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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딸과 함께하는 하루하루

<09> 2024. 10. 02.(수)

by 꿈강

<타임 라인>

-6시 30분: 딸네 집 도착

-7시 05분: 손녀딸 깸.

-9시 00분: 소아과 의원 도착

-9시 55분: 등원 완료


-15시 47분: 어린이집 도착

-16시 00분: 하원




평소와 같은 시간에 딸네 집에 도착했다. 오늘은 딸과 사위가 나란히 출근길에 오른다. 그렇게 딸네 부부가 집을 나선 뒤 딸네 집 거실에 앉아 있는데, 손녀딸이 뭐라고 하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아내가 달려가는 소리가 들리고 손녀딸이 애착 인형 보노를 달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내가 나를 부른다. 달려가 보니, 손녀딸이 보노를 부둥켜안고 제 침대 아래 앉아 있다. 손녀딸이 제법 무거워져서, 아내는 손녀딸 안기가 좀 버거워졌다. 내가 얼른 안고 거실로 나왔다.


손녀딸이 보통 때보다 일찍 일어났다. 7시 30분까지는 자야 하는데, 7시 5분에 잠이 깼다. 그런데도 잠투정도 하지 않고 혼자 잘 논다. 제 놀이방으로 가 놀이 도구를 가져오더니, 혼자 무어라고 종알거리며 한참을 논다. 그러다 같이 놀자고 나를 부른다. 내가 놀이에 동참해 보지만, 나는 손녀딸이 만족할 만한 놀이 상대가 아니다. 아내는 손녀딸 눈높이에 맞춰 잘 놀아주는데, 나는 그게 영 잘 되지 않는다. 좀 더 분발해야 한다. 아내가 손녀딸과 놀아주면 좋겠지만, 오늘 아내는 몹시 바쁘다. 딸네 냉장고에서 묵은 김치를 정리 중이다.


부랴부랴 아침을 먹였다. 감기가 아직 완전히 떨어지지 않아,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병원에 들러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내가 떠먹여 주는 아침밥을 곧잘 받아먹는다. 병원에 도착하니 9시 정각이다. 그런데 우리 앞에 대기 환자가 네 명이나 있다. 게다가 진료 시작 시간은 9시 20분이란다. 9시에 진료를 시작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늘 다니는 병원인데도 그 사실을 오늘에야 알았다. 손녀딸 차례가 되어 진료를 받으니, 의사 선생님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병원을 나와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어린이집으로 들어가려는데, 같은 반 친구를 만났다. 손녀딸이 반갑게 그 친구의 이름을 부른 뒤, 손을 꼭 잡고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손녀딸은 친구를 만나면 언제나 이름을 부르며 친구의 손을 꼭 잡는다. 친구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우리 손녀딸이다. 9시 55분. 등원 완료다.




처제와 조카 부부가 방문하는 날이라서, 아내가 차를 가지고 기차역으로 마중 나가고 내가 스쿠터로 손녀딸을 하원시키러 혼자 어린이집에 왔다.


조금 후, 손녀딸이 나왔다. 나를 보더니 어린이집 옆 놀이터에서 놀겠단다. 그러라고 했더니 웬걸, 미끄럼틀을 한 번 쭈르르 타고 내려오더니 곧장 스쿠터로 달려갔다.


날이 꽤 쌀쌀해져 준비해 간 점퍼를 입힌 다음 스쿠터에 올라 우리 집을 향해 달렸다. 바람이 꽤 차가웠다. 손녀딸이 갑자기 입이 따갑다고 했다. 손으로 입을 막으라고 말해 주니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기 입을 꼭 막는다. 그 모습이 왜 그리 귀엽고 예쁜지!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그런데 달리는 스쿠터 위에서 갑자기 손녀딸이 울음을 터뜨렸다. 애착 인형 보노 때문이다. 손녀딸이 갑자기 '보노?'라고 하기에 "보노는 너네 집에 있지."라그 했더니 할머니 집에 안 가고 보노한테 가겠단다. 그러지 말고 우리는 할머니 집으로 가고 엄마한테 보노를 가지고 오라고 하자고 했더니, 스쿠터 위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다. 우리 집에 거의 다 왔지만 스쿠터를 딸네 집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손녀딸은 화장실로 가 손을 씻는다. 그러더니 곧장 보노를 끌어안고 보노 꼬리를 쪽쪽 빤다. 간식으로 준비해 간 딸기 웨하스를 주었다. 맛있게도 먹는다. 순식간에 딸기 웨하스가 손녀딸 입 속으로 사라졌다. 물론 양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잘 먹을 줄을 몰랐다.


딸기 웨하스를 다 먹은 손녀딸이 심심하다고 한다. 텔레비전을 보여달라는 이야기이다. 못 들은 척하고, 책 읽어줄 테니 책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런데 이 수가 통했다. 그냥 한번 던져본 말인데, 순순히 책을 가지고 온다. 내가 읽어 주는 책 속에 나오는 캐릭터 중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캐릭터를 가리키기도 하면서 꼼짝 않고 첵 세 권을 연달아 읽었다.


그러고는 좀 진력이 났는지, 인형들을 모아 놓은 창가 쪽으로 가더니 인형들을 손에 들고 역할 놀이를 한다. 한동안 역할 놀이를 하던 손녀딸이 갑자기 '나비 공주'를 찾는다. 아뿔싸! 낭패다. '나비 공주'는 아침에 손녀딸이 어린이집에 갈 때 데리고 간 인형이다. 어린이집에는 가지고 들어갈 수 없어, 늘 우리 차 안에 놓아두고 어린이집에 간다. 그러니까 손녀딸이 찾는 그 '나비 공주'는 지금 우리 집에 있는 것이다.


손녀딸에게 상황 설명을 했다. 물론 통하지 않았다. 손녀딸이 "나비 공주~~~!"라고 외치며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달래야 한다. 텔레비전을 켰다. 손녀딸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겠다는 심산이었다. 손녀딸이 보여달라고 해도 보통 때는 잘 보여주지 않는, 우리말로 된 애니메이션을 틀었다. 안 통했다. 재미없다며, 텔레비전을 끄란다. "빨리 빨간 단추 눌러. 빨리 빨간 단추 눌러." 손녀딸이 울면서 반복해서 말했다. 하릴없이, 리모컨의 빨간 단추를 눌러 텔레비전을 껐다.


다른 방도를 생각해 내야 했다.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겨우 꺼낸 말은 "텐텐 먹을래?"였다.

'텐텐'은 씹어 먹는 어린이 비타민이다. 이게 통할 줄이야! 손녀딸이 눈물을 뚝 그치며 "응."이라고 말한 뒤, 텐텐이 있는 곳으로 간다. 손녀딸 키가 닿지 않는 곳에 놓여 있는데, 손녀딸을 자연스럽게 본인 전용 받침대를 갖다 대더니 받침대를 딛고 올라선다.


내가 한 개만 먹으라고 했다. 아침에 병원에 갔다가 의사 선생님이 주신 텐텐을 이미 두 개 먹었기 때문이다. 손녀딸이 알았다고 하더니, 정작 텐텐을 두 개 꺼낸다. 나를 쳐다보며, 한 개는 내일 먹을 거라면서 한 개는 받침대 위에 놓고 한 개는 나를 주며 껍질을 까 달란다. 더 먹고 싶지만 이미 많이 먹었다는 걸 알기에, 더 먹지 못하는 아쉬움을 그렇게 달래려나 보다. 참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인가 보다.


그렇게 손녀딸은 텐텐을 먹으며 '나비 공주'를 잊었다. 알다가도 모를 네 살배기 손녀딸의 마음이다. 아무튼 손녀딸이 울음을 그치고 평온을 되찾아 다행이다. 그러는 사이 딸내미가 퇴근했다. 손녀딸이 제 엄마에게 다다다다 달려가 안긴다. 언제 보아도 흐뭇한 광경이다. 17시 10분. 나도 퇴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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