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학교운영위원회, 그 시작은 창대했으나 ···
학교운영위원회가 출범할 당시(1998년)에는 기대가 상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교장의 권위는 대단했다. 교장이 마음먹으면 못할 일이 없고 교장이 거부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황이었다. 학교운영위원회는 교장의 막강한 권한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여겨졌다. 한국교총과 전교조에서는 자기 쪽 교사를 운영위원회 교사 위원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꽤 공을 들였다. 그 결과 학교 교사들의 투표로 선출되는 운영위원회 교사 위원이 되기 위한 경쟁률이 제법 높았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학교운영위원회는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학교운영위원회의 구성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학교운영회 출범 초기의 자료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니, 내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학교의 사례를 통해 이야기해 보겠다. 각 학교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내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학교는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이다. 지역 내의 4개 공립 일반계 고등학교에 모두 근무했는데, 학교운영위원회의 구성은 대동소이했다. 학부모 위원 3~6명, 지역 위원 2명, 교원 위원 4명.
학부모 위원을 6명까지 둘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규정일 뿐, 6명의 학부모 위원을 꽉 채워 위촉한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부탁하다시피 해서 겨우 3명의 학부모 위원을 위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개의 경우 각 학년 대표를 맡는 사람이 학부모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지역 위원의 경우도 위촉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교장 또는 교감의 인맥을 활용하여 겨우겨우 위촉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교사 위원 중 한 자리는 교장의 몫이다. 학교운영위원회 규정에 따라 교장은 당연직 교원 위원이 된다. 나머지 3명 위원도 거의 정해진 것과 진배없다. 학교운영위원회 출범 초기와 달리, 교원 위원으로 활동하려고 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학교장의 의중에 따라 교원 위원이 정해진다. 한 자리는 교무 부장을 맡는 교사에게 돌아간다. 만일 교무 부장이 운영위원이 아니라면, 그 교무 부장은 틀림없이 교장에게 크게 밉보였으리라. 나머지 두 자리도 대개 부장을 맡고 있는 교사들에게 주어지게 되는데 간혹 한 자리를 나이 지긋한 교사에게 맡기기도 한다. 그 교사가 교장과 관계가 원만해야 함은 필수적 조건이다.
학교운영위원회의 구성이 이러하니 교장의 의중에 반하는 이야기를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지역 위원은 교장의 인맥으로 위촉하고 교원 위원은 교장이 임용장을 준 부장 교사들이 맡는다. 학부모 위원이 그나마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이 또한 쉽지 않다. 각 학년 대표들이 학부모 위원으로 활동하는데, 학년 대표는 대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부모이다. 이런 학생들의 부모들은 학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혹시라도 자신의 자녀에게 불이익이 돌아갈까 염려하는 마음 때문이리라. 그러니 학교운영위원회 구성원 중 그 누구도 교장의 의중에 반하는 이야기를 하기는 매우 어렵다.
학교운영위원회의 안건 처리 과정도 학교운영위원회를 유명무실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학교운영위원회에 상정해야 할 대표적 활동인 수학여행이 학교운영위원회 안건으로 상정되는 과정을 복기해 보자. 맨 먼저 학생들에게 희망 조사를 하여 수학여행지를 선정한다. 그런 다음 수학여행 담당 교사가 현지답사를 하고 돌아와서 세부적인 수학여행 계획을 수립하여 학교장의 결재를 얻는다. 학교장의 최종 결재가 난 수학여행 계획을 학교운영위원회 안건으로 상정하게 된다.
자, 한번 생각해 보자. 학교장이 최종 결재한 계획을, 학교장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참석한 회의 석상에서 문제점을 지적하며 반대할 수 있을까. 계획을 대폭 수정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설령 문제점을 발견했다고 해도 그러기 쉽지 않을 터이다. 대통령이 최종 결재한 계획을, 대통령이 참석한 회의 석상에서 반대하는 일과 무엇이 다르랴. 학교운영위원회 위원들 대부분은 학교장과 매우 친한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상황이 이러하니 학교운영위원회에 상정된 안건 중, 통과되지 않은 안건을 본 기억이 없다. 원안 그대로 통과되거나 극히 소소한 부분을 수정하여 통과되었다.
그래서 교사들은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석하여 자신이 상정한 안건에 대해 설명하는 일을 매우 귀찮아한다. 어차피 거의 상정한 안건 그대로 통과될 텐데 요식 행위로 참석해야 하니 말이다. 또 운영위원회 회의가 자신의 수업 시간에 열리면 학생들을 자습하게 하고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 어찌 된 일인지 내가 근무했던 학교에서는 수업과 운영위원회 회의가 겹치는 경우 수업 시간을 조정해 주지 않았다. 짐작건대, 형식적으로 대충 설명하면 으레 통과되니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도 짧으면 10분, 길면 20~30분의 수업 결손은 생기기 마련이다. 학교가 수업을 그리 중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하여 늘 씁쓸한 생각이 들곤 했다.
학교운영위원회를 누가, 왜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썩 괜찮은, 선한 의도가 담겨 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출범 초기, 학교 현장에서의 상당한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요즈음 학교운영위원회가 제 기능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특히 교사들에게 물어보면 더욱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만일 마땅한 방안이 없다면 학교운영위원회를 없애는 방안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