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물의 삶
날 봐주기를 원했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확인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싶었다.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외쳤다.
"나는 여기에 있어! 여기에 있다고!"
하지만, 날 봐주는 것 역시 사람이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을 본다. 보고싶지 않은 것은, 보지 않는다. 사람은 굳이 오물통 속을 보지 않는다. 사람은 아름다운 것, 근사한 것을 본다. 사람은 꿈을 꾼다. 자신과 다른 것,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을 본다.
나는 오물이었다. 나 역시 나를 보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나를 보길 원치 않았다. 그건 내 생각이었지만, 분명 그러했다. 나는 살아 있었다. 나는 동시에 죽었다.
나는 더 이상 외치지 않았다. 나는 펜을 잡았다. 내 오물을 잉크 삼아, 내가 아닌 것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가면을 쓸 생각이었다.
나는 바보였다. 가면이라는 건, 누군가의 얼굴을 흉내낼 뿐이었다. 내가 아닌 것들을 써내려간다는 것은, 남을 쓰는 것이었다. 복제에 불과했다. 그것은 아름답지도, 근사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오물로 썼기 때문이다. 그것은 원본에서 나지 않는 끔찍한 악취를 풍겼으므로 사람들은 굳이 그것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모든 눈길은 원본을 향했다.
나는 펜을 꺾었다. 더 이상의 집필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도둑질한 남의 작품을 가면삼아 뒤집어쓰고 다녔다. 어차피 그들은 나를 볼 수 없으므로, 정확히는 보지 않으므로, 도둑질은 수월했다. 사람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오물로 이루어진 발자국을 아무리 남기고 다니더라도, 그들은 그것에 시선을 주지 않았다. 사람들의 관심은 오직 내가 뒤집어쓴 작품에 있었다.
그것은 내 고독을 강화할 뿐이었다. 고독은 나를 먹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오물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나조차도 내 발자국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나는 똑같이 작품을 뒤집어쓴 무리 안에서, 가식적인 행복을 주고받으며 살아갔다. 돌이켜보면, 그들도 모두 나와 같은 오물들이었다.
그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거기서 끝났으리라. 나는 두 번 다시 펜을 잡지 않고, 모방가들 사이에서 모방된 행복을 먹이삼아 살아갔을 것이다. 내일은 그를, 모레는 그녀를 베끼며 살아갈 것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내 운명은 나를 낙원에서 건져내었다. 맹렬한 바람이, 내가 뒤집어 쓴 작품을 날려버렸다. 내 정체를 알아본 무리는, 나를 배제하려고 했다. 나는, 내 정체를 잊었기에, 그들이 왜 나를 위협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죽으리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신없이 달렸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달렸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사막 위에 서 있었다. 너무나도 추운 밤의 사막이었다. 배고픈 박쥐때가 배고픈 전갈들을 사냥하기 위해 하늘에서 크게 선회하고 있었다.
나는 살고 싶었다. 박쥐도 전갈도 너무 무서웠다. 나는 굴을 파고 숨으려 했다. 하지만, 단념할 수 밖에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오물로 된 발자국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남아 있던 것이다. 나는 내 정체를 기억해냈다. 나는 오물이었다. 그 누구도 보기를 원하지 않는 오물이었다. 꾸며낸 모습만이 진실이고, 진정한 모습은 배제의 대상인 오물이었다.
그러나, 그 오물이 살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건 나였다. 나는 내가 살아주기를 원했다. 내가 이 머나먼 사막까지 죽을 힘을 다해 달린 이유는, 나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비록 내가 오물일지라도, 나는 아직 살고 싶었다. 이 순간, 나는 나를 보고 있었다.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의 아름답고도 근사한 운명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펜을 잡았다. 굴 밖으로 기어나왔다. 지금이 인생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른다면, 쓰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전갈들이, 박쥐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오물인 나를 보고 있었다. 옳거니. 드디어 나를 봐주는구나. 이 망할 녀석들아. 그럼 들어라. 똑똑히 들어.
"나는 여기에 있어! 여기에 있다고!"
나는 사막 한 가운데에서 이렇게 외쳤다. 전갈들이 기어오고, 박쥐들이 날아와도 계속 외쳤다. 난 그들에게 사냥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내 오물 속에 집어넣어 삼켰다. 그리고 오물을, 전갈을, 박쥐를 잉크삼아, 사막이라는 모래로 된 백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도다. 지금도 쓰고 있다. 태양이 뜨면, 더 이상 전갈도, 박쥐도, 오물도 남아나지 않겠지. 그러니 태양이 뜨기 전, 나의 대서사시를 내게 보여주자. 남은 시간동안, 내 사랑스러운 운명을 문자로 엮어, 나에게 바치자.
나를 봐주는 나에게 바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