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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딸과 함께하는 하루하루

<45> 2025. 03. 11.(화)

by 꿈강

손녀딸 어린이집 등하원을 다시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4세(우리나라 나이) 반에 다녔던 손녀딸은 이제 5세 반에 다닌다. 손녀딸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면서 4세 반 아이들을 보면, 그 아이들은 손녀딸에 비해 정말 아기다. 손녀딸이 시나브로 훌쩍 자란 것이다. 세월은 그렇게 나도 모르게 흘러가는 것이리라.


요즘 손녀딸 등하원은 작년과 비교하면 식은 죽 먹기 수준이다. 옷 투정이 거의 없어졌고 아침밥도 잘 먹고 밥 먹으면서 보는 애니메이션도 어린이집 갈 시간이 됐다고 하면 순순히 스스로 리모컨 버튼을 눌러 끄니 말이다. 또 곤히 잠들어 있는 손녀딸을 8시쯤, "순돌아, 어린이집 갈 시간이야. 이제 일어나야 해."라고 하며 깨우면 잠투정도 없이 곧잘 일어나곤 한다. 이보다 더 신통방통할 수가 없다. 게다가, 이건 작년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어린이집에 들어가면서 단 한 번도 들어가기 싫다고 떼쓴 적이 없다. 어린이집 앞에서 종종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엄마 품에 안겨서 앙앙 울고 있는 아이들을 보게 되는데, 우리 손녀딸은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니 기특하기 그지없다.


어제(3월 10일) 어린이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손녀딸과 아내는, 늘 하던 대로 역할 놀이를 했다. 둘 사이는 친구였다. 어린이집에 도착하자 손녀딸이 아내에게, "친구야, 이제 나는 어린이집에 가야 해."라고 말했다. 아내가 손녀딸에게 "친구야, 어린이집 안 가고 나랑 놀면 안 돼?"라고 했더니, 손녀딸은 "안 돼. 나 돈 벌러 가야 돼."라고 해서 우리 부부를 몹시 웃겼다. 아마도 제 엄마나 아빠가 제게 한 말을 기억했다가 써먹은 듯싶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었는데, 손녀딸은 그 말을 매우 작은 소리로, 조심스럽게 했다고 한다. 마치 '내가 이 말을 해도 되나?'라는 듯이 말이다.


이렇게만 보면 우리 손녀딸이 아주 순둥순둥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한 고집한다. 지난 토요일의 일이다. 딸네 가족은 대개 금요일에 우리 집에 와서 잔다. 금요일에 우리 집에서 재미있게 놀고 좀 늦게 잔 깐으로는 손녀딸은 토요일에 좀 일찍 일어났다. 여덟 시가 좀 안 된 시간이었다. 11시에 있는 손녀딸 네 돌맞이 사진 촬영을 위해서 딸네 가족은 10시쯤 집을 나서야 할 터였다.


아내는 아침 식사 준비로 분주했고 나는 손녀딸과 놀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손녀딸이 커튼을 치기 시작했다. 안막 기능이 있는 커튼이라 집안이 어두컴컴해졌다. 손녀딸은 어두운 곳에서 어떤 놀이를 하고 싶었나 보다. 아내가 손녀딸에게, 할머니가 요리 중이니 커튼을 열어 달라고 했다. 손녀딸이 그 말을 즉시 들어줄 리가 없다. 계속 커튼을 쳐놓고 열지 않자 사위가 손녀딸에게, 할머니가 요리하다 다칠 수도 있으니 어서 커튼을 열라고 손녀딸을 다그쳤다. 손녀딸은 마지못해 커튼을 열었다. 하고 싶던 놀이를 할 수 없게 된 손녀딸은 커튼으로 제 몸을 돌돌 말고 커튼 속으로 사라졌다.


사위가 손녀딸에게, 커튼 속에서 나와 할머니한테 사과하라고 다그치자 손녀딸이 울기 시작했다. 사달이 났다. 손녀딸은 아내나 나에게 사과하는 걸 어려워한다. 그런데 딸내미와 사위는 손녀딸이 어떤 잘못을 하면 꼭 사과하라고 한다. 아내와 나는 굳이 사과를 안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딸내미와 사위는 그렇게 하는 게 아이 교육상 좋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딱히 틀린 말이 아니니 뭐라고 말할 계제는 아니다. 문제는 우리 손녀딸이 쉽게 사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날도 손녀딸은 좀처럼 사과의 말을 하지 않았다. 딸내미가 손녀딸에게 방에 혼자 들어가서 생각한 다음 사과할 마음이 생기면 나오라고 했다. 한동안 방 안에 혼자 있던 손녀딸이 문을 열더니, "엄마, 아빠 나 싫어하지?"라고 울부짖는다. 손녀딸이 그런 말을 하는 걸 처음 들었다. '이제 겨우 다섯 살밖에 안 된 아이가, 자기를 혼낸다고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맹랑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손녀딸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하는 생각도 들어 안쓰러웠다. 딸내미와 사위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딸내미한테 들었는데, 혼날 때마다 그런 얘기를 한 지가 벌써 6개월이 되었다나 뭐라나. 잠시 후 다시 방문이 열리더니, 여전히 울음 섞인 목소리로, "엄마, 아빠 나 싫어하지? 이제 엄마, 아빠랑 안 놀아준다!"라고 하더니 다시 문을 닫는다.


사진 촬영 때문에 손녀딸을 마냥 놓아둘 수 없었다. 딸내미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손녀딸과 딸내미 둘이서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이윽고 방문이 열리고 손녀딸이 제 엄마에게 안겨 나왔다. 딸내미에게 안긴 채 아내에게 간 손녀딸은 모기만 한 목소리로 할머니에게 사과를 했다. 한바탕의 소동은 행복하게 막을 내렸다. 사과하기 어려워하는 손녀딸이 벌인 아주 작은 해프닝이었다. "엄마, 아빠 나 싫어하지? 이제 엄마, 아빠랑 안 놀아준다!"라고 울먹이며 말하던 손녀딸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그 당시에는 안쓰러운 마음뿐이었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 그 모습마저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이런 게 할아버지 마음인가 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손녀딸이 제가 하고 싶어 하던 놀이를 못하고 커튼 속으로 숨어들었을 때 한동안 그대로 내버려 두었으면 어땠을까? 손녀딸은 분명 마음이 상했을 터이다. 하고 싶던 놀이를 못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커튼 속으로 숨어들었으리라. 상한 마음을 달랠 시간이 필요했을 터인데, 사진 촬영 시간에 맞춰 가야 한다는 어른들의 생각으로 빨리 커튼 밖으로 나오라고 다그친 건 아닐까? 사진 촬영에 좀 늦더라도 기다려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물론 뭐가 정답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각설. 아내에게 전해 들은 손녀딸이 한 말 중, 나를 미소 짓게 한 말. 아내 혼자 손녀딸을 '스콜라 몬테소리'로 데리고 가며 동화를 틀어 주었단다. 사탕을 쫄쫄 빨아먹으며 듣는 둥 마는 둥하던 손녀딸이 동화가 다 끝나자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할머니, 참 아름다운 이야기지?" 다섯 살배기가 동화를 다 듣고 이렇게 말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아니 어쩌면 모든 다섯 살배기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손녀딸 바보인 이 할아버지는 우리 손녀딸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며, 우리 손녀딸이 참 신통방통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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