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살고 싶은 너에게

2. 내 꿈은 마법사

by Yishey

나는 매년 장애인 친구 도우미를 자처했다. 도우미를 하면 짝꿍이 고정이었기 때문에 싫어하는 애랑 같이 앉기 싫어서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내 짝꿍 민종이는 사실은 나보다 한 살 오빠였는데 아파서 한 학년을 꿇었다. 도움반 선생님이 나한테만 알려준 비밀이라 가장 친한 친구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이랑 다 같이 있을 땐 “민종아”라고 부르고 수업시간이 되어 자리에 앉으면 “아까 오빠라고 안 불러서 미안해”라고 속삭이며 사과했다. 우리 둘만의 비밀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어깨가 으쓱했다.


민종이는 진짜 재밌는 친구였다. 민종이는 수업 내내 색종이를 조그맣게 찢었는데 가끔 벌떡 일어나 갈기갈기 찢은 색종이를 하늘 위로 뿌리며 으아아아 소리를 질렀다. 처음엔 놀랐는데, 지루해서 졸릴 때쯤 하늘에서 떨어지는 알록달록한 색종이와 흥분한 민종이를 보다 보면 괜히 기분이 통쾌하고 좋았다. 선생님은 민종이의 이런 행동을 너무 싫어했다. 민종이가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며 항상 나를 불러 민종이를 도움반에 데려다주고 오라고 했다. ‘나이스’ 민종이는 종종 나에게 수업 중간에 땡땡이칠 수 있는 기회를 내어주었다. 민종이는 수업이 재미없거나 선생님이 색종이를 못 찢게 하거나 아니면 좋아하는 음악, 체육이 다른 과목으로 시간표 변동이 되면 그런 행동들을 하는데, 일부러 선생님한테는 말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알아서 미리 대처해 버리면 이렇게 중간에 땡땡이 칠 기회가 사라질 것 같아서다. 수업 중간에 민종이랑 도움반에 가면 도움반 선생님은 또 내려왔냐며 한숨을 쉬고는 쿠키를 내어줬다. 그렇게 쿠키를 먹고 커다란 짐볼 위에 엎어져 데굴데굴 구르며 놀았다. 민종이는 나랑 도움반 선생님을 제일 좋아해서 이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나도 학교 생활 중에 그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다른 친구들은 함부로 들어오지 않는 이 도움반을 난 제집 드나들 듯했기에 도움반에 들어올 때면 어깨가 으쓱했다.


민종이는 5학년이 두 번째였다. 나는 5학년을 다 끝내지 못한 채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됐다. 이사 가는 그 학교에는 민종이도 쿠키를 내어주던 도움반 선생님도 없을 것이었다. 내 학교 생활 중 가장 재밌던 나날들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속이 울렁거렸다.


전학 가기 일주일 전, 도움반 짐볼 위에 엎어져 민종이의 무릎에 시선을 두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민종이한테 나랑 같은 학교로 오라고 하면 오려나. 그 학교 선생님은 민종이한테 색종이 많이 안 주겠지, 그럼 어쩌나..’

그때 민종이를 데리러 민종이네 엄마가 도움반에 오셨다. 도움반 선생님이 안 계셔서 내가 민종이에게 “오빠 이제 집 가야 한대”라며 가방을 챙겨 들어주었는데, 민종이네 엄마가 그런 나를 유심히 보더니 뭔가 생각났다는 듯 놀라며 내 두 손을 잡았다. “어머 네가 민종이 도우미 친구구나, 아줌마가 너무너무 고마워 우리 민종이가 물을 무서워했는데 네가 점심시간마다 같이 손 씻어준 덕분에 이제 집에서도 혼자 손을 씻더라니까.. 그 모습 보고 얼마나 울었나 몰라” 두 손을 잡힌 채 상황 파악을 하다가 아줌마가 한 말을 들으니 “내가 민종이랑 손 씻은 게 그렇게 엄청난 일이었다고..?” 하는 생각에 벅참이 올라왔다.


민종이랑 아줌마가 가고 짐볼에 누워 아까 아줌마가 한 말들을 떠올리니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집에 가서 엄마 아빠에게 이 말들을 전해줄 생각에 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 오늘 들은 말은 “와 잘했다, 너무 잘했네” 이런 종류의 말이 아니라 정말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누구의 딸로서 들은 칭찬이 아니라 나로서 처음 들은 진심이 담긴 칭찬이었다. 그랬기에 그 벅참은 너무나 컸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도움반 선생님이 들어왔다.


“선생님! 선생님이 되려면 무슨 꿈을 가져야 해요?


‘특수교사’

전학 가기 일주일 전에야 도움반 선생님을 특수교사라고 부르는지 처음 알았다.

특수교사가 되면 민종이 같은 친구들이랑 매일 있을 수 있고, 아줌마에게 들은 칭찬을 매일 들을 수 있다. 다른 친구들은 함부로 못 들어오는 나만의 아지트 같은 교실도 가질 수 있다.


특별하고 멋진 꿈. 특수교사. 이름부터 특별했다. 이제 자기소개할 때 멋들어지게 말할 꿈이 생겼다. 아무도 특수교사가 뭔지에 대해 몰랐지만 오히려 좋았다. 내가 내 꿈을 멋지게 설명해 줄 수 있어서.


특수교사는 못하던 걸 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야. 마법사처럼!

작가의 이전글나답게 살고 싶은 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