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2

맑은 사람 아니라니까

by 희도

음... 좋았는데.

선생님 듣기에는 악으로 들렸을지라도 나도 모르는 어떤 휘날림이 내 속에서 일어나 후련하기도 했다. 조금 더 휘둘렀다면 가슴에 있는 회오리를 거세게, 더 거세게 일으켜 무엇인지도 모를 그 바람 덩어리를 날려 버렸을지도 몰랐는데.

스틱과의 첫 만남은 그런 느낌이어서 좋았을까. 나는 열심히 배웠다. 노력은 열심이었으나 늘 방망이는 그 자리에서 맴맴거렸다. 똑같은 소리로 딱딱거렸고 힘을 빼면 뻰뻰거렸다. 참나. 빼면 뺐다고 뻰뻰거리고 힘을 주면 딱딱 거렸다. 음은 무슨 놈의 음이고 음율이란 말인가. 빌어먹을 고무판은 계속해서 뺀질거렸다.


"어깨에 힘 빼고요... 휴~ 해 보세요, 모든 힘을 몸에서 빼고. 그럼 축 늘어지죠? 거기서 손만 들어 자세잡고 한번 올렸다 내려보세요. 고무판을 친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내려요. 고무판을 향해서 그냥 스틱을 올렸다 내려요."


"..."


"어때요. 어떤게 느껴져요? 그냥 솔직히... 하하. 뭐 혼내자는 게 아니니까 그냥 솔직하게 뭐 어땠다, 팔이 아프다도 좋고 손가락이 저린다도 좋고. 뭐 느껴지는 거 없어요?"


"그냥... 지가 튀네요. 하~. 통통. 고무판 반동에 통통 튀는데요."


진짜로 할 말이 그것밖에 없었다.

공을 땅에 떨어뜨리면 저 혼자 몇 번을 통통거리다 구른다. 그래서 다시 손바닥으로 쳐주어 올리고 쳐주고. 공 튕기기 놀이. 딱 그 느낌이었다. 단 잡지 않으니 저 혼자 통통 튀다가 죽는.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염병.

이 나이에도 눈치를 봐야 하나? 기냥 가르쳐 주믄 되지. 내가 애도 아니고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AC.

그래도 하하 곱게 부드럽게 바라보며 기죽은 척 말을 한다.

제발 눈빛아~~ 좀 웃어줄래? 원래가 부드럽고 고운 거랑은 거리가 멀다는 건 안다만은 이 순간만은 조금만 휘어주면 좋겠다. 배우는 학생이 좀 살랑거리고 그래야지, 어떻게 뻣뻣하게 그르니~ 그러니 눈빛아~~ 안 되겠음 팔자 주름아, 너라도 어찌 좀 입술 끝 좀 땡겨볼래?


"일부러 안 웃어도 됩니다. 뭐 며칠 보니 성격이 그런 분도 아니더만. 누가 수학 선생 아니랄까 봐."


이 냥반이 시방. 이건 인신공격인데? 여기서 수학이 왜 나오냐고.

수학은 뭐, 왜? 딱딱할거라는 말을 하고 싶은거야 뭐야. 그러니 나도 당연히 딱딱하다는 것이고. 수학 선생들이 재미있는 분들이 얼매나 많은데. 이건 개인차지. 성격하고 수학하고 뭔 상관이냐고~~ 그러는 당신은? 음악한다는 양반은 부드럽고 맨날 웃어야 되는거 아녀? 자기는 무슨 바람 빠져 짜그라진 공갈빵처럼 생겨가지고. 성질은 또 어떻고. 악쓰는 건 어딜 내놔도 지지 않는 버럭쟁이에다 얼마나 다혈질인지 서결이가 다 형님 형님 하겠드만. 누구보고 뭐래?


"허. 나 참. 나 육십 평생 살믄서 선생같이 맑은 사람은 또 첨 봤네. 어찌 그렇게 못 숨겨요? 생각하는 게 눈에 다 보여? 왜, 그렇게 막 욕 퍼붓고 나면 좀 나요? 어쩜 그렇게 다 보이는지... 맑은 물에는 고기가 못 삽니다~."


헉. 저 빌어먹을 놈의 소리를 또 듣는다. 영이 맑네, 너무 맑아 다 보이네, 거짓말을 못 하는 사람이네, 그렇게 맑으니 착하지. 근데 맑은 물에는 고기가 못 살아.

징그럽게 듣고 살았다. 산에 들어가 도를 닦아야 하나, 부처를 구워 삶아 해탈을 시켜달라 해야 하나 별 생각을 다 했다.

어데가 맑은데? 나, 안 맑은데? 나도 나쁜 생각 하고, 야한 생각도 하고 하는데?

염병할.

진심으로 나는 맑다는 말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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