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오릉의 반달
강소이(23년도 한국문학상 대상 수상 시인)
마음 맞는 친우들 네 명과 함께 서오릉에 다녀왔다.
한 친구가 서오릉 맛집으로 저녁식사를 초대하여
나선 길이다. 세 명이 일찌감치 서오릉으로 먼저 가서 산책을 하며 조선 왕조의 역사를 잠시 거닐었다. 10월 말이니 차가울 것 같은 날씨와 달리, 산책하기에 좋았다.
날이 흐려있었지만, 서오릉 입구에 들어서자 25년 가을은 몇백 년 전 가을로 우리를 데려다 놓았다. 오토바이 소리도 자동차 소리도 없는 곳. 비단옷을 입고 궁에서 살던 왕과 왕비와 세자와 대군의 묘가 모인 곳.
소나무와 떡갈나무와 이름도 모르는 나무들이 즐비한 곳. 누워있는 비딘옷 그들의 침묵. 하늘 높이 치솟아 자란 나무들의 침묵, 흐르지만 말없는 하늘의 침묵, 그 속에 홍살문.
몇백 년 전, 권력과 자리를 놓고 당쟁과 암투 속에 고단했을 그들은 2025년 오늘, 시인들과 그의 친구들이 그들을 이야기하며 이곳을 사유할 것을 짐작이나 했을까?
우리들은 그들이 맛보지 못했을 커피를 보온병에서 종이컵에 나눠마시며, 그들이 먹어보지 못했을 쌀과자를 먹고..
그들이 상상도 못 하고 작동도 할 줄 모르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오늘*을 행복해하며 깔깔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부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있어서 행복하고 걸을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일었다.
저녁 식사 후 차를 마신 뒤 무심코 서오릉 길가의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낮에 흐린 하늘이었는데도 반달이 하늘에 걸려있다.
엊저녁에 아라뱃길에서 찍었다며 K시인이 보내온
사진 속에 반달이 오늘 서오릉에도 떠있다.
저 달의 반 쪽은 어디로 숨었을까
조선 하늘에도 떴을 저 달이
묵묵히 하늘을 지키다가
오늘 2025년 하늘에 떠서
서오릉의 가을밤을 걷고 있는 시인들의 가슴을 노크하고 있다
몇백 년이 지나, 맑은 영혼을 가진
누군가 서오릉을 찾아 하늘 올려보며
오늘처럼 반달이 속삭이는 이야기를 듣고
시 한 줄 지을지 모르지
숙종과 인현왕후의 이야기라든가
인현왕후를 시기한 장희빈의 이야기도
그들 참 고달프고 옥죄었을 터인데,
죽어서도 한 산자락에 묻혀 아직도 암투하며
가슴 조이고 있을지...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라는 전도서 말씀이 생각나는 날이다.
비단옷과 옥좌 보다 더 귀한 것은
오늘 서오릉 나뭇가지에 달린 나뭇잎에 스치는 한줄기 가을바람과 반달의 하늘 미소 일지도..
반달의 나머지 1/2을 채워줄 따뜻한 마음 한 조각일지도...
K시인 집에 커피가 떨어졌다고 해서, 나는 우리 집 커피를 덜어다 주었다. K시인은 빈손으로 보내지 아니하고 귤 한 봉지 내게 들려 보냈다.
작은 나눔.... 아마도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 내려다보시면, '예쁘구나!' 하실지도..
혼자 미소 지어본다. 작은 기쁨이 모여 행복이라는 만월이 될지도...
서오릉 나들이 - 2025년 10월 30일 10 :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