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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강 Oct 30. 2024

손녀딸과 함께하는 하루하루

<22> 2024.10. 30.(수)

6시 30분에 딸네 집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손녀딸은 벌써 깨어 거실에서 혼자 놀고 있다. 딸과 사위가 출근 준비로 바빠 놀아줄 수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곧 사위와 딸이 차례로 출근길에 올랐다. 일찍 일어난 것 치고는, 손녀딸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다행이다.


  오늘도 등원 준비가 순조롭다. 오늘은 손녀딸이 할머니에게 당근 밥을 해 달라고 주문했다. 아내가 뚝딱뚝딱 당근 밥을 준비했다. 잘게 썬 당근이 듬뿍 들어간, 건강에 좋을 법한 밥이다. 한 입 먹어 보니, 맛도 그만이다. 사과와 배, 치킨 몇 조각, 당근 밥이 오늘 우리 손녀딸 아침 밥상이다. 


  텔레비전으로 애니메이션을 보며 아침밥을 먹였다. 영어 버전 '캐치 티니핑'을 줄곧 보았는데, 한참 보다가 '헤이주'가 나오는 회차를 보여달라고 한다. '헤이주'가 나오는 회차를 찾을 방도가 없어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는데, 아내가 "할아버지가 잘 모르니까 순돌이가 찾아봐."라고 했다. '캐치 티니핑' 회차 목록을 쭉 보여주니 손녀딸이 손가락으로 어떤 회차를 가리킨다. 그 회차를 재생하니 '헤이주'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춤을 잘 추는 여자 아이돌 같은 캐릭터다. 네 살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이런 캐릭터를 좋아한다. 요즘 아이들은 춤 못 추는 아이가 없고, 딸내미 말에 의하면 여자 아이들은 춤을 잘 추어야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손녀딸이 춤을 잘 추었으면 좋겠는데, 춤을 잘 출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일찍 일어난 탓에 배고 고팠는지, 손녀딸은 준비한 아침밥을 거의 다 먹었다. '자기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걸 보는 것만큼 흐뭇한 일이 없다'는 옛말은 어찌 그리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딱 들어맞는지! 오물오물 밥을 씹어 먹는 손녀딸을 보면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고 그저 흐뭇하기만 하니 말이다. 


  어린이집으로 출발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손녀딸이 어린이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함께 놀 인형들을 챙긴다. 뽀로로의 루피와 패티 인형은 요즘 손녀딸이 꼭 챙기는 인형들이다. 거기에다 각종 티니핑 캐릭터 인형들을 잔뜩 챙겨 한 상장에 집어넣는다. 그러더니 손녀딸의 최애 인형 보노도 가져가겠단다. 오늘 하원 때에는 손녀딸이 스쿠터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래서 보노는 집에 두고 가자고 했다. 조금 생각하는 듯하더니 손녀딸은, 하원 때 차를 가져오라고 한다. 보노를 꼭 데려가고 싶은가 보다. 하는 수 없이 보노를 데리고 등원 길에 올랐다.


  보통 때 같으면, 손녀딸과 아내가 역할 놀이를 하느라 차 안이 시끌벅적해야 하는데 어째 오늘은 조용하다. 룸미러로 슬쩍 보니, 손녀딸은 보노를 꼭 끌어안은 채 자기 입술을 보노 꼬리에 문지르고 있다. 나와 아내가 '보노 쪽쪽이'라고 부르는 행동이다. 어린이집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손녀딸의 '보노 쪽쪽이'는 계속되었다. 어제 루피하고 패티와 노느라, 보노를 자동차 앞 좌석에 방치한 미안함을 씻으려는 듯. 


  차가 어린이집 주차장에 도착하자 손녀딸은 "보노야, 차에서 기다리고 있어. 언니 어린이집 갔다 올게."라고 보노에게 인사를 건네고 씩씩하게 어린이집 출입구로 향했다. 나와 아내의 손을 꼭 잡은 손녀딸의 발걸음이 오늘따라 유난히 가볍다.




  손녀딸과 약속한 대로 스쿠터를 가지고 손녀딸을 태우러 어린이집으로 갔다. 스쿠터로 손녀딸을 하원시키러 갈 때는 항상 마음이 홀가분하다. 주차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옆 놀이터 한편에 스쿠터를 세우고 손녀딸을 기다렸다. 곧 손녀딸이 나왔다. 


  곧장 놀이터로 달려간다. 놀이터에서 한바탕 놀다 갈 태세다. 그런데 갑자기 손녀딸 어린이집 가방에 매달고 다니는 토끼 인형 '롸비츠(rabbits)'를 떼어 달라고 한다. 롸비츠를 떼어 주었더니, 롸비츠 눈이 안 보인다며 울상이다. 놀려고 하지도 않는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롸비츠 눈 주위 털을 잘라 달라고 하면 된다고 달랜 뒤 스쿠터에 태웠다. 다행히 더 이상 떼를 쓰지 않고 스쿠터에 올라탔다.


  딸네 집 아파트 단지 놀이터 앞에서 손녀딸 친구들을 마주쳤다. 그중에는 손녀딸 절친인 사내아이도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손녀딸은 그 사내아이 이름을 부르며 매우 반가워 폴짝폴짝 뛰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스쿠터 위에서 가볍게 손만 흔든다. 그 아이가 손녀딸 이름을 부르며 스쿠터 쪽으로 다가왔다. 스쿠터를 타고 싶은 눈치가 역력하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도 있는데 그 아이만 태워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학 놀이터에 가야 한다며 슬쩍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딸네 집으로 들어갔더니, 딸내미가 퇴근해서 이미 집에 와 있었다. 손녀딸에게 손 씻고 나서, 내가 간식으로 준비해 간 젤리를 먹으라고 했다. 손녀딸이 좋아하는 간식이다. 그런데 통에 담긴 젤리(젤리 한 봉지는 양이 너무 많은 듯해서 젤리를 작은 통에 담아서 갔다)를 보너니, 젤리 양이 너무 적다며 젤리를 쳐다보지도 않으려고 한다. 그러면서 수학 놀이터에 갈 때, 엄마랑만 가겠단다. 나한테 삐진 것이다.


  이럴 땐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게 상수다. 괜히 자꾸 달래려고 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체득한 터다. 시간이 좀 흐르고 약간의 계기가 주어지면 자연스럽게 풀린다. 시간이 약이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좀 지나자 (어떤 계기로 손녀딸의 토라짐이 풀렸는지 지금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손녀딸의 토라짐이 풀렸다. 젤리를 맛있게 냠냠 먹는다. 내가 좀 달라고 했더니, 자기가 베어 먹고 남은 조각을 내 입 안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무려 젤리 두 개를 나에게 내민다. 손녀딸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레몬 맛 젤리 두 개였다.


   손녀딸을 뒤에서 미는 손잡이가 달린 세발자전거에 태워, 딸내미와 힘께 수학 놀이터로 향했다. 가는 내내 손녀딸은 자전거 위에서 깨발랄을 떨었다. 수학 놀이터에 도착하고 손녀딸이 내 볼에다 잘 가라는 뽀뽀를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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