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보낸 한평생

학교에선 종종 주객이 전도된다

by 꿈강

담임을 맡으면 맨 처음으로 학생들 생활기록부를 정독하곤 했다. 2021년, 근무 학교를 옮기며 교직 생활 마지막으로 일반계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았다. 지방 소도시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이다. 퇴직을 3년 앞둔 터라 담임을 맡고 싶지는 않았으나 학교 형편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버릇대로, 학생들 생활기록부를 출력하여 꼼꼼하게 읽어 보았다.


눈에 딱 띄는 기록이 있었다. 거의 대부분 학생들의 학교생활기록부 창의적 체험활동란에 '독서 프로젝트' 관련하여 꽤 괜찮은 내용이 쓰여 있었다. 떠난 지 2년 된 학교로 다시 돌아온 터였는데, 예전에는 이런 활동이 없었더랬다.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거의 모든 학생들에게 '독서'와 관련한 활동을 하게 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학교생활기록부에 충실하게 기록하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지만, 학생들에게는 여러모로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 반 학생들과 상담을 하다가 '독서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정말로 맥이 탁, 빠졌다. 학생들이 제대로 된 활동을 한 것이 아니었다. '독서 프로젝트'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시간이 꽤 많이 필요하다. 모둠을 구성하고, 읽을 책을 선정하고, 책을 읽고, 함께 모여 토론하고, 책 내용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도출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의 활동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적어도 10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지난해 '독서 프로젝트' 계획을 찾아보니, 역시 그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계획한 만큼의 시간을 확보해 주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시간이 부족해서 함께 모여 토론하고, 문제점을 도출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모둠원(대개 4~5명)끼리 역할을 분담하여 '독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고 했다. 그런데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은, 학생들이 애초의 계획대로 '독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는 가정하에 꽤 그럴싸하게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실에 바탕한 기록이 아닌데, 대학에서는 이 기록을 학생부종합전형의 중요한 자료로 삼을 수밖에 없다. 대학이 사실 여부를 검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서울 상위권 대학의 입학사정관과 통화할 때, 이런 사실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입학사정관이 말하기를, 대학으로서는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된 것은 일단 믿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매우 신빙성이 의심되는 기록에 한해서 면접을 통해 확인한다고 했다. 학생부종합전형의 맹점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국어 교사였던지라 독서 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제대로 된 '독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어 그해(2021년) 2학년 '독서 프로젝트' 업무를 자청했다. 4월이 가기 전에 모둠 구성과 읽을 책 선정 및 구입이 끝나야만 '독서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책은 학교 예산으로 구입하여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게 되어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5월 초가 되어도 예산이 배정되지 않았다.


학년 부장 교사와 상의하니, 늦어도 6월 중으로는 예산이 배정되지 않겠냐고 했다. 그래서야 어떻게 '독서 프로젝트'를 제대로 진행할 수 있겠냐고 했더니,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한다. 하긴, 예산 배정 문제를 학년 부장이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 예산은 9월 말에야 배정되었다.


책을 구입해서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는 데 적어도 1~2주는 걸릴 테고, 학생들이 각자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는 데 적어도 4주는 걸릴 테고, 보고서 작성하는 데 적어도 1주는 걸릴 터였다. 학생들이 '독서 프로젝트'에만 매달려도 제대로 된 '독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란 언감생심이었다. 게다가 10월엔 중간고사, 12월엔 기말고사가 치러진다.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엎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년 부장 교사에게 이야기했더니, 예산이 배정되었기 때문에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예산을 반납하면 되지 않냐고 했더니,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다음 연도 예산 배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어서 안 된다고 했다.


그대로 진행하면 지난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학생들은 얼렁뚱땅 활동을 하고 휘뚜루마뚜루 보고서를 작성할 것이다. 교사들은 그 부실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그럴싸한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을 만들어 내느라고 낑낑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독서 프로젝트'를 진행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학년 부장 교사에게 다시, '독서 프로젝트'를 접자고 말했다. 접어야 한다고 말했다. 학년 부장 교사는 안 된다고 했다. 계획을 수립하여 학교장 결재가 났고 예산이 배정되었으니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럼 교장에게 찾아가서 상황을 설명하겠다고 했더니, 학년 부장 교사는 그것조차 말렸다. 정 그러면 학년 부장 본인이 '독서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할 테니, 제발 그냥 가만히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까지 나오니, 어쩔 수가 없었다. 학년 부장 교사에게 알아서 하라고 하고,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끝까지 '독서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못하게 했어야 옳았다. 학년 부장 교사의 입장과 학년 부장 교사와의 개인적 관계 때문에 마음이 약해진 것이 못내 후회된다.


결국, 학생들의 부실한 활동을 바탕으로 교사들이 학교생활기록부의 꽤 괜찮은 기록을 창조하는 데에 나도 숟가락을 얹고 말았다. 사실에 바탕하지 않은 학교생활기록부를 만드는 데 일조를 했다. 법을 어긴 건 아니겠지만 어떤 시스템의 신뢰성을 흔드는 데 협력한 공범이 되고 말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 당시에도 아주 께름직했다. '독서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고 신청한 우리 반 학생들에게 이 모든 상황을 자세히 설명한 뒤, 우리 반 학생들은 '독서 프로젝트'에서 빠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다른 반 학생들과 모둠을 이룬 학생들을 빼고는 대부분 '독서 프로젝트'에서 빠졌다.


2021년도 '독서 프로젝트'는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진행되었다. '독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보고서를 제출한 학생들의 학교생활기록부에는, 교사들이 공들여 쓴 '독서 프로젝트' 관련 기록이 멋들어지게 자리 잡았다. 2021년에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때 그 학생들은 그 학교생활기록부로 학생부종합전형에 응시했을 것이다. 어떤 학생들은 합격했을 것이고, 어떤 학생들은 떨어졌을 것이다. 물론 '독서 프로젝트'의 기록만으로 합불 여부가 판가름 나지는 않았을 테지만 부실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독서 프로젝트'를 저지하지 못한 찝찝함이 여전히 내 몸 여기저기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 왜 그 학년 부장 교사는 부실할 수밖에 없는 그해의 '독서 프로젝트'를 밀어붙였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학교생활기록부 기록과 관련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독서 프로젝트' 활동은 단순히 책 한 권 읽고 독후감 쓰는 활동이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교사가 그 활동을 진행하더라고, 그 짧은 시간에 제대로 된 활동을 전개할 수는 없다.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그렇게 무리하게 활동을 진행할 까닭이 없을 터이다.


이처럼 내가 근무한 학교에서는, 종종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어떤 교육 활동을 충실히, 제대로 하고 난 다음 그 과정과 결과를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학생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바람직한 교육 활동을 제대로 전개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것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것은 부수적인 일일 터이다. 그런데 학교생활기록부에 그럴싸하게 기재할 수만 있으면, 어떻게든 그 활동을 꾸역꾸역 전개하고 잘 포장해서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것이다.


학생들과 상담을 할 때 자신의 학교생활부 기록을 읽어 보고 흠칫 놀라는 학생들이 가끔 있었다. 자신이 그렇게 심혈을 기울이지 않은 활동이, 학교생활기록부에는 그야말로 멋들어지게 포장되어 있는 것을 읽었을 때의 반응이다. 아주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그렇게 과대포장된 기록을 바꿀 수 있냐고 묻는 경우도 있었다. 학년이 바뀌기 전이라면 가능하지만 한 학년 진급한 다음에 그 사실을 발견했다면 바꿀 수 없다. 학년이 바뀐 후 전년도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사항을 변경하는 일은 엄격히 금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된 사항은 대입 수시 학생부종합 전형에서 주된 전형 요소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교육 활동을 전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실에 근거한 학교생활기록부를 작성해야만 한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기 위해, 제대로 교육 활동을 전개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무리하게 활동을 진행해서는 결코 안 된다. 교육 활동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교사들이 심사숙고하여 제대로 된 활동을 전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과감하게 그 활동을 폐기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입 전형의 중요한 한 축인 학생부종합 전형의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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