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2025. 05. 15.(목)
오늘은 오늘로 50개월 된 다섯 살배기 우리 손녀딸 소풍날이다. 며칠 전부터 손녀딸은 오늘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맛있는 간식과 도시락을 먹을 기대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딸내미 말에 의하면 손녀딸이 유부 초밥을 도시락으로 싸 달라고 했단다.
새벽 5시,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아내가 벌떡 일어나더니 주방으로 나갔다. 나도 부스스 일어나 손녀딸이 잠들어 있는 방으로 가서 손녀딸 옆에 누웠다. 주방에는 딸내미도 이미 나와 있었다. 요 며칠 딸내미와 손녀딸은 우리 집에 와서 지내고 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손녀딸 소풍 도시락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내가 손녀딸 옆에 가서 누운 이유는, 행여 시끄러운 소리에 손녀딸이 깰까 염려해서이다. 손녀딸 옆에 누운 나는 다시 까무룩 잠이 들었다.
6시 40분쯤 잠에서 깨어 방 밖으로 나가 보니, 주방 식탁이 몹시 어지러웠다. 아내와 딸내미의 노고가 고스란히 보이는 듯했다. 딸내미는 이미 출근했고 아내가 주방 식탁을 정리하고 있었다. 딱히 할 일이 없어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있는데 손녀딸이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후다닥 달려가고 나도 뒤따라 갔다. 시계를 보니 7시 30분이다. 손녀딸이 어제 9시 30분쯤 잠이 들었으니, 푹 잔 셈이다. 소풍 가서 재미있게 노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리라 생각하니 마음속에 흐뭇함이 가득해진다.
아내가 손녀딸에게 "엄마가 싸 논 도시락 보고 싶으면 나와."라고 말하자 이불 위에서 뒹굴뒹굴하던 손녀딸이 벌떡 일어나 쪼르르 거실로 나왔다. 아내가 손녀딸에게 도시락을 열어 보이자, 손녀딸의 입가에서 미소가 번진다. 퍽 마음에 든 모양이다. 내가 보기에도 대단하다. 도시락이라기보다 예술 작품에 가깝지 않은가 싶다. 아래와 같은 모습이다.
딸내미는 손녀딸의 도시락을 싸고, 아내는 딸내미의 도시락을 쌌다고 한다. 각자 자기 딸의 도시락을 싼 셈이다. 어쨌든 '엄마'는 위대하다. 내 딸내미에게 이런 숨은 재주가 있었다니! 새삼 놀란다. 제 아이에게 가장 멋진 것을 안겨주려는 마음이 빚어낸 아름다운 결과물이리라.
아내는 집에 있고 나 혼자 손녀딸을 등원시키기로 했다. 손녀딸의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볍다. 할머니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얼마나 예쁘게 하던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할머니, 오늘 재미있게 지내. 사랑해."라는 말을 쏟아냈다. 아주 아주 기분이 좋은가 보다.
어린이집으로 들어가는 현관 앞에서 손녀딸의 절친인 같은 반 친구 '지○'를 만났다. 그 아이는 힘들다며 제 엄마 품에 안겨 울고 있었다. 손녀딸이 그 아이 이름을 부르며 손잡고 같이 들어가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손녀딸이 몇 차례나 그 아이 이름을 부르며 같이 가자고 했으나 별무신통이었다. 어쩔 수 없이 손녀딸 혼자서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집 앞에서 종종 목격하게 되는 장면인데, 우리 손녀딸은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으니 정말 신통방통하다. 기특하기 이를 데 없다. 만일 어린이집 앞에서 손녀딸이 이런 모습을 보일 때 나와 아내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를 떠올려 보면 우리 손녀딸이 고맙기까지 하다.
아, 어제도 신통방통한 일이 있었다. 저녁을 먹고 딸내미와 손녀딸과 함께 우리 아파트 안에 있는 놀이터에 갔다. 손녀딸은 그저께 아주 재미있어 했던 놀이 기구를 타고 싶어 했다. 놀이터에 도착해 보니 손녀딸보다 대여섯 살 많아 보이는 어떤 남매가 그 놀이 기구를 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손녀딸은 다른 놀이 기구를 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도무지 그 놀이 기구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아이들에게 양보해 달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어른이 나서기는 좀 뭣해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손녀딸이 종종걸음으로 그 놀이 기구 쪽으로 걸어갔다. 잠시 가만히 서 있던 손녀딸은 그 남매 중 누나로 보이는 아이에게 "언니, 나도 그거 타고 싶어."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랬더니 그 아이도 "그래, 한 번만 더 타고."라더니 과연 한 번만 더 타고 그 놀이 기구를 손녀딸에게 양보해 주었다. 또 우리 손녀딸도 그 놀이 기구를 다섯 번 정도 타고는 그 아이들에게 양보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