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생활기록부 쓰기에 대한 한 생각
고등학교 교사 중 생활기록부를 쓰는 데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성싶다. 오랫동안 중학교에서 근무하다 오랜만에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게 된 어떤 교사는, 생활기록부를 쓰는 데 겨울방학을 오롯이 바쳤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쓰기는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생활기록부 쓰기의 어려움 중 상당 부분은 교사들의 생활기록부 쓰기 버릇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고사가 학기 말 또는 학년 말에 생활기록부 작성에 매달린다. 학기 말이나 학년 말은 생활기록부 작성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차고 넘친다. 지나가는 개미의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생활기록부를 쓰려면 그야말로 고역일 것이다.
그렇다고 대충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생활기록부의 기록이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니 말이다. 생활기록부 쓰기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려면 생활기록부를 미리미리 써야 한다. 현직에 있을 때 내가 쓰던 방법이다. 동료 교사나 후배 교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좋은 방법이라고 맞장구를 치기는 했으나 실천은 하지 않았다. 버릇이란 그처럼 무서운 것이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 생활기록부의 가장 중요한 항목이라 할 수 있는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과세특)을 어떤 과정을 거쳐 생활기록부를 썼는지 간단히 말해 보겠다. 이 과정을 잘 따라 하면 생활기록부 작성의 부담감을 다소나마 줄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대개 2월 중순에서 말쯤, 가르칠 과목이 결정된다. 이때부터 새 학기 시작까지 약 일주일 가량의 시간이 있다. 새 학기를 준비하느라 이렇게 저렇게 시달린 교사들이 온전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물론 쉬어야 한다. 다만 이 기간을 활용해서 과목 진도 계획과 평가 계획을 세워 놓고 쉬어야 한다.
그런데 상당수의 교사들이 그냥 쉰다. 진도 계획과 평가 계획은 새 학기 개학 후 3월 말 또는 4월 중순까지 제출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생활기록부 과세특은 충실하게 기록하기 어렵게 된다. 3월 한 달 동안 수업한 내용을 어떻게 과세특에 반영할지 촘촘하게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드시 새 학기 시작하기 전에 진도 계획과 평가 계획을 세워 놓아야 한다. 진도 계획과 평가 계획을 수립한 다음, 과세특에 기록할 만한 활동들을 뽑아 보아야 한다. 한 학기를 기준으로 할 때, 2~3개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많으면 자료를 정리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수행 평가에서 2개, 수업 중에서 1개 활동을 과세특 기록과 연계하였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의 활동이 끝나면 곧바로 그 활동에 대한 과세특을 작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교사들 대다수가 과세특에 기록할 모든 활동이 끝난 다음에야 과세특을 쓰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다 보니 과세특 기록이 학기 말 또는 학년 말에 몰리게 되고 교사들은 과세특 기록에 엄청난 부담을 갖게 된다.
활동이 끝날 때마다 그 활동에 대한 과세특을 기록해야 한다. 그런 다음 기말고사 후 방학할 때까지의 약 1~2주 동안 과세특 기록을 완성해야 한다. 방학 후에 해야 할 것은 자신이 완성한 과세특을 꼼꼼하게 다시 읽으며 오탈자를 점검하고 문장을 좀 더 매끄럽게 다듬는 정도의 일이다. 그런데 내 주변의 많은 교사들은 방학 후에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과세특을 쓰기 시작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좀 게으른 편인 사람들이냐고? 아니다. 매사에 열심히 임하는 성실한 교사들이다. 생활기록부 쓰기만 미적댈 뿐이다. 일부러 미적대는 건 아니다. 그냥 버릇이고 관행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거의 대다수의 교사들이 방학이 되어서야 과세특을 쓰려고 마음먹고 있는 모습이 보이니, 굳이 미리미리 쓸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 짐작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미리미리 쓰는 것과 시간에 쫓기고 몰리며 한꺼번에 쓰는 것 중, 어느 쪽이 조금이라도 더 충실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겠는지를.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상정하지 않는다면, 미리미리 쓰는 쪽이 좀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리라는 데 동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생활기록부의 기록, 특히 과세특의 기록은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매우 중요하다. 대학 입시 학생부종합전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세특은 미리미리, 틈틈이 써야 한다. 과세특에 기록할 만한 수업 활동이 끝날 때마다 쓰는 버릇을 들이는 게 최선의 방책이 아닐까 싶다.
어찌 보면 참 단순하고 쉬운 일이다. 그런데 내가 현직에 있을 때를 생각해 보면, 과세특을 미리미리, 틈틈이 쓰는 교사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어떤 교사는 심지어 1학기에 배운 과목의 과세특을 2학기 겨울방학 때가 되어서야 쓰기 시작하기도 했다.
이래서야 충실한 과세특 기록을 기대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한 학기가 지난 다음에야 과세특을 쓰기 시작하는 경우는 드문 사례이지만, 과세특과 관련한 수업 활동이 모두 끝난 다음에 한꺼번에 과세특을 기록하는 경우는 최소한, 내 주변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지금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새 학기 준비가 한창일 것이다. 촘촘하고 세밀하게 새 학기를 준비하기를 바란다. 어떻게 하면 생활기록부를 내실 있게 기록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꼭 수반되기를 빈다. 그렇지 않으면 학기말에 허둥지둥 생활기록부를 쓰는 장면이 또다시 반복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