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2025. 04. 30.(수)
오늘은 아내가 친구를 만나러 충주에 가는 날이다. 나 혼자 손녀딸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어야 하는데, 다행인 건 아내가 조치원역에서 9시 15분발 충주행 기차를 탄다는 사실이다. 딸네 집에서 8시 20분쯤 나가 버스로 조치원역으로 가면 되는 것이다. 8시 20분이면 아내가 손녀딸의 등원 준비를 마치기에 충분한 시각이니, 나는 손녀딸을 차에 태워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기만 하면 된다.
설령 아내가 손녀딸 등원 준비를 해 줄 수 없는 상황이 생겨도 예전처럼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손녀딸이 파마머리를 풀고 생머리를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등원할 때 머리를 땋지 않는다. 찰랑찰랑한 머리를 잘 빗기만 하면 된다. 아내가 없을 때 내가 맞닥뜨릴 수 있는 최대 난제가 사라졌다. 아내가 없어도 나 혼자 얼마든지 손녀딸 등원 준비를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머리를 땋지 않아도 되는 이 찰랑찰랑 생머리를 손녀딸이 오래 유지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손녀딸이 파마머리를 풀게 된 사연이 있다. 우리 손녀딸과 약간 라이벌 관계인 어린이집 같은 반 여자 아이가 파마머리를 한 손녀딸에게 안 예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손녀딸이 파마머리를 풀고 싶다고 해서 파마머리를 풀었단다. 내 생각엔 그 여자 아이가 샘이 났던 것 같다. 손녀딸의 파마머리가 정말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손녀딸이 파마를 하고 가자마자 그 말을 했어야 하는데, 그 아이가 안 예쁘다고 이야기한 시점은 손녀딸이 파마한 지 4~5주는 족히 지난 때이기 때문이다. 내둥 가만히 있다가 한참 지난 다음에 불쑥 안 예쁘다고 이야기한 걸 볼 때, 샘이 나서 그랬다고 할밖에.
그 아이가 그러거나 말거나 손녀딸이 꿋꿋하게 자신의 생각대로 밀고 나갔으면 더 좋았겠지만, 다섯 살배기 아이에게 그러길 바라는 것도 무리이리라. 파마머리든 생머리든 이 할아버지 눈에는 우리 손녀딸이 제일 예뻐 보인다. 파마머리였을 땐 귀여움이 돋보였는데 생머리로 돌아오니 귀여움에다가 또 다른 매력이 더해졌다. 그 매력을 뭐라고 해야 할지 딱 알맞은 말이 생각나지 않았는데, 딸내미가 '머리 펴고 얻은 청순미'라는 말로 한방에 정리를 해 주었다. 그렇다. 파마머리에 비해 무언가 '청순'한 느낌이 물씬, 손녀딸에게서 풍겨 나온다. 어쨌든 나로서는 등원할 때 머리를 땋지 않아도 되어 혼자 등원 준비하는 경우에 오는 막막함을 해소하는 망외의 소득도 얻었다.
버스 시간이 가까워져 아내가 손녀딸에게 어린이집 잘 갔다 오라고 인사를 하며 딸네 집을 나서려고 했다. 손녀딸은 텔레비전을 보느라 건성건성 인사를 한다. 그런데 아내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손녀딸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면서 "할머니, 잘 갔다 와!"라며 손을 맹렬히 흔들여 현관문 쪽으로 다다다다 달려갔다. 할머니에게 인사를 제대로 안 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 모양이다. 손을 흔들며 달려가는 손녀딸의 눈에서 할머니에게 인사를 제대로 하겠다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얼마나 귀엽던지! 아내가 이런 손녀딸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게 매우 매우 아쉽다.
텔레비전을 더 보겠다는 손녀딸을, 오늘 어린이집에서 어린이날 행사가 있어 빨리 가야 한다고 달래 집을 나서려고 했다. 현관에서 운동화를 신으려던 손녀딸이 별안간 구두를 신고 가겠단다. 오늘은 티셔츠에 바지 차림인데 말이다. 어린이날 행사 때문에 밖에서 신나게 놀아야 하는데 운동화를 신고 가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다행히 고집을 부리지 않고 순순히 운동화를 신었다.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참 다행이다. 이런 걸 보면 우리 손녀딸이 어느덧 훌쩍 자란 것 같다. 더욱 신통한 점은 아내 없이 나 혼자 등원이나 하원을 시킬 때 좀 더 말을 잘 듣는다는 사실이다. 여러모로 서툰 할아버지를 봐주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