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보낸 한평생

교직 생활의 결정적 세 장면

by 꿈강

교사들에게 교직 생활을 하면서 어떤 경우에 뿌듯함을 느꼈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지 자못 궁금하다. 각자의 경험과 생각에 따라 다양한 대답이 나올 테지만 그 대답 중에, '학생들이 자신의 수업을 인정해 주었을 때'라는 대답은 틀림없이 들어있으리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도 학생들이 내 수업을 좋아하고 인정해 주었을 때 말로는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이 북받쳐 오르곤 했다. 교사의 존재 가치는 수업에 있으므로 그런 감정이 솟아나는 건 어쩌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2012년에 새 학교로 옮기면서 고등학교 3학년 수업을 맡게 되었다. 국어 교과 중 '화법과 작문' 과목을 3명의 교사가 나누어 가르친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의 고3 수업은 수능 대비 문제집 풀이가 대세였다.


내가 수능 국어 영역 문제 풀이를 가르치는 방식은, 그 당시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의 여느 교사들과는 좀 달랐다. 일단 교사의 설명을 배제했다. 학생들이 먼저 문제를 푼 다음, 짝끼리 자신이 선택한 정답의 근거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했다. 그러고 나서 한 학생을 지명하여 짝과 함께 이야기 나눈 정답의 근거를 학급 전체 학생에게 발표하게 하고, 그 이야기에 생각이 다른 학생이 있으면 발표한 학생에게 질문하게 했다. 학생들끼리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내가 보충 설명을 해 주었다. 지문에 대한 설명은 최소화했다.


어느 날(4월 초쯤으로 기억) 한 학생이 나에게 오더니, 다른 교사의 수업을 듣는 친구의 교재를 보니 선생님의 설명을 빽빽하게 받아 적었던데 자기는 받아 적을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공부해도 괜찮냐고 물었다. 수능 국어 영역은 암기력 테스트가 아니고 주어진 지문에 바탕한 문제 해결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므로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면 내신은 어떡하느냐고 물었다. 내신 문제도 최대한 수능처럼 출제하자고 다른 교사들과 합의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럼 지금의 공부 방법대로 최선을 다해 보겠다며 돌아갔다.


그 학생은 그해 수능 국어 영역에서 100점 만점을 받았다. 당연히 1등급을 받았다. 3월 전국연합평가에서 3등급을 받은 학생이었다. 3월 평가에서 1등급을 받은 학생도 수능에서는 2, 3등급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부 잘하는 N수생들이 대거 수능 시험을 치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3월에 3등급을 받은 학생이 수능에서 1등급을 받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수능 성적표가 나온 날 그 학생이 교무실로 나를 찾아와, 자신이 100점 1등급을 받은 게 다 내 덕분이라고 인사를 했다. 어찌 '다 내 덕분이'겠냐마는 학생이 내 수업을 인정해 준 것이므로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온몸이 짜릿짜릿할 정도로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2021년에 그런 경험을 또 한 번 했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와 보니 서울대 입학사정관실에서 전화가 왔었다고 했다. 남겨진 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서울대에서 발행하는 웹진에 글을 한 편 써 달라고 했다. 어떻게 나한테까지 연락을 했냐고 했더니, 한 학생 이름을 댔다. 2018년, 내가 1학년 담임을 할 때 우리 반이었던 학생이었다. 2018년은 내가 본격적으로 하브루타 수업을 시작한 해인데, 그 학생은 그 수업의 각종 활동에서 맹활약했었다. 입학사정관이 그 수업에 관한 이야기 한 꼭지를 부탁해서 글을 써서 보냈다.


얼마 후 웹진이 발행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웹진에 들어가 보니, 내 글 말미에 그 학생의 글이 이어져 있었다. 그 학생의 글을 읽고, 학생이 내 수업을 인정해 주었다는 사실에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약간 낯간지럽기는 하지만 학생의 글을 그대로 인용해 보겠다.


이전에 공교육을 9년 동안 받았지만, 선생님처럼 수업을 진행하시는 분은 처음 뵈었습니다. 선생님은 '하브루타'식 국어 교육을 지향하시고 실제로 이를 수업시간에 매우 효율적으로 녹여내어 강의하셨습니다. 수용적 공부만 하던 제게 이런 수업방식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조별로 질문을 만들고, 토의하고 스스로 답하는 과정에서 사고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국어 시간에 얻은 질문을 하는 힘은 지금까지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학생이 단순히 어떤 현상이나 지식을 수동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능동적으로 질문을 통해 의문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셨고 이는 제가 사회과학도로서 사회현상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하브루타' 수업에 대해 공부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제 수업에 적용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동시에 뿌듯함이 물 밀듯이 밀려왔다. 수업 방법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그 많은 시간들이 보상을 받는 듯했다.


그런 경험은 2023년에 또 한 번 나를 찾아왔다. 2학년 문학 과목을 가르쳤는데,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하브루타' 방식을 적용하여 수업을 진행했다. 교사의 설명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학생들이 텍스트를 읽고 만든 질문으로부터 시작하는 수업이다. 소설이든 시이든 수필이든 희곡이든, 장르를 불문하고 말이다. 수업을 하는 동안 학생들이 활발하게 참여하는 듯하여 나 스스로는 썩 괜찮은 수업이라고 생각했는데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2023년 1학기를 마치고 명예퇴직을 한다고 하니 학생들이, 나를 쏙 빼닮은 캐리커처가 그려진 커다란 종이 한 장을 나에게 전해 주었다. 내 캐리커처 주위로 학생들이 쓴 글이 빼곡했다. 그 글들을 읽다가, 다음 글을 보고 '아, 내 수업 방식이 통했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로 마음이 벅차올랐다.


처음 경험하는 하브루타 수업이 강의식 수업에 적응되었던 저에겐 약간 힘들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글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게 익숙해졌고 점점 질문과 대답을 만드는 게 즐거워졌어요. 친구들과 생각을 나누면서 새로운 관점으로 문학을 바라보게 되었어요. 제일 신기했던 게 하브루타 수업 후 시집을 그렇게 싫어했던 제가 친구가 읽고 있던 시집에 관심이 생긴 것이었어요. 저에게 읽고 생각하는 즐거움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와의 문학 수업을 통해 '시집을 그렇게 싫어했던 학생이 '시집에 관심이 생'겼다니! 글이라는 게 어느 정도 과장하고 미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문학 수업의 목표를 얼마쯤은 달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계 고등학교의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교직 생활 중 인상 깊었던 세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모두 학생들이 내 수업을 인정해 주어서 뿌듯했던 순간들이다. 현직에 있는 후배 교사들과 이야기해 보면, 갈수록 교직 생활이 어려워진다고 한다. 왜 아니 그러하겠는가. 각종 매체에서 학교 관련 소식을 접하며 '아, 정말 교직 생활이 힘들겠구나. 퇴직하기를 정말 잘했다.'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렇다면 그토록 힘든 교직 생활을 견딜 수 있는 방어 기제를 마련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 생각에 가장 좋은 방어 기제는 '수업에서의 기쁨'이다. 교사가 자신의 수업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교직 생활의 힘듦과 고단함을 상당 부분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후배 교사들에게 이렇게 고하고 싶다. '교사들이여, 수업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라.'라고. 교사가 자신의 수업에서 기쁨을 느끼는 횟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교직 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은 높아지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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