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할아버지를 놀라게 하는 손녀딸의 말
"젤리가 너무 빨라 햇빛이 못 쫓아오네."
얼마 전 다섯 살배기 손녀딸이 어린이집 등원길에 차 뒷좌석에서 읊조리듯 중얼거린 말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운전을 하느라고 그저 흘려 들었다. 손녀딸을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고 나서 어떤 상황에서 손녀딸이 그 말을 했는지 떠올려 보고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아, 여기서 손녀딸이 말한 '젤리'는 먹는 젤리가 아니다. 내가 모는 경차 '레이'를 처음 본 손녀딸이 "젤리 같아."라고 말한 다음부터 우리 가족은 그 차를 '젤리'라고 부른다. 손녀딸 눈에는 그 차가, 손녀딸이 즐겨 먹는 말랑말랑한 젤리처럼 보였나 보다. 차 색깔이 크림 색이고 전체적으로 네모 나서 그렇게 보였음 직도 하다. 여하튼 우리 가족에게 그 차는 '젤리'로 통한다.
손녀딸이 그렇게 말한 순간은, 차가 어린이집 쪽으로 막 좌회전했을 때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좌회전하기 전까지는 차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런데 좌회전을 하자 건물에 가로막힌 햇빛은 더 이상 차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순간 손녀딸이 "젤리가 너무 빨라 햇빛이 못 쫓아오네."하고 이야기한 것이다.
손녀딸의 그 말을 곱씹으며 내 교직 생활을, 정확히는 내가 한 국어 수업을 되돌아보았다. 지방 소도시 일반계(인문계) 고등학교에서 30년 넘게 국어를 가르치다 퇴직했다. 그러니 학생들과 수없이 많은 시 수업을 했다. 나와 시 수업을 함께한 그 수많은 학생들 중 다섯 살배기 내 손녀딸처럼 멋들어진 시적 표현을 읊조린 학생은 없었다. 고등학생이 다섯 살배기보다 표현 능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그럴 리는 없을 터이다.
내가 학생들에게 그런 상황을 만들어 주지 못했던 것이다. 햇빛이 교실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어느 순간 그 햇빛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여유를 주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만일 그렇게 했다면, 나와 함께 시 수업을 한 학생들 중 꽤 많은 학생들이 멋들어진 시절 표현을 토해 냈으리라 생각한다. 다섯 살배기가 할 수 있으니 고등학생들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결코 논리적 비약이 아니리라.
그런데 나는 교직 생활 내내 시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그런 상황을 제공해 주지 못했다. 그런 상황을 조성해 주는 수업이 매우 훌륭한 시 수업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일반계 고등학교의 현실에 아무런 저항 없이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대학 입시, 조금 범위를 좁혀 말하면 수능 국어 영역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 수업을 진행했다.
그 아름답고 주옥같은 시들은 내 혀에 의해 낱낱이 분해된 다음 수능 국어 영역에 필요한 언어로 재탄생하여 학생들에게 배달되었다. 학생들은, 해체되어 전달된 시의 파편들을 머릿속에 욱여넣기 바빴고 나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그것들을 흡수하는 학생들을 칭찬하느라 분주했다. 나와 함께 수업한 학생들의 수능 국어 영역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았고 나도 그럭저럭 괜찮은 교사라는 평판을 얻었다. 가끔 '이게 맞나?' 하는 생각에 제대로 된 시 수업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학생들의 마뜩지 않은 반응에 금세 이전의 수업 방식으로 회귀하곤 했다.
교직 생활을 되돌아보면 제대로 된 수업을 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고 안타깝다. 그중 가장 후회가 되는 수업이 시 수업이다. 소설, 수필, 비문학 수업에서는 그나마 어느 정도 제대로 된 수업에 근접한 수업을 한 기억이 있지만 시 수업에서는 그런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와 시 수업을 함께한 학생들은 시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는커녕 조금이나마 품고 있던 시에 대한 호기심마저 삭제당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 학생들에게 깊이 머리 숙여 사과한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마는 이렇게라도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게 마땅하다 싶다.
퇴직한 지 일 년이 약간 넘은 지금, 일반계 고등학교의 시 수업 풍경이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이다. 가끔씩 만나는 후배 교사들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 우리나라 전체 고등학교의 상황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수능이 서슬 퍼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 바람은 부질없이 헛된 것이 되고 만다.
고등학교 시 수업 풍경을 바꾸려면 맨 먼저 수능이 없어져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시를 공부하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내 다섯 살배기 손녀딸처럼 멋들어진 시적 표현을 툭툭 내뱉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때가 언제일지 알 수 없고 어쩌면 영영 그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런 희망만은 가지고 있어야겠다. 그 희망조차 없으면 너무 우울하기 때문이다.