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이의 생각

@*@ 사마리아인의 고독

by 희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나는 늘 어딘가에 불안하게 서 있다. 아름답고 평화로워 안정적인 공간이 아닌 무엇인가 나를 잡아줘야 하는 것은 아닌지, 어떤 지지대 같은 것을 옆에 세워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를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그런 불안한 공간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보면 나의 찌질한 생각이 가지고 오는 공간인 것을 알면서도 어찌 빠져나오지 못하고 빙글 뱅글 도는 것이다.




대대로 불교집안인 데다 큰 할아버님께선 누구나 말만 하면 알만한 분이 큰스님이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문제는 이상하게 나한테서 발현됐다.

어려서부터 나는 하느님을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부처님을 바라보시던 상할매조차 교회 다니는 것을 그냥 두어라고 할 정도로 인정하셨다. 그래서 우리 집에선 나만 개신교다. 성탄절이 되면 한 달 전부터 교회에서 살았다. 좋았다. 많은 행복을 느꼈다.

어지러움을 느낀 건 나이 먹으면서부터였다.




민속신앙이 내가 살아오면서 나의 생활에 알게 모르게 깊숙이 자리 잡은 것을 깨달으면서부터 나의 방황은 시작됐고 어지러움도 시작됐다. 나를 위해 달빛아래 정한수를 떠놓고 기도하시던 나의 노인네들, 어디를 가도 돌 하나씩 얹으며 나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시던 할아버지, 모든 생명에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이 틀린 것이 없었고 성경의 귀신 들린 여자가 되어버린 동생. 어려운 질문이고 답 없는 답이었다. 평소엔 무시하고 나만의 세계에 있다. 사찰의 고즈넉함과 분위기가 그리우면 망설임 없이 길을 나선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절에 가지마라고는 안 하셨으니 가서 절만 안 하면 되지 하고. 스님과의 대화도 즐긴다. 나의 갇혀 있는 생각을 깨워주기도 하시니. 교회도 간다. 의무도 있고 말씀이 고파도 간다.




울 딸아이는 불교다.

소위 박 터지게 싸웠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지금 하나밖에 없는 내 딸과 뭐 하는 짓인가? 내가 뭐라고 내 딸에게 종교를 강요하고 있는가 말이다. 나의 상할매보다 못한 나였구나. 그리고 인정했다. 그래 아가. 네가 편하고 좋은 쪽으로 움직이거라. 그것이 너의 종교인 것을. 지금은 스스럼없이 염주팔찌 사다 달라 말하는 사이는 되었다. 나의 방황은 동생이었다. 뜬금없이 스쳐 지나가는 몇 마디의 말들.

잊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또 귀를 세우자니 이건 아닌 것 같고. 그 어느 애중 간한 공간에서 헤매는 것이다.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서 먹고 남은 것을 그 옆에 두는 때가 많다. 동생은 물 그렇게 싱크대에 두는 거 아니야. 옛날에도 없다 없다 하면 물을 살강에 떠 놨잖어. 그것도 일종의 비는 거야. 밥을 한 그릇씩 터놓는 집도 있고 쌀을 한 그릇씩 떠 놓는 집도 있지. 근데 진짜 가난해 이도저도 없다 그럼 물이라도 올렸잖아. 그러니 싱크대에 빈 물 두지 마. 이 소리가 또 한동안 괴롭힌다. 물 먹고 무심결에 두었다가 또 얼른 가서 버리고 참... 뭐 하는 짓인가 하고. 문턱 밟지 마라 복 달아난다 밤에 휘파람 불지 마라 귀신 부른다 조상을 잘 섬겨야 앞날이 편하다 등등... 아이고 주여!




나는 성묘를 가서도 이소리 저 소리 다한다. 나 왔네 잘 있냐 보고 싶다 그래도 절은 안 한다. 이해하지? 울 노인네들 사랑하는 거 알쥐? 하면서. 웃긴 나의 아이러니한 행동이 나도 어지럽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다. 그저 하나님께도 이해를 바란다. 동생이 자꾸 흘리는 말들도, 나의 이 작은 머릿속에 있는 안 들으니만 못했던 소리들을 좀 지워주소서 기도한다. 지나가면서도 기도하고 물먹으면서도 기도한다. 그러면서도 또 걸려서 물은 버리고 싱크대는 비운다. 이 얼마나 두서없는 방황의 되풀이인가. 그러니 특히 성탄절만 되면 아침부터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를 엄청 받는 내가 창피하다. 생활을 잠시 들여다보면 많다. 지키자니 그렇고 넘기자니 그런... 나는 아직도 사마리아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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