가져서 마음에 결핍이 생기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아끼는 것을 배워야 할 때 쓰는 것을 가르칩니다. 시행착오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부모님의 애정 어린 마음이지만 이런 행동은 아이의 자연스러운 배움을 빼앗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배울 것이 있기에 문제가 생깁니다. 삶은 지금 배워야 할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늘 완벽하게 펼쳐집니다. 모든 이의 삶은 그런 삶의 지혜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귀한 여정입니다. 아이의 삶뿐만 아니라 부모의 삶도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