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딸과 함께하는 하루하루

<77> 2025. 09. 30.(화)

by 꿈강

어제 다섯 살배기 손녀딸을 데리고 치과에 다녀왔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첫 치과 나들이였다. 오른쪽 아래 어금니와 왼쪽 어금니에 충치가 생겨서다. 우리는 손녀딸 충치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딸네 부부가 발견해서 치과에 예약을 해 둔 상태였다. 치과에 가기 전부터 몹시 걱정이 되었다. 어른들 중에도 치과 치료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으니, 다섯 살배기 손녀딸이야 오죽하겠냐 하는 생각에서다. 더구나 엄마, 아빠가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와 가야 하는 상황이라 손녀딸이 더 불안해할지도 모르겠다는 염려가 더해졌다. 치과에 가기 전 손녀딸에게 치료를 잘 받을 수 있겠냐고 몇 차례 물어보았다. 그때마다 손녀딸은 치료 잘 받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미심쩍은 마음이 들면서도 적이 안심이 되었다. 치과 가기 싫다고 칭얼대지 않는 손녀딸이 신통하기도 했다.


진료 10분 전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이름이 '○○어린이치과의원'이었다. 다른 도시에 비해 아이들이 많은 곳이기는 하지만 어린이 전문 치과 병원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손녀딸은 놀이방에서 블록 놀이도 하고 미끄럼도 타고 책도 읽다가 간호사가 제 이름을 부르자 망설이지 않고 할머니 손을 잡고 진료실로 쪼르르 들어갔다. 나도 얼른 뒤따라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진료실 안 풍경은 내가 보아 온 치과 진료실 풍경과 사뭇 달랐다. 가장 다른 점은 진료 의자였다. 여느 치과 진료 의자와는 달리 평평한 침대 형태였다. 치위생사가 무려 세 명이 들어왔다. 치위생사분들이 손녀딸을 진료 침대에 반듯이 눕히더니 찍찍이가 붙어 있는 고정 장치로 손녀딸 몸을 단단히 고정했다. 그 과정에서 치위생사분들은 손녀딸에게 왜 몸을 고정하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서 만화 영화를 틀어주며 손녀딸에게 헤드셋을 씌워 주었다. 손녀딸은 꽤 평안해 보였다.


얼마 후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고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었다. 치료 과정 내내 의사 선생님은 손녀딸에게 계속 말을 했다. 어떤 치료를 하는지 설명하기도 했고 손녀딸을 안심시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손녀딸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알려주기도 했다. 내가 지금껏 보아 온 그 어떤 치과 의사와 확연히 달랐다. 어린이 전문 치과 의사다웠다. 손녀딸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 손녀딸을 안심시키며 능숙한 손놀림으로 재빨리 치료했다. 치위생사 세 분도 매우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여느 치과처럼 치위생사 한 명이 의사를 보조했다면 그토록 효율적으로 치료할 수는 없었으리라.


치료 초반 손녀딸은 놀랍도록 의젓했다. 웬만한 어른만큼 의연하게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치료가 10여 분을 지나기 시작하자 손녀딸은 조금씩 동요하기 시작했다. 울먹이며 뭐라고 중얼중얼거렸다. 입을 고정 장치로 벌려 놓은 상태라 뭐라고 하는지 알 수는 없었다. 치위생사 한 분이 손녀딸 눈물을 닦아 주며 토닥여 주었고 의사 선생님은 치료 잘 받으면 반지를 선물로 주겠다고 하기도 하고 삼십까지 숫자를 세 보라고 하기도 하면서 손녀딸을 달래며 치료를 계속했다. 모범생 디엔에이(DNA)가 있는 손녀딸은 울먹이면서 웅얼대는 목소리로 삼십까지 숫자를 셌다. 아내가 살며시 손녀딸 곁으로 다가가 손녀딸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손녀딸은 좀 편안해진 듯했다. 한동안 치료가 계속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쉬지 않고 손녀딸에 말을 걸며 치료를 진행했다. 손녀딸은 울먹이다가 울음을 참았다가 하며 치료를 받았다. 저러다가 '와앙'하고 손녀딸이 울음을 터뜨릴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러면 치료가 전면 중단되지 않겠는가. 다행히 손녀딸은 울음을 터뜨리지 않고 치료를 끝까지 받았다. 얼마나 다행이던지!



치료를 마친 손녀딸을 데리고 진료 대기실로 나왔다. 진료실을 벗어난 손녀딸은 다섯 살배기다운 발랄함을 금방 되찾았다. 힘든 치료를 잘 버텨낸 손녀딸이 너무 기특해서 "순돌아, 너 정말 의젓하게 치료 잘 받더라."라고 말했다. 내 말은 들은 손녀딸은 약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 거의 울 뻔했어."라고 말했다. 내가 보기엔 운 것 같은데 손녀딸 딴에는 울지 않은 게다. 울먹이며 눈물은 흘렸지만 울음을 터뜨리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손녀딸 말을 듣는 순간 좀 어리둥절했지만 생각해 보면 손녀딸 말이 백번 옳다. 다섯 살배기가 그 힘든 치과 치료를 울음을 터뜨리지 않고 받아냈으니 말이다. 신통하고 방통하다.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손녀딸과의 첫 치과 진료를 마치고 전문가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전에 살던 지역에는 어린이 전문 치과 병원이 없었다. 어쩌면 어린이 전문 치과 병원이 있는 지역을 찾기가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만일 우리 손녀딸이 어린이 전문 치과 병원이 아니라 일반 치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보나 마나다. 울고불고 난리가 났을 터이다. 치료를 다 마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일반 치과 의사도 손녀딸을 달래 가며 치료했겠지만, 어린이 전문 치과 의사의 축적된 노하우(knowhow)에 비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더구나 환자 한 사람 치료에 세 명의 치위생사가 투입되는 경우는 육십 평생 처음 보았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어린이 전문 치과 병원이 있는 도시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우리나라 전역에 이런 병원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생기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기에 자못 우울하다. 아이들이 아플 때 믿고 찾아갈 수 있는 각종 시설이 잘 갖추어진 도시를 꿈꾸는 건 아마도 말 그대로 꿈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현실에 마음이 몹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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