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착한 꿈은 멋이 없어서
중학교 2학년, 김정은도 무서워한다던 중2병의 시기에 도달했다. 어른들이 하는 모든 말에 반박하고 싶어지는, 혼자 있을 땐 내 삶과 인생을 내다보며 한숨 쉬게 되는 애어른의 시초가 되는 그런 시기였다.
‘내가 주인공이 되는 삶’ 내 친구들은 모두 그런 삶을 꿈꿨다. 아이돌, 모델, 배우, 디자이너 와 같은 반짝거리는 꿈들을 가졌다. 그런 애들을 보다 보니 내 자부심으로 두었던 ‘특수교사’의 꿈이 초라해 보였다. 이름만 특별하지 사실상 그렇게 특별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니 내 꿈이 도움반 선생님이라고 하면 이젠 잘한다 멋지다도 아니고 착하다는 반응이 전부였다. “착하려고 가진 꿈이 아닌데, 멋있고 특별하고 싶어서 가진 꿈인데,
나도 모델 같은 거 해볼까, 아니다 그림 잘 그리니까 나도 디자이너 해볼까. 길거리에만 돌아다녀도 모든 영상, 광고, 일러스트가 다 내가 만든 것들이면 얼마나 멋있는 삶일까. “
나도 내가 빛나는 꿈을 가져보고 싶었다.
비교적 또래 친구들보다 일찍 진로에 대한 고민을 했던 터라 고등학교 진학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었다. 당연히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이 되니 나보다 그림도 못 그렸던 애들이 예고 입시를 한다며 여름방학을 입시 미술학원에서 보내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사라지며 입시 미술을 권유하는 친구들이 마치 “너도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착한 건 아무 소용없어. 멋진 너의 삶을 생각해 봐. 너만 생각해.” 라며 중2병 초기인 나의 감정을 요동치게 했다.
우리 집은 여름방학을 입시 미술 학원에서 보낼 수 있게 할 정도로 돈이 많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 처음으로 내 꿈에 반대를 했다. 그것도 돈 때문에. 하필 중2병,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것이다. 내 꿈을 위해 이 정도도 못해주냐며, 난 그림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한데 나도 예고 가고 싶은데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냐며 폭포수 같이 말을 쏟아냈다. 그 순간 모든 말은 진심이었지만. 그림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한 가에 대해서는 확신은 없었다. 근데 이거 중2병의 고정 멘트니까 이걸 빼고 말한다면 설득력이 떨어질 것이었다.
엄마 아빠는 그림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던 내 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딸이 행복하다는데 돈 때문에 행복을 막을 순 없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그림 좀 그린다는 교수님에게 우리 딸 실력 한 번만 봐주십사 요청했다.
난 아무것도 모르고 엄마 손에 이끌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서울에 어떤 교회로 갔다. 거기서 본 엄마의 모습은 이때까지 본 엄마의 모습 중에 가장 약했다. 한 번도 엄마가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누가 나를 조금만 놀려도 되려 5배로 되갚아주는 엄마였다. 우리 집에서는 아빠보다 엄마가 더 강한 사람이었다. 근데 그런 엄마가 교수라는 사람 앞에서 너무나 작은 사람이 되어 오시느라 힘들진 않았는지 물으며 굽신거렸다. 먼 길을 온 건 우리면서. 엄마의 그 모습을 보니 당장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 정도로 진지한 건 아니었는데, 그냥 내 꿈을 반대하는 엄마 아빠에게 속상해서 그랬던 건데, 그냥 내 친구들이 나보다 더 멋진 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부러웠던 건데. 사실 나도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는데.’ 복잡한 마음이 섞여 눈물이 났다. 교수님이 우는 나를 보고 왜 우냐고 물었다. “엄마한테 미안해서요”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내 말을 들은 엄마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런 엄마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중학생은 책임질 수 있는 꿈을 꾸어야 하는 나이구나.
아직 중학생의 나이에 평생 가질 직업을 정하라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나. 나도 날 잘 모르겠는데, 나중에 어른이 돼서 지금의 날 원망하고 후회하면 어쩌지. 어떤 선택을 해야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