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2025. 05. 13.(화)
여덟 시가 가까워 오는데도 손녀딸은 일어날 기척이 보이지 않았다. 어제 늦게 잤다더니 피곤한 모양이다. 어린이집 등원 시간을 생각하면 마냥 자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손녀딸을 깨우기로 했다. 일단 텔레비전을 켜고 '페파 피그(Peppa Pig)'라는 애니메이션을 틀어 놓았다.
그런 다음 손녀딸에게 다가가 '페파' 틀어 놓았다고 속삭이자 손녀딸은 '페파, 페파'하면서 벌떡 일어났다. 얼른 안고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아 손녀딸과 함께 '페파'를 보았다. 아내가 재빨리 귤과 바나나 그리고 소고기 뭇국에 만 밥을 가져다 주었다. 손녀딸을 자리에 앉히고 아침을 먹이기 시작했다. 자는 걸 깨워선지 손녀딸은 약간 멍해 보였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손녀딸이 갑자기 사과를 달라고 했다. 아내가 사과를 가져와 잘게 잘라주다가 한 조각이 방바닥에 떨어졌다. 내가 무심코 그걸 집어 먹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사과를 먹어서 사과가 조금밖에 없다며 울고불고 난리다. 접시에 사과가 수북한데도 말이다. 단 몇 초 사이에 그렇게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울 수 있다니! 연기 대상감이다. 또 아내가 사과를 잘라 주면서 귤은 잘 먹지 않는 듯해서 귤은 접시에서 치웠는데, 귤은 왜 치웠냐고 생떼다.
부랴부랴 귤 하나를 가져와 까서 접시에 채워 주고, 말 안 하고 사과 한 조각 먹은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하니 손녀딸 기분이 조금 풀렸다. 아내가 안 되겠다 싶었던지, 손녀딸 들으라고 "이제 난 친절한 사람에게만 친절해야겠다."라고 말한 뒤 손녀딸을 냉랭하게 대했다. 손녀딸은 할머니의 태도가 바뀐 것을 금세 감지하고 나한테 착 달라붙었다. 할머니의 태세 변화에 약간 움찔한 손녀딸은, 아내가 골라온 원피스 셋 중 하나를 골라 순순히 입었다. 또 아내가 집에서 나가기 직전에 다른 것 입겠다고 하면 안 된다고 명토 박자,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이집에 가야 할 시간이 되어, 내가 텔레비전을 끄자고 하자 손녀딸은 조금만 더 보겠다고 했다. 두어 번 더 그러다가 이제 정말 어린이집에 가야 된다며 텔레비전을 끄자고 했더니, 손녀딸을 텔레비전을 끄지 말고 멈추라고 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 싫어."라며 할머니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그렇게 할머니 손을 잡고 차를 타러 갔다. 그래도 지하주차장에서 내가 슬쩍 손을 내미니 내 손도 잡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