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선생님이 수업하는데 조용히 해야 한다니...
두 학교에서 각각 30명을 뽑아 상대방 학교의 수업을 듣고 주변의 문화 유적지를 탐방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핵심이었다. 그 당시 내가 근무한 학교에 재학 중인 내 딸도 그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는데, 프로그램이 끝난 뒤 딸에게 전해 들은 강남 8학군 학생들의 언행은 모두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중 가장 압권은, 강남 8학군 학생들은 학교 선생님이 수업을 하고 있는데 왜 조용히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딸내미의 전언은 이랬다.
학생들이 유적지 탐방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니 4교시가 진행 중이었단다. 점심시간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 있어 인솔 교사가 일단 교실로 들어가라고 해서 그렇게 했단다. 내가 근무한 학교 학생들은 조용히 복도를 이동한 반면 강남 8학군 학생들은 큰 소리로 떠들며 복도를 지났단다. 그 학생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내가 근무한 학교의 학생들이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몸짓을 하자, 그 강남 8학군 학생들은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는 것이다.
딸내미도 나중에야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알았다고 했다. 그 학생들과 이야기해 보니, 그 학교 학생들은 학교에서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학교 수업 시간에는 밀린 잠을 자거나, 학원 숙제를 하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는 것이었다. 그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고 묵묵히 혼자만의 수업을 하고 나간다고 했다.
그러니 그 강남 8학군 학생들이, 수업 중이니 조용히 하라는 내가 근무했던 학교 학생들의 이야기에 어리둥절했을 수도 있을 터이다. 실상을 알게 된 내가 근무한 학교에서는 다음해부터 그 교환 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았다.
딸내미의 이야기를 통해 강남 8학군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실 붕괴의 실상을 여실히 알게 되었다. 2007년 당시에 내가 근무했던 지방 소도시 고등학교에서는 그런 현상이 전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강남 8학군 고등학교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근무했던 지방 소도시 고등학교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가 교실 붕괴 현상을 체감한 것은 2016년이다. 그해 3학년 국어를 담당하였다. 3학년은 과목 명칭에 관계없이 수능 특강 문제집을 푸는 게 관행이었다. 관행을 거스를 명분도, 용기도 없어 수능 특강 문제집을 푸는 수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은 1/3이 채 되지 않았다. 상위권 학생들은 이미 공부한 내용이고, 하위권 학생들은 수능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을 것이므로 수업을 들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2017년에도 3학년을 담당했는데, 상황은 2016년과 완전히 똑같았다. 아니 좀 더 심해졌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제어할 그 어떤 방법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교사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했는데, 교사들이라고 해서 뭐 뾰족한 수가 있었겠는가. 2007년의 그 강남 8학군 고등학교의 교사들처럼 묵묵히 혼자만의 수업을 하는 수밖에.
2018년에 1학년 국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1학년 국어 수업에서는 교실 붕괴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 당시 내가 근무한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의 경우 1학년 때는 수능 위주의 수업을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 과정에 충실한 수업을 진행하니, 모든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했다.
그 후부터 2023년 8월 퇴직할 때까지 3학년 수업을 맡지 않았다. 교실 붕괴의 현장을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여, 마지막까지 즐겁고 행복하게 수업하다 퇴직했다.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학생들이 나와 함께하는 수업을 좋아했다.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의 수업을 살리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뭐냐고? 일반계 고등학교의 수업에서 수능과 관련한 요소를 없애는 것이다. 내가 3학년 학생들과 수능 특강 문제집 풀이 수업을 했을 때는 교실 붕괴 현상이 일어났지만 1, 2학년 학생들과 수능과 상관없는, 교육 과정에 충실한 수업을 했을 때는 교실 붕괴 현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그 증거라 하겠다.
대학 입시가 코앞에 닥친, 고등학교 3학년 수업에서도 수능과 관련한 요소를 없애야 할까? 일반계 고등학교 교육을 살리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수능과 관련한 요소를 없애고 교육 과정에 충실한 수업을 해야 고등학교 교육을 살릴 수 있다.
내가 근무했던 지방 소도시 고등학교의 경우, 대학 진학 시 수능이 필요한 학생의 비율은 최대로 잡아야 20% 정도이다. 그런데도 관행적으로, 으레껏 교육 과정은 도외시하고 3학년에서는 수능 특강 문제 풀이 수업을 진행한다. 나머지 80%의 학생들이 그런 수업에 흥미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 교실 붕괴 현상은 필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일반계 고등학교 수업에서 수능과 관련한 요소를 없앴다면 고등학교의 수업 풍경도 자연스럽게 바뀌리라고 생각한다. 학교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는 대개 교사 설명 위주의 일제식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수능에 초점을 맞춘 수업을 할 때에는 이런 수업 방식이 매우 효과적이다. 연봉이 100억 원을 훌쩍 넘는다는, 소위 일타 강사들이 하는 수업을 떠올리면 된다. 그러나 수능 위주의 수업에서 벗어나 교육 과정에 충실한 수업을 하는 경우, 교사 설명 위주의 일제식 수업 방식은 설 자리가 없게 될 것이다.
현직에 있을 때, 동료 교사들과 수업 방식에 관해 종종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일제식 수업 방식을 고수하는 교사들이 수업 방식을 바꾸는 것을 꺼리는 이유는 대부분 수능 때문이었다. 수능에 최적화한 수업 방식은 이제식 수업 방식이고 고등학교에서도 수능을 준비할 수 있는 수업을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2007년 강남 8학군 고등학교의 사례와 2016, 2017년 내가 근무한 학교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수능 대비 공부를 하지 않는다. 수능 공부는 학원에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수능 대비 학습 분야에서는 공교육이 사교육에게 완벽하게 패배했다.
학교에서도 이런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인정한 다음, 일반계 고등학교 수업에서 수능 관련 요소를 배제하고 교육 과정에 충실한 수업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구안해야 한다. 그런 수업을 구안하여 실행하게 되면 교실 붕괴 현상은 상당이 완화하리라 생각한다.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들이 교실에서 잠들지 않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깨어 있게 해야 한다. 수능 관련 요소를 배제한, 교육 과정에 충실한 수업 그것이 해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