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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그프리트 Dec 27. 2023

오늘 하루(2023년 12월 27일)를 보내며…

두 개의 시와 하나의 노래

오늘 하루 마음 무겁게 보낸다.

마음 무거운 날이면 뒤적이던 책에선 두개의 시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하나의 노래가 뒤따라 나온다.


어느 환상적인 판화


     -샤를 보들레르-   

   

    이 별난 유령이 몸에 걸친 것이라고는 달랑

    해골 이마에 괴상하게 놓여진

    사육제 냄새나는 왕관 하나.

    박차도 채찍도 없이 말을 숨 가쁘게 휘몰아간다.

    이 말도 묵시록에 나올 법한 말라빠진 유령 말.

    콧구멍에서 거품을 뿜는 모습이 마치 간질병 환자로다.

    허공을 가르며 질주하여

    무모한 발굽을 걷어차 세상 끝까지 짓밟는다.

    기수는 그의 말이 짓뭉개는 이름 없는 군중 위로

    번쩍이는 칼을 휘두르며 돌아다닌다.

    제 궁궐 돌아보는 왕자처럼

    희뿌연 햇빛 받으며,

    고금의 역사 속 민족이 잠든

    지평도 없이 아득하고 차디찬 묘지를.



증오의 독


-샤를 보들레르-

    

    

    '증오'는 창백한 다나이드*1의 밑 빠진 독.

    미쳐 날뛰는 '복수'가 붉고 억센 두 팔로

    죽은 자의 피와 눈물을 큰 양동이에 가득 길어

    그 컴컴한 빈 독 안에 들이붓지만 헛되어라.

    

    '악마'가 몰래 독 바닥에 구멍을 뚫었으니,

    '복수'가 희생자들 되살려

    피와 눈물 계속 짜낸다 한들

    천 년의 땀과 노력은 바닥으로 새어 사라지리.

    

    '증오'는 선술집 깊숙한 곳에 도사린 주정뱅이,

    마시면 마실수록 목마른 것이

    마치 머리 일곱 달린 레르네의 히드라.*2

    

    그렇지도 않다. 행복한 술꾼은 세상 모르게 취할 줄 알지만,

    '증오'는 애통하게도 아예 타고난 운명이

    식탁 아래 쓰러져 잘 수조차 없는 몸이니.


그리고


아득히 먼 곳


-이승재-


찬 바람 비껴 불어 이르는 곳에

마음을 두고 온 것도 아니라오

먹구름 흐트러져 휘도는 곳에

미련을 두고 온 것도 아니라오

아어쩌다 생각이 나면

그리운 사람 있어 밤을 지새고

가만히 생각하면 아득히 먼 곳이라

허전한 이내 맘에 눈물 적시네

황금빛 저녁 노을 내리는 곳에

사랑이 머무는 것도 아니라오

호숫가 푸른 숲 속 아득한 곳에

내 님이 머무는 것도 아니라오

아어쩌다 생각이 나면

그리운 사람 있어 밤을 지새고

가만히 생각하면 아득히 먼 곳이라

허전한 이내 맘에 눈물 적시네

아어쩌다 생각이 나면

그리운 사람 있어 밤을 지새고

가만히 생각하면 아득히 먼 곳이라

허전한 이내 맘에 눈물 적시네  접기

https://youtu.be/LXRvpfb1vLA?si=UtKGJIq17vWLjsz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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