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1989년에 교직에 첫발을 디뎠다. 지방 소도시 인근, 읍 소재지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였다. 요즈음은 일반계 고등학교라고 부른다. 아무것도 모른 채, 열정 하나만으로 좌충우돌하던 시기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당연히 수업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수업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 수업을 어떻게 준비하라고 얘기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하며 허둥지둥했다.
한 학기가 반 정도 지났을 무렵, 수업 준비에 그토록 힘을 쏟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교 관리자(교장, 교감)도, 선배 교사도 수업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꺼내지 않았다. 매일 직원회의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회의에서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학생들도 수업에 과히 열정적이지 않았다. 시내 고등학교에 진학할 성적이 안 되는 학생들이 모인 학교였기 때문이었다.
교사들에 대한 평판도 수업을 잘하는지 못하는지에 따라 정해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교사들의 수업을 모니터하는 체계 자체가 없었다. 교사가 수업을 공개하는 경우는, 일 년에 딱 한 번 도교육청의 장학 지도 때뿐이었다. 그 경우도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교과의 장학사가 왔을 때뿐이었다. 그래서 교사들의 평판은,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를 얼마나 똑 부러지게 처리하는지와 학교 관리자와 선배 교사들에게 얼마나 고분고분한지로 결정되었다.
그 학교에서 5년을 근무했다.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으므로, 수업을 잘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업무 처리를 빈틈없이 하고 학교 관리자와 선배 교사들에게 크게 밉보이지 않아 썩 괜찮은 평판을 얻었다. 한 학교 근무 연한을 다 채운지라, 시내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 지역 내 최고 명문 고등학교였다.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약간 걱정이 되었다. 기우였다. 옮겨 간 학교에서도 수업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들을 수 없었고, 교사의 평판은 업무 처리 능력과 고분고분한 태도에 좌우되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학생들의 수업 집중도였다. 최고 명문 학교 학생답게 학생들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수업에 집중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너무 순둥순둥해서 교사가 수업을 좀 못해도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학생들의 기본 심성이 너무 착했고 교사에게 함부로 태클을 거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학교에서도 5년을 근무했는데 초임 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수업에 올인할 까닭이 없었다. 빈틈없이 깔끔하게 업무 처리하고 학교 관리자와 선배 교사들과 잘 지내면 만사형통이었다. 꽤 괜찮은 교사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그 꼬리표를 달고 지역 내 다른 학교로 옮겨 갔다. 때는 바야흐로 2000년대로 접어들었다.
옮겨 간 학교에서 3년 정도 근무하고 난생처음 중학교로 옮겨 2년을 근무했다. 중학교가 적성에 맞지 않아 다시 지역 내 고등학교로 옮겨 두 학교에서 근무 연한을 꽉 채워 근무하니, 어느덧 2010년대가 되어 있었다. 그동안 학교의 모습은 시나브로 변했다. 학교 시설이 현대화하고 학생들의 복장 규정 등이 완화되었으며 교직원 회의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바뀌지 않은 것이 있었다. 교사를 평가할 때 수업은 여전히 중요한 잣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업무 처리 능력과 명문 대학 진학 실적과 다른 교사들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 여부 등으로 교사의 평판이 결정되었다. 당연히, 교사들의 화제에서 수업은 뒷전이었다. 수업을 화제로 이야기를 나눌 만한 여건이 전혀 조성되어 있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수업이 교사들의 중심 화제에서 벗어나 있는 현실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했던 것 같다. 대략 2014년으로 기억한다. 종종 "우리는 언제 수업으로 평가를 받을까?"라는 말을 동료 교사들에게 한 기억이 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뜨악한 표정을 지었고 극소수만이 "그러게요"라는 말로 화답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의 수업을 되돌아보며 바람직한 수업에 대해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교사들이 다양한 수업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중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질문과 대답에 바탕한 배움 중심 수업인 '하브루타 수업'에 대해 공부한 다음 2017년부터 퇴직한 해인 2023년까지 하브루타 수업을 했다. 수업 방식에 대해 3년을 공부한 다음 비로소 실제 수업에 적용한 셈이다.
그만큼 새로운 수업 방식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섣불리 시도했다가 죽도 밥도 아닌 상황을 맞닥뜨리게 될까 걱정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철저히 준비하고 조금씩 적용해 본 다음,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수업을 한 것이다.
새로운 방식의 수업은 대체적으로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모두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좋아했다. 교사의 설명을 수동적으로 듣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이 질문을 만들고 상대방의 질문에 답을 하는 방식의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느슨한 수업이기 때문이라 짐작한다. 또 2023년에 학생들이 나에게 준 상장을 통해서도 그렇게 평가할 수 있을 듯하다.
새로운 방식으로 수업하면서 내 마음속에 커다란 변화가 하나 찾아왔다. 내 수업을 동료 교사들에게 보여주고 수업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모임도 제안해 보고 언제든지 내 수업을 봐도 좋다는 메시지를 학교의 모든 교사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수업 이야기 모임은 한 학기 정도 지속했고 대여섯 명의 교사가 내 수업을 보러 오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이런 현상이 더 이상 지속하지는 못했다. 나의 부족함이 가장 큰 까닭이리라고 생각한다. 참 많이 아쉽다.
이 글은 30년 넘게 교사로 살면서 수업을 최우선에 두지 못한, 퇴직 몇 년 전에 새로운 시도를 했으나 궁극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어느 교사의 반성문이다.
교사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기자는 기사로, 판사는 판결로, 의사는 진료로 살아야 한다면 교사는 마땅히 수업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지 못한 나의 이 반성문을 읽고, 현직에 있는 교사 중 단 한 사람만이라도 '한번 그렇게 살아볼까?'라는 마음이 든다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