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신비 13 - 시베리아 횡단렬차를 타지 못하고

고통의 신비 13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지 못하고

강소이(한국문학상 대상 수상 시인)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지 못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역 계단을 내려올 때


물새가 한국으로 가는 배를 항해하는 오후


어떤 이는 러시아의 여정 한 페이지를 사진기에 담고 빨간 구두 시인은 부동항의 반세기 시간을 뒤적인다


항구의 검은빛 바람과 물결 위에서 배는 몇 시간을 기다려 동해로 표류한다


돌핀의 팔딱임이라든가 햇살에 반짝이던 바다의 살결을 내려다보며


이 시간, 이 배 위에서라면 미워했던 너마저도 안아줄 수 있을 것 같은


긴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는 것도 모른 채 바닷바람을 맞으며 뱃전에 오래오래 서서

멀어져사는 블라디보스토크항을

바라본다


보리밥이라도 꾹꾹 눌러 담은 고봉밥 한 그릇 위해 국경을 넘었던 이들 푸른 팔뚝을 생각하면서

나는 무엇을 위해 국경을 넘었던가

나약한 펜대로 황무지를 개간하지도 못하고 다만


돌아오지 못하는 그들의 문 두드리는 소리를


시한 편으로 쓰는 게 전부일까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지 못하고

뱃전에 서서

동해 바다를 보며 나의 펜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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