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보낸 한평생
우리 반 아이들이 '독서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은 까닭
2021년에 근무 학교를 옮기면서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았다. 우리 나이로 60세, 만으로 59세 되던 해다. 그 나이에도 담임을 했다고, 대단하다며 놀라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년 퇴임을 3년 앞둔 때라,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는 웬만하면 담임을 맡기지 않는다. 더구나 내가 옮겨간 학교는 대학 입시에 사활을 거는 일반계 고등학교였다. 그런데도 만 59세의 나이에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았던 것이다.
오해는 금물이다. 뭐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 그 나이에 담임을 맡은 게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 학교는 담임 교사에게 일반적인 업무를 주지 않는 학교였다. 학생 진학 지도와 생활 지도에 전념하라는 의미였다. 매우 바람직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담임을 맡지 않은 교사의 업무 부담이 꽤 크다는 사실이었다.
교사로서의 막중한 사명감이나 피 끓은 열정이 없었던 터라, 만 59세의 나이에 담임을 맡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2021년, 근무 학교를 옮겨가면서 내가 맡을 만한 업무가 어떤 게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내가 해 볼 만한 업무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해답을 찾을 수 없어서, '담임을 맡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업무 희망서를 제출하기 위해 옮겨갈 학교를 방문했다. 그 학교 교감과 마주 앉았다. 나보다 4~5년 정도 후배인 그 학교 교감은 나에게 어떤 업무를 맡길지 꽤나 고심한 듯했다. 매우 조심스럽게,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 업무를 제안했다. 내가 마뜩지 않은 표정으로 묵묵부답하자, 또 다른 업무를 제안했다. 그 업무 역시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워 보였다.
그래서 불쑥, "차라리 담임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교감은 좀 놀란 듯했다. 할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이미 말을 뱉은 터라, 물러날 수는 없어서 할 수 있다고, 하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만 59세에 일반계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았다.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사명감이 투철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어쩌다 보니 맡게 된 담임이었다.
담임 첫날부터, 그야말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담임이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았다. 그렇지만 3월 한 달이 지나자 곧 익숙해졌다. 반 학생들과도 별 탈 없이 잘 지냈다. 나이 많음이 학생들과 소통하는 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학생들 처지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는 마음을 가지니, 대부분의 일이 무난하게 해결되었다.
문제는 다른 담임 교사들과의 관계였다. 나는 59세, 학년 부장 교사는 38세. 나머지 8명 담임 교사는 죄다 학년 부장 교사보다 어렸다. 학년 부장 교사도 다른 다임 교사들도 나를 어려워하는 게 역력했다. 그래서 학년 업무 관련 회의를 할 때 가급적 말을 아꼈다. 내가 의견을 내면 학년 부장 교사나 다른 담임 교사들이 자신의 생각을 꺼내기 어려울까 봐 그랬다.
그러다 보니 또 하나의 문제가 보였다. 학년 업무가 거의 학년 부장 교사의 뜻대로 추진되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학교 관리자(교장, 교감)의 뜻대로 추진되었다. 학년 업무 추진 회의에서 나이 어린 담임 교사들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학년 부장 교사와 업무 담당 교사가 이야기하는 대로 업무가 추진되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절대로 안 될 일은 아니었지만, 업무 추진 회의에서 담임 교사들이 활발하게 의견을 냈으면 좀 더 바람직하게 업무가 추진되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적이 꽤 있었다.
내 의견을 이야기하고 싶은 적도 제법 있었으나, 앞서 말했듯이, 나이 어린 다른 담임 교사들의 생각을 억누를까 저어하여 그때마다 꾹꾹 참았다. 그러나 다른 담임 교사들의 침묵은 시종여일하였다. 그러다 입을 열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졌다. '독서 프로젝트'라는 교육 활동과 관련한 것이었다. 마침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였다.
'독서 프로젝트'는 그 학교의 야심 찬 교육 활동이라 할 만했다. 모든 학년이 참여하는 교육 활동으로, 활동 과정과 결과를 학교생활기록부에 꼼꼼하게 적음으로써 학생부종합 전형에 대비하게 하는, 그 학교의 시그니처 교육 활동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독서 프로젝트'는 계획상 거의 1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교육 활동이었다. 4월에 모둠별로 읽을 책을 선정하고, 5월에서 10월 사이에 책을 함께 읽고 토론을 한 다음, 11월에 활동 보고서를 모둠별로 작성하여 제출하는 거대한 활동이었다. 그래서 '독서 프로젝트'라는 다소 거창한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그런데 그해, 어쩐 일인지 9월이 되어서야 읽을 책을 선정하였다. 학년 업무 추진 회의에서 학년 부장 교사가 설명하는 걸 들어 보니, 모둠별로 읽을 책을 학교 예산으로 사서 나누어 주는데, 예산이 늦게 내려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년 부장 교사는 이후의 업무 추진 과정을 설명했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매우 중요한, 학생들의 대학 진학에 절대적으로 도움이 되는 활동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다른 담임 교사들은 역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8개월이 걸리는 교육 활동을 단 3개월 만에 속성으로 끝내고 그 과정과 결과를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하자는 말 아닌가! 학생들이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절대 그럴 수 없다. 대충대충 활동하고, 보고서는 어찌어찌 짜깁기해서 제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부실한 활동에 바탕한 엉성한 보고서를 읽고 담임 교사들은 학생들의 '독서 프로젝트' 참여 상황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해야 한다. 일단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된 사항은 대입 전형의 중요한 요소로 활용된다. 더구나 '독서'와 관련한 기록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이런 상황에서 이루어진 활동을 생활기록부에 기록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동안의 학년 업무 회의에서의 침묵을 깨고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 '독서 프로젝트'를 접자고 했다. 일순 싸한 정적이 교무실을 휘돌았다.
학년 부장 교사가 황급히 회의를 중단하고 나를 조용한 곳으로 불렀다. '독서 프로젝트'를 왜 접어야 하는지 물었다. '독서 프로젝트' 활동의 성격상, 지금 같은 단기 속성으로는 내실 있게 활동을 기대할 수 없기에 활동을 접어야 한다고 답했다. 결국 생활기록부의 관련 기록은 담임 교사가 거의 소설 수준으로 창작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점을 덧붙였다.
학년 부장 교사의 생각은 달랐다. 3개월 만으로도 얼마든지 내실 있는 활동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년은 '독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우리 학년만 진행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했다. 갑론을박을 몇 차례 더 주고받았지만, 서로의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 결국 학년 회의를 통해 활동 진행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다시 소집된 학년 회의에서 나와 학년 부장 교사가 '독서 프로젝트'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다른 담임 교사들은 역시 별다른 말이 없었다. 학년 부장 교사가, 특별한 의견이 없으면 '독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고 하자 대다수 담임 교사들이 고개를 끄덕여 동조했다.
그해 3개월짜리 '독서 프로젝트'는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우리 반만 빼고. 우리 반 학생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독서 프로젝트'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서, 참여 여부를 물었더니 참여하겠다는 학생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해, 그 학교의 생활기록부에는 '독서 프로젝트' 활동 관련 기록이 찬란하게 기재되었다. 우리 반 학생들만 빼고.
'독서 프로젝트' 활동 과정을 꼼꼼하게 모니터링하지는 않았지만, 활동 과정의 대략은 알고 있다. 내 예상대로, 아니 예상보다 더 부실하게, 엉성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생활기록부의 관련 기록은 그럴듯했다. 담임 교사들이 거의 소설에 가까운 창작 실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크나큰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내가 보기에, 그해 그 학교의 '독서 프로젝트' 활동 관련 생활기록부의 기록은 거의 거짓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해 '독서 프로젝트' 활동을 생활기록부에 기록한 담임 교사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몹시 궁금하다. 직접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미루어 짐작해 보면, 조금 과장해서 쓰기는 했지만 학생들의 대학 진학을 위한 일이고 다른 학교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뭐 어쩔 수 없지 않냐고 자기 합리화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대입 학생부종합 전형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활기록부의 기재 사항은 내신 성적과 함께 학생부종합 전형의 핵심 전형 요소가 아니던가. 그런 생활기록부의 기재 사항을 거의 소설에 가깝게 창작해서 기록했다면 학생부종합 전형의 신뢰성은 의심받아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학생부종합 전형이 여전히 대입 전형의 한 축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내 생각은 잘못된 것이리라. 그해, 그 학교의 '독서 프로젝트'의 사례는 매우 예외적인 현상이고 그렇게 부실하고 엉성한 활동을 바탕으로 생활기록부 기록을 소설에 가깝게 창작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기에 학생부종합 전형이 흔들림 없이 시행되고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좀 찜찜한 게 있기는 하다. 학교생활기록부를 사실에 바탕하여 기록했는지를 검증하는 장치가 없다는 사실이다. 해마다 학교 자체적으로 생활기록부를 점검하기도 하고 몇 년마다 도교육청 차원에서 점검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생활기록부 기재 요령을 준수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과장해서 기록했거나 거짓으로 기록했더라도 이를 걸러내는 장치가 없다는 말이다. 오롯이 기록하는 교사의 양심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 교사들은 매우 양심적이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그만일까?
2022년과 내가 퇴직한 2023년에도 그 학교의 '독서 프로젝트'는 여전히 계속 진행되었다. 그 학교의 핵심 교육 활동의 하나였다. 그 두 해 동안은 담임을 맡지 않았기에 '독서 프로젝트'가 얼마나 내실 있게 진행되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 '독서 프로젝트'는 담임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하기 때문이다. 내가 목도한 2021년의 경우와는 달리, 내실 있게 진행되었으리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2022년 연말 어떤 술자리에서 담임을 맡고 있는 후배 교사가 약간 술에 취해, "우리들은 모두 모두 위대한 소설가입니다."라고 읊조리듯 말했다. 각종 생활기록부 기재 사항을 다 마무리한 다음의 술자리에서였다. 생활기록부를 과장해서 기록했다는 자기 고백이리라. 양심의 가책까지는 아니어도 약간의 거리낌을 느꼈기에 그런 말을 했을 터이다. 그런데 걸리는 게 하나 있다. 그 후배 교사는 왜 '나'라고 하지 않고 '우리'라고 했을까?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교사들도 생활기록부를 과장해서 적는다는 의미일까? 그 후배 교사에게 물어보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마음 한구석의 꺼림직함이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