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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 보낸 한평생

학교는 '척하기' 끝판왕

by 꿈강

30년 넘게 교직 생활을 하고 은퇴했다. 주로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넘게 근무했다. 교직 생활을 돌이켜보면 '왜 학교에서 일을 그렇게 했지?'라는 의문이 드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하지 않은 일을 한 '척'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교직에 있을 그 당시에 그런 일을 하노라면 '이래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곤 했지만 학교 관리자(교장, 교감)에게 이의를 제기할 배짱이 없어 찜찜했지만 하라는 대로 했다. 퇴직하고 생각해 보니, 그때 내가 어쩔 수 없다며 마지못해 했던 일들은 실로 말도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례는 하지도 않은 학생 대상 교육을, 한 '척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학교에는 참으로 많은 학생 대상 교육이 있었다. 성교육, 안전교육, 정보통신윤리교육, 학교폭력예방교육, 약물중독예방교육, 스마트폰건전사용교육, 자살예방교육 등등. 이 중 그나마 어느 정도 제대로 이루어지는 교육은 성교육과 학교폭력예방교육 정도이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의 경우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통해 일 년에 한 두 차례 한 시간 정도씩 이 두 가지 교육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그 교육이 목적한 바를 제대로 달성했는지의 여부는 무론 불분명하다. 교육을 실시하기만 했지 그 누구도 목적한 바의 달성 여부에 관심도 없고 달성 여부를 검증하려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교육들은? 대부분은 교육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다. 아니, 확보할 수가 없다. 교육부인지 교육청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거기에서 내려온 지침대로 교육 시간을 확보했다가는 수업 시수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학기 초에 제출하는 '교과 진도 계획'이라는 것에 이런 교육들을 실시하겠다고 끼워 놓고 만다. 수업 시간을 통해 이런 교육들을 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하지 않는다. 할 수가 없다. '교과 진도 계획'을 제출한 교사 자신이 언제, 어떤 교육을 하겠다고 했는지 모른 채 수업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은퇴하는 순간까지, 나는 매년 이런 교육을 하겠다고 표시한 '교과 진도 계획'을 제출했었다. 이런 교육을 포함하지 않은 채 '교과 진도 계획'을 제출하면 담당 교사가 그 '교과 진도 계획'을 반려한다. 제발 이런저런 교육을 포함해서 '교과 진도 계획'을 다시 제출해 주십사 하는 간곡한 부탁과 함께. 하릴없이 '교과 진도 계획'을 다시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수가 없다. 제출한 '교과 진도 계획'을 학교 관리자들(교장, 교감)이 꼼꼼하게 검토하지도 않는다. 담당 교사가 그것들을 수합하여 결재를 올리면 일사천리로 결재가 난다. 그것으로 그만이다. 내 주변 그 어떤 교사도 자신이 제출한 '교과 진도 계획'을 참고해 가며 수업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학교에서는 나름대로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면피하기 위해 그런 일들을 하지 않았나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그게 대체 무슨 쓸모가 있다는 말인가. 학생들은 정작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았는데, 교육을 했다고 서류상의 기록으로 남기는 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두 번째는 실제로는 강제로 이루어지는 '야간 자율 학습'을 학생들의 '희망'을 받아 운영하는 '척하기'이다. 내가 근무했던 지역의 경우 2010년대 전반까지 이런 일이 팽배했었다. 1995년의 일이다. 읍 소재지 고등학교에서 시내 소재 고등학교로 근무지를 옮겨 2학년 담임을 맡았다. 3월 개학 다음 날, 학년 부장(그 당시는 학년 주임) 교사가 '야간 자율 학습 희망서'를 나누어 주며 학생들의 희망을 조사하라고 했다. 그 희망서에는 '야간 자율 학습 희망 여부, 학생 서명, 학부모 서명' 등의 난이 있었다. 전에 근무한 학교에서는 학교 사정상 야간 자율 학습을 실시하지 않아 나로서는 '야간 자율 학습' 희망을 받는 일이 좀 생소했다.


어쨌든 학급 조회에 들어가 학생들에게 그 '희망서'를 나누어 주며 잘 생각해서 희망 여부를 결정하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학급 종례 시간에 들어가니, 그 '희망서'가 떡 하니 교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학급 아이들 모두가 희망에 동그라미를 쳤고 학생 서명과 학부모 서명이 완료된 '야간 자율 학습 희망서' 뭉치였다. 학급 임시 실장에게 어찌 된 일이냐고 물으니, 어차피 불희망은 허용되지 않으니 모두 희망에 동그라미 했고 학생 서명과 학부모 서명까지 자신들이 했다고 했다. 1학년 때도 그렇게 했다고 했다. 그렇게 해도 되나 싶었지만 처음 하는 일이라 잘 판단이 서지 않아 학생들을 일단 귀가시키고 그 '희망서' 뭉치를 들고 교무실로 향했다. 놀랍게도, 종례를 마치고 교무실로 들어오는 담임교사들의 손에 예의 그 '희망서' 뭉치들이 들려져 있었다. 담임교사들은 무덤덤한 얼굴로 그 '희망서' 뭉치를 학년 부장 교사의 책상에 올려놓았다. 어쩔 도리 없이 나도 우리 반의 '희망서' 뭉치를 부장 교사 책상 위에 올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지경이면 도대체 왜 '희망'을 받는단 말인가. 왜 그렇게 '눈 가리고 아웅'을 한단 말인가. 내가 제일 걱정했던 일은 우리 반 아이 중 누군가가 "선생님, 이럴 거면 왜 희망을 받아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무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가 그런 질문을 했더라면 나는 그 어떤 대답도, 그 어떤 설명도 하지 못했을 터이다. 1995년 그해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서 '야간 자율 학습'이라는 말이 완전히 사라진 2010년대 전반까지, 그런 행태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생은 없었다. 부모의 동의를 얻어 야간 자율 학습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학생들이 간혹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면 내가 근무했던 지방 소도시의 그 고등학교들에서는 왜 굳이 '야간 자율 학습' 희망서를 받았을까? 그 누구도 그 말도 안 되는 야간 자율 학습 희망서 받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니, 희망서를 받지 않고 '모두 야간 자율 학습에 참여해.'라고 말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텐데 말이다. 모르긴 해도 교육청에서 '야간 자율 학습은 학생들의 희망을 받아 운영하라.'라는 지침을 내린 게 아닌가 싶다. 교육청의 지침이 아니라면 학교에서 굳이 그런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 야간 자율 학습을 운영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학생들에게 '필요하면 부모의 서명을 위조해도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준 꼴이니 뒷맛이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이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이 참여해야 하는 '현장 체험 학습'을 학생들의 희망서를 받아 운영하는 사례도 '야간 자율 학습' 운영과 비슷한 경우이다. 다른 점은, '야간 자율 학습'은 2010년 전반에 없어졌지만 '현장 체험 학습'은 내가 은퇴한 2020년대 전반까지 이어졌다는 점이다. '현장 체험 학습'에 참여하지 않으면 학교에 등교하여 별다른 프로그램 없이 멍하니 앉아 있다 하교해야 한다는 점에서 '현장 체험 학습'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학생부 종합 전형'이라는 대입 전형이 생긴 뒤에는 '현장 체험 학습'에 참여한 사실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할 수 있기에, 생활기록부의 기록 한 줄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학생들은 하릴없이 '현장 체험 학습'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형편인 것이다.


교직에서 은퇴한 지금, 학교 현장에서 어떤 형태의 '하지 않은 일을 한 척하기'가 횡행하는지 정확히 알 도리는 없다. 그러나 30년 넘는 나의 교직 생활 경험상, 분명 그런 일이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고 있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다 보면 학교가 정작 해야 할 일에 온 힘을 다할 수가 없을 것이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형태의 '척하기'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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