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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강 Oct 18. 2024

손녀딸과 함께하는 하루하루

<15> 2024. 10. 18. (금)

딸네 집에 도착해서, 습관대로 손녀딸 방을 들여다보았다. 손녀딸은 큰 대(大) 자 자세로 곤히 잠들어 있다. 내 마음이 다 편안해진다. 마치 내가 단잠을 푹 자고 있는 듯하다. 손녀딸에게는 이렇듯 쉽게 감정이 이입한다. 아마도 이 세상 모든 할아버지들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그래서 손녀딸만 보면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어떤 장치가 있지 싶다.


  8시쯤 되었을 때, 손녀딸이 할머니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내와 내가 손녀딸 방으로 달려가니,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아내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게 아니고 휴대폰으로 이야기를 들려달란다. 부랴부랴 내가 휴대폰을 가지고 와서 동화 하나를 골라 들려주며 거실로 안고 나왔다. 잠깐 동안 그 동화를 듣고 있던 손녀딸이 "재미없어."라고 말했다. 텔레비전을 보겠다는 소리다.


  아내가 아침밥을 차려 오고, 내가 텔레비전을 틀었다. 티니핑을 보겠다고 해서, 틀었더니 영어 버전이다. 내가 찾아보려고 하다가 못 찾은 것인데, 아마 딸내미가 찾아 놓았나 보다. 영어 버전을 싫다고 할까 봐 좀 신경이 쓰였는데 별말 없이 잘 본다. 그런데 표정이 썩 밝지는 않다. 어쨌든 싫다는 소리 없이 보니, 다행이다. 


  소고기 뭇국에 만 밥 위에 멸치와 콩나물 무침을 얹어 먹여 주는데, 오늘따라 곧잘 먹는다. 내가 "참새 짹짹." 하며 밥을 먹이려고 하면, 참새 새끼인 양 입을 쩍쩍 벌리며 잘 받아먹는다. 손녀딸이 딴청을 하며 잘 먹으려 하지 않을 때에, "그럼 할머니 참새 줘야지."라고 하면, 입을 더욱 크게 벌리며 낚아채 듯 밥 숟가락을 제 입에 밀어 넣는다. 오늘을 그렇게 밥 한 그릇 다 먹이기에 성공했다.


  밥을 다 먹고 아내가 손녀딸 양치질시키는 걸 보고 잠깐 화장실에 갔다. 그런데 갑자기 손녀딸이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니, 손녀딸이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나에게 다다다 달려오며, "할아버지가 해 줘."라고 소리친다. 대충 상황이 그려진다. 아내가 손녀딸 얼굴에 로션을 발라주다, 손녀딸 눈에 로션이 슬쩍 스쳤나 보다. 손녀딸이 아주 싫어하는 상황인데, 어떤 날은 아무렇지도 않다가도 어떤 날은 온통 짜증을 부리기도 한다. 오늘은 짜증을 부리는 날이다. 


  내가 손녀딸에게서 로션을 받아 들고 손녀딸 얼굴에 조심조심 발라 주고 있는데, 아내가 장난 삼아 "이제 어린이집에 가서 하론이 할머니 말고 다른 아이 할머니 해야겠다."라고 말했다. 순간 손녀딸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눈물바람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빨리 할아버지가 그러지 말라고 말해."라고 한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못 알아듣고 우물쭈물하자, 똑같은 말을 되뇐다. 내가 "그런 건 하론이가 할머니한테 직접 말해야지."라고 했더니, 더욱 큰소리로 "아니야. 할아버지가 말해, 할아버지가 말해."라며 눈물을 흘린다. 


  사태가 더 커져 통제불능 상황이 되기 전에, 얼른 아내가 손녀딸을 꼭 안았다. 아내가 손녀딸을 토닥이며, 할머니가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겠다고 거듭 약속하자 그제야 손녀딸 울음이 잦아들었다. 


  한바탕 우여곡절 끝에 어린이집으로 출발했다. 언제나처럼, 차 뒷좌석에서 아내와 손녀딸이 역할 놀이를 한다. 오늘도 손녀딸은 엄마, 아내가 아가다. 오늘도 그 사탕가게는 문을 열지 않았다. 손녀딸 말로는 두 밤을 자야 문을 연다고 한다. 너무나도 다정한, 찰떡궁합 할머니와 손녀딸이다.


  9시 15분쯤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웬일로 주차장이 한산하다. 손녀딸 손을 잡고 어린이집 출입구 쪽으로 갔는데, 출입구 앞에서 한 아이가 아빠의 목을 부둥켜안고 대성통곡 중이다. 들어가기 싫다고 저러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 손녀딸보다 한 살쯤 많아 보인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 손녀딸이 참 기특하고 신통방통하다.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단 한 번도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나와 아내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으랴. 오늘도 우리 손녀딸은 씩씩하게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총총 사라졌다.




  오늘은 내가 예전에 살던 곳에서 약속이 있어, 손녀딸 하원은 아내 혼자 해야 한다. 손녀딸 낮잠 이불이 나오는 날인 데다, 하원 즈음에는 비가 온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일대 혼란이 벌어질 게 틀림없다. 꼭 이런 날 약속이 잡힌다. 아내가 평소보다 일찍 어린이집에 도착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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